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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성호 Sep 17. 2023

청소부 아저씨가 물었다 "그거 무슨 책이에요?"

오마이뉴스 게재, <사생활의 천재들> 서평

[김성호의 독서만세 151] 정혜윤의 <사생활의 천재들>


걸으며 책 읽는 걸 좋아한다. 길을 따라 바뀌는 풍경을 배경으로 책 속 담긴 이야기를 훑으며 산책하는 시간을 즐긴다. 그날도 그랬다. 길을 따라 책을 읽으며 걷고 있는데 왼편에서 시선이 느껴졌다. 고개를 드니 무언가 재미있는 일을 본 듯 나를 보는 청소부 아저씨가 있었다. 그는 긴 빗자루를 세로로 들고서 웃는 낯으로 물었다.


"무슨 책이기에 그렇게 골똘히 읽나요?"


순간 뭐라 답해야 할지 마땅한 말이 떠오르지 않았다. 그래서 책 표지를 내보였다. 표지엔 <사생활의 천재들>이라 적혀 있었다. 그가 다시 물었다.


"무슨 책이에요?"


나는 "대단한 사람들 이야기에요"하고 말았다. 그렇다. 이 책은 내게 멋진 사람들의 이야기였다. 가까이 다가서기 어려운 대단한 삶으로 저를 이끈 사람들 말이다. 사생활은 누구에게나 있지만 천재는 누구나 될 수는 없는 것이다. 그래서 <사생활의 천재들>이란 제목이 붙은 것일 테고 말이다.

             

▲ 사생활의 천재들 책 표지ⓒ 봄아필


우리 시대 여덟 천재를 말한다


책은 우리 시대를 살아가는 여덟 명의 사람을 소개한다. 누군가는 그들의 열렬한 팬일 수 있겠고 아니라면 적어도 이들 몇의 이름쯤은 들어보았을 유명인들이다. 자연다큐멘터리 감독 박수용, 영화감독 변영주, 만화가 윤태호, 야생영장류학자 김산하, 청년운동가 조성주, 사회학자 엄기호, 정치경제학자 홍기빈, 천문인마을 천문대장 정병호가 그들이다. 사회 속에서 살아가며 제 삶을 꾸리고 제 주변과 사회에 대한 목소리를 내길 주저치 않는 정력적인 이들이다.


일종의 산 사람 평전쯤이 되겠는데, 평전이란 게 늘 그렇듯 대상이 되는 이와 기록하는 이가 모두 주인공이 된다. 책을 쓴 건 CBS 라디오 PD인 정혜윤씨다. 세월호 침몰참사와 쌍용자동차 노동자들의 이야기, 자살에 대한 다큐멘터리에 이르기까지 사회 속 상처 받은 개인의 삶을 주목하고 기록해온 활동가적 저널리스트다. 감상적인 언어로 솔직하고 집요하게 파고드는 자세가 인상적이다. 그와 감성적인 주파수가 맞는다면 독자는 금세 그가 전하는 이야기에 빠져들고 만다.


그가 고른 여덟 명의 인물들 역시 여러모로 인상적이다. 우선은 제 삶을 누구보다 열심히 살아간다는 게 그렇다. 저 나름의 방식으로 저마다의 삶을 사는데, 그것이 또 꽤나 잘 살았다고 이야기할 만하다. 낭비하지 않아서일 것이다. 삶을 낭비하지 않고 각자의 방향으로 꾸준히 나아간 그들에게선 그들이 마주했을 몇몇 실패와 성공을 넘어선 흔적이 있다. 제 삶을 잘 살아가는 이들을 정혜윤은 사생활의 천재들이라고 명명한다.


사생활의 범재들은 이 책을 보라


사생활의 천재들은 자기 삶을 살아가는 이들이다. 우리는 흔히 주위의 다른 사람처럼 되기 위해 온갖 정성과 시간과 돈을 들이곤 하는데 실제 자신이 누구이며 무엇이 되고 싶은지를 돌아보는 경우는 많지 않다. 대부분의 자원을 동원해 남과 같아지고자 하는 동안 '창조적이지도, 타인에게 영감을 주지도 못하는 어중간한 존재가 되어'버린다.


그래서 제 삶을 살아가는 것이 무엇이냐고?


정혜윤이 <사생활의 천재들>에서 보여주는 여덟 가지 삶이 그 답이 될 수 있을지도 모르겠다. 제 삶의 천재가 되고, 자기를 사랑하며, 존재를 비추는 만남을 마주하고, 인간의 서식지를 보며, 현재를 바라보고, 진정한 말하기와 듣기를 고민하는 시간들이 책 가운데 펼쳐진다. 불안에 대해, 우리라는 별자리에 대해 생각하는 각 장의 이야기들은 그 다름 가운데서도 하나의 공통점을 찾아가는 여정이다.


감동하게 하는 사람들의 이야기


물론 정혜윤이 사람을 뚫어보는 힘, 그 통찰과 감각이 얼마나 정확한지 장담하기 어렵다. 책 내내 작가가 보고 싶은 것을 보려하는 힘이 크게 작용하고 그것이 때로는 책 가운데 드러난 각각의 인물들의 일상적 면모와는 다소 차이가 있을 수도 있어 보이기 때문이다. 작가가 가까이 마주한 인물이 있는 반면, 누군가에 대해선 적당한 거리를 둔 채 상대가 말하는 대로 그를 이해한 듯한 거리감이 느껴질 때도 적지 않다. 각 장마다 글의 밀도와 온도가 크게 다른 데는 그러한 이유가 자리하는 듯 보인다.


그러나 <사생활의 천재들>이 좋은 책이라는 건 분명하다. 이 책에 담긴 이야기 중 여럿이 읽는 이의 마음을 충분히 움직일 만하기 때문이다. 마음을 움직이는, 사람을 감동시키는 책은 갈수록 흔치 않은 것이다.


그리하여 나는 말을 건넨 청소부 아저씨에게 이렇게 말하고 돌아섰다.


"대단하기도 하고, 감동하게 하는 사람들 이야기에요."



김성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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