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마이뉴스 게재, <예언의 섬> 서평
[김성호의 독서만세 152] 사와무라 이치의 <예언의 섬>
일본을 가리켜 가깝지만 먼 나라라고들 한다. 지척에 있는 이웃국가임에도 역사적으로나 문화적으로 한국과 크게 다른 길을 걸어왔기 때문이다.
한반도 국가가 중국 중심의 동아시아 세계에 편입돼 그 특수를 누릴 때, 일본은 섬나라의 특수성을 살려 보다 독자적인 길을 걸었다. 한반도 국가가 바닷길을 걸어닫았을 땐 먼 바다로 나아가 서양과도 적극 교역했다. 걸어온 길이 다른 만큼 문화적 토양과 선호도 전혀 다르게 발달하여 한국과 일본의 문화는 서로에게 익숙하지만 전혀 다른 모양새를 갖게 되었다.
문학 역시 마찬가지다. 한국과 일본 모두 예술, 그중에서도 문학을 내세울 만큼 발전시킨 나라이지만 그 형태와 양상이 자못 다르다. 한국은 오랫동안 문학의 왕도를 순수문학이라 불리는 것에 두었다. 언론사 주도의 등단이란 좁은 문을 두고서 사회성 짙고 현실에 기반한 이야기에 가점을 주었다.
반면 일본은 대중의 선호를 받는 다양한 장르문학에 문을 열어두었다. 사회성 짙은 작품만큼 탐미적인 작품들도 많이 쏟아졌고, 추리와 호러, 로맨스와 코미디, 판타지 등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장르문학도 인기를 끌었다.
큰 액수의 상금이 걸린 공모전이 여럿 존재하고 이를 통해 새로운 신인들이 끊임없이 유입됐다. 그 결과 무라카미 하루키와 같은 작가 곁에 히가시노 게이고, 미야베 미유키, 온다 리쿠 등의 장르소설 작가가 설 수 있는 환경이 마련됐다. 한국 문학계와 극명히 대비되는 점이다.
일본 호러 기수의 미스터리 도전작
사와무라 이치는 한국에서 상당한 독자층을 확보한 일본 작가다. 호러소설과 추리소설을 주로 써온 사와무라 이치는 40대 중반의 나이에도 대가의 풍모를 보이는 작품을 여럿 써내며 화제를 모았다. 일본 장르문학을 선도하는 젊은 작가 대다수가 그렇듯 사와무라 이치를 키운 것도 깊고 넓은 일본 장르문학계라 할 수 있다.
출판사 직원으로 일하던 2012년부터 소설을 쓴 것 치고는 상당한 수준의 구성과 스타일을 가진 작품을 펴내 세상을 놀라게 한 것이다. 그의 작품에선 일본의 선배 장르문학 작가들의 스타일을 이어받아 발전시킨 부분도 적잖아 차기 일본문학을 이끌 대표주자로 언급되곤 한다.
<예언의 섬>은 올해 8월 발간된 사와무라 이치의 신작이다. 20세기 초 일본 미스터리 소설을 이끈 요코미조 세이시의 작품들을 떠오르게 하는 설정과 구성이 두드러진다. 고립된 장소와 일본 지방의 토속적 풍습, 그곳에서 도전받는 합리적 이성이 이번 작품에서도 그대로 드러난다. 역자의 말에 따르면 사와무라 이치는 요코미조 세이시의 <옥문도>를 오마주해 이번 작품을 써나갔다고 하니 그의 작품에서 옛 거장의 분위기가 느껴지는 것도 이상한 일이 아니다.
소설은 외딴 시골 섬을 찾는 세 친구의 이야기로 시작한다. 지방 소도시 출신으로 30대가 된 아마미야 준과 미사키 하루오, 오하라 소사쿠가 그들이다. 이들 중 가장 공부를 잘했던 소사쿠는 직장에서 괴롭힘을 당한 끝에 귀향한다. 친구들은 그를 위로하기 위해 여행을 계획하게 되는데, 그 계획이란 것이 옛 추억을 떠올리게 하는 미스터리 여행이다.
이들의 어린시절 일본에선 영능력자를 내세운 초현실 프로그램이 유행했는데, 진행자였던 우쓰키 유코가 이 섬에서 저주를 받고 죽었다는 것이 여행의 이유가 된다. 유코는 죽기 전 예언 하나를 남겼는데, 사망 20년 뒤 이 섬에서 여섯 명이 죽음을 맞이하리란 것이다. 세 친구는 이러한 사실을 반신반의하며 배에 몸을 싣는다.
시작부터 꼬이는 섬 여행, 긴장이 피어난다
여행은 시작부터 심상치 않다. 배에 타기 직전에 나타난 여자가 이들에게 섬에 가지 말라며 경고를 하고, 섬에 들어서니 예약한 숙소 주인이 손님 받기를 거부한다. 섬엔 갑자기 비가 내리고 파도도 거세진다. 섬 사람들은 산에서 원령이 내려온다며 바깥을 나다니지 않는다. 졸지에 세 친구를 포함한 방문자들은 외지인이 운영하는 또 다른 숙소에 모여든다.
소설은 일본의 현대사회에서 드러나는 문제들과 토속적인 장소의 문제들, 인간 본연에 내재된 선과 악, 그리고 약함에 대하여 차근차근 제 이야기를 해낸다. 장르적 쾌감 한편에 드러나는 이 같은 통찰이 소설을 그저 흔한 장르물로 여기지 못하게끔 한다. 아마도 이 소설은 마지막장을 덮은 뒤 독자를 더 두렵게 할 것이다. 잘 쓰인 많은 작품이 그러하듯 말이다.
미야베 미유키의 극찬을 받으며 일본 호러문학계에 발을 디딘 사와무라 이치는 <보기왕이 온다>와 <즈우노메 인형> <패밀리 랜드>를 연달아 성공시키며 호러와 추리 등의 장르에 재능을 드러냈다. 이번 작품은 그의 첫 본격 미스터리 소설로 평가되는데, 훌륭한 거장의 작품들과 견줘도 큰 손색이 없다. 잘 짜인 캐릭터와 구성, 독자의 흥미를 잡아끄는 전개에선 "얄미울 정도로 능숙하다"던 미야베 미유키의 평가가 절로 떠오른다.
히가시노 게이고, 미야베 미유키, 온다 리쿠의 세대가 저물어도 일본엔 수준급 작가가 끊이지 않고 있다. 한국 장르문학 애독자들은 지난 수십 년간 그러했듯 앞으로도 한동안 일본 장르문학을 애독하게 될 것이다. 이 소설을 베스트셀러로 만들 만큼 장르문학을 찾아 읽는 한국의 열성독자들이 한국 소설가에 앞서 일본 소설가를 줄줄 욀 수밖에 없는 현실이 안타깝지만, 사와무라 이치의 소설이 한국 독자들에게 남긴 감상만큼은 긍정적 자양분이 되어 주리라 믿어 의심치 않는다.
김성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