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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성호 Sep 25. 2023

동네서점 주인들이 뽑은 박완서 소설 베스트 컬렉션

오마이뉴스 게재, <동네서점 베스트 컬렉션 X 박완서> 서평

[김성호의 독서만세 153] 박완서의 <동네서점 베스트 컬렉션 X 박완서>


마음을 울리는 소설을 쓴다는 표현이 잘 어울리는 작가 박완서의 대표작을 추리면 어느 작품들이 남을까. 문학동네가 동네서점 58곳의 추천을 받아 박완서의 단편 가운데 4편을 가려 뽑아 <동네서점 베스트 컬렉션 X 박완서>편으로 묶었다. 박완서라는 한국 문단의 거장과 책 가까이 하는 동네서점 주인장들의 취향이 어떠할지 궁금하다면 집어볼 만한 책이다.


프로젝트를 시작한 첫해 한국 대표 흥행작가로 꼽히는 은희경과 김영하의 <동네서점 베스트 컬렉션>을 낸 문학동네의 두 번째 선택은 박완서와 김소진이었다. 박완서는 한국 문학계에서 특별한 위치를 점한 거장이다. 왕성한 독서력과 나이를 먹어가며 완숙해져 간 안목, 정돈된 문장까지 갖춰 성별과 계층을 뛰어넘는 폭넓은 사랑을 받았다.


1931년생 여성으로는 이례적으로 서울대학교 국어국문학과에 진학했으나 제대로 된 수업을 받을 겨를도 없이 전쟁통에 휘말려 사회생활을 시작하고 결혼을 해 주부로서의 삶을 살았다. 그러다 글에 대한 참을 수 없는 열망으로 쓰게 된 첫 소설이 여성동아 장편공모에 덜컥 걸린다. <나목>이다.


박완서의 글은 후반기로 갈수록 깊이를 더한다는 평을 받는다. 예순이 넘어 발표한 일련의 작품군이 모두 그러하다. 1992년 작 <그 많던 싱아는 누가 다 먹었을까>부터 2004년 작 <그 남자네 집>에 이르는 작품들은 새 시대의 문학소년·소녀들에게 폭넓게 읽힌 흔치 않은 작품으로 남았다.

             

▲ 동네서점 베스트 컬렉션 X 박완서 책 표지              ⓒ 문학동네동네서점 주인들에게 물었다, "박완서 소설 중 뭐가 좋으세요?"


박완서 작품세계 가로지르는 네 편의 단편


동네서점 베스트 컬렉션에 실린 단편은 '부끄러움을 가르칩니다', '친절한 복희씨', '그 여자네 집', '도둑맞은 가난'까지 모두 네 편이다. 1970년대 쓴 초기작부터 2000년 이후 나온 후기작까지 박완서만의 특색과 시선, 완숙함을 두루 살필 수 있게 구성됐다.


'부끄러움을 가르칩니다'는 1976년 출간된 첫 단편집 표제작이다. 그 시절 여성이 마주해야 했던 압력과 사회의 위선적 시선을 박완서스럽게 폭로하는 재기 넘치는 작품이다. 소설엔 한국전쟁을 몸소 겪은 작가의 경험이 그대로 묻어난다.


주인공 '나'는 어머니로부터 집안 부양을 위해 양공주가 되라는 압박을 받고, 떠밀리듯 부농에게 시집을 가지만 아이를 낳지 못하는 탓에 '시앗'을 보고 이혼까지 한다. 제 손으로 선택한 대학강사가 실은 별볼일 없는 속물임을 알게 되어 또 다시 이혼하고, 사업가를 만나 다시 결혼하지만 그 역시 이상과는 다른 현실을 일깨운다. 주인공이 중학교 동창들과 만나 대화를 나누는 장면으로부터 그들과 헤어지고 일종의 깨달음에 이르는 전개는 소설의 백미다.


이어 실린 '친절한 복희씨'는 2007년 출간된 여덟 번째 단편집의 표제작이다. 첫 작품 뒤 30년의 세월이 흘러 작가 박완서의 변화를 그대로 느낄 수 있다. 제목처럼 친절한 복희씨의 이야기로, 그녀가 서울로 올라와 처음 취업한 방산상회라는 작은 가게를 중심으로 이야기가 흘러간다.


복희씨는 어머니가 갖고 있던 아편덩어리를 훔쳐 품 안에 두고 일생을 사는데 소설 막판에 그것을 한강 다리 아래로 던져버린다. 거기까지 이르는 그녀의 심경변화는 결코 아름답기만 한 것이 아니라서 지난 시대 말 못할 여성들의 고충과 그에게 아무렇지 않게 가해지는 폭력, 그 폭력을 감내하는 미숙한 인간에 대해 돌아보게끔 하는 것이다.


동네서점 주인들이 가려뽑은 작품들


'그 여자네 집'은 1997년 작으로 박완서 작품 가운데 특히 유명한 소설이다. 일제강점기 위안부 문제를 전면에 등장시켜 평범한 인간들의 삶이 어떻게 파괴될 수 있는지를 조명했다. 위안부 피해자 개인을 넘어 그를 짝사랑했던 동네 남자와 훗날 그와 결혼한 또 다른 여자의 삶이 망가져가는 모습이 역사적 상처를 생생하게 느끼도록 이끈다.


마지막 실린 '도둑맞은 가난'은 첫 소설집에 실린 초기작이지만 최근 들어 온라인상에서 '가난까지 도둑맞다'는 표현이 흔히 쓰이며 새삼 주목받는 작품이다. 박완서다운 필치로 그 시절 널려 있던 가난에 대한 현실적 묘사와 함께 그 가운데를 가로지르는 젊은 여성의 모습이 생동감 넘치게 등장한다.


하지만 그의 곁에 있는 남자는 부잣집 아들로 그저 경험 삼아 가난을 체험하고 있을 뿐이다. 그 모든 사실이 드러나는 순간까지 뻔뻔하기만 한 남자의 태도는 오늘날 빈부가 공존하는 상황을 색다른 시선으로 바라보도록 한다.


<동네서점 베스트 컬렉션>은 박완서의 애독자뿐 아니라 그녀를 새로 접하길 원하는 독자에게도 멋진 선택이 되어줄 책이다. 절로 책장을 열게 하는 예쁜 표지에 가볍게 선물하기 좋은 두께까지 이 시대 소설이 갖춰야 할 미덕을 두루 갖췄다. 가려 뽑아진 네 편의 소설은 박완서 문학은 물론 한국 단편소설이 가진 멋을 알게 하기 충분하다. 읽지 않을 이유가 없지 않은가.



김성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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