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2. 같음부터 눈에 띄는 날

비스무리한 이들과의 책모임

by 김성호

이놈의 책모임이란 것은 참으로 묘하여 어느 날은 나와 다른 이가 잔뜩 앉아 있고, 또 어느 날은 비스무리한 이들이 제법 모여 있고는 한다. 사실 침팬지와 인간의, 또 쥐새끼와 돌고래의 유전적 유사성을 생각하면 우리가 같고 다르다 하는 것이 얼마나 부질없는 구분인가 싶기도 하지만, 일단 그러하다는 말이다. 어느 날은 차이에 집중하고 싶은 날이 있는가 하면, 또 다른 날은 같음이 보인다. 나는 그것이 정말 같고 다름 때문인지 그저 나의 기분 탓인지를 살피며 깔루아밀크 안에 든 얼음을 휘휘 저어 서로 부딪게 만들고 그 소리를 듣는다.


무튼 이날은 같음부터 보였다. 절로 날 좋다는 말이 나오는 초여름 홍대 어느 구석탱이 카페 자리에 둘러앉은 다섯 중에서 창작하는 이가 셋이나 된다 했다. 우리가 끄적이는 것을 모두 소설이라 부를 수 있다면 좋으련만 누구는 그렇다 하고 또 누구는 그렇다 할 수 없는, 그러나 어찌됐든 세상에 없던 이야기를 써내려 욕망하는 이들이 이 자리를 찾은 것이다. 나도 그중 하나인데 벌써 몇 편의 이야기를 끝내고도 아직 세상에 내어놓지를 못하고 있으니 그건 이미 세상과 먼저 만난 평론이며 기사며 에세이 따위가 성공이라 부를 만한 성취를 가져오지 못한 탓은 아닌가 그런 생각에 이르고 만다.


운영자는 한 바퀴 소개부터 시키고서는 먼저 제가 가져온 책 소개를 시작한다. 그가 가져온 책은 이날 자리와도 썩 잘 어울리는 <직업으로서의 소설가>, 그 유명한 무라카미 하루키의 에세이다.


하루키는 창작자에게 따라붙는 흔한 편견, 혹은 그런 이들에게 기대되는 낭만적 이미지와 완전히 따로 노는 작가다. 그는 매일 일정시간 동안 달리기를 하고, 또 하루 정해진 시간 동안 앉아서 소설쓰기를 하는 규칙적인 삶을 사는 것으로 유명하다. 무절제한 생활 속에서 신비한 영감을 작품으로 옮겨낼 것만 같은 유명한 소설가가 이토록 건전한 생활을 유지하고 있다니 들을 때마다 어딘지 모르게 서운한 기분이다. 이 책은 그런 그의 삶과 그로부터 얻어진 여러 생각들을 모은 것으로, 운영자는 소설쓰기 작법과 같은 노하우는 전혀 기대할 수 없는 에세이라 평한다. 그렇다면 왜 읽는단 말인가, 나는 잠시 그런 생각도 해보았으나 세상에 하루키팬이 얼마나 많은가를 떠올리곤 나오려던 말을 목구멍 안으로 꾸울꺽 삼켜버린다.


우리가 앉은 테이블 곁엔 벽을 따라 커다란 책장이 놓여 있다. 그곳에는 하나하나 눈길을 두어 살피는 맛이 있는 책이 넉넉잡아 수백권은 꽂혀 있다. 나는 운영자 바로 뒤에서 우리 테이블 이야기를 엿듣는 듯한 책 한 권을 가리키며 이야기를 시작한다. 마루야마 겐지의 <소설가의 각오>는 그리 흔하게 만나게 되는 책은 아닌데, 하필 하루키의 에세이를 이야기할 때 이 책이 보이는 건 어떠한 이유인가. 옷깃만 스쳐도 인연이라면 때로 때때로 모습을 드러내는 이 책과 나도 보통 인연은 아닌 것이다.


겐지는 허먼 멜빌과 그의 소설 <모비딕>을 동경하여 배를 타고자 했고, 끝내 목적은 이루지 못했으나 그에 필요한 무선통신사 자격은 취득해 직업인으로 일했던 이다. 더 짧고 간명한 문구를 전파로 전달해야 하는 통신사 일을 하다 보니 겐지의 문장은 갈수록 단순하고 선명해졌다. 육식동물 내장 같은 그의 괴팍하고 독특한 심리 또한 한 몫을 단단히 해 마침내 그가 쓴 소설은 일본 문학에 전에 없던 스타일이라는 평가와 함께 아쿠타카와상 최연소 수상이라는 영예를 안긴 것이다. 그런 그가 중년에 이르러 제 글쓰기며 문단에 대한 생각 따위를 적은 글을 모아 에세이집으로 발표하니, 그것이 <소설가의 각오>가 되겠다. 이 책에서 그는 소위 술마시고 기행을 일삼는 이른바 예술인인 척 하는 소설가무리를 그야말로 발가벗겨 짓밟는다. 그는 제 노동으로 무엇을 생산하고 스스로의 삶을 챙겨가는 보통 사람들에 비해 소설가란 존재가 얼마나 무익하며 무능하기 쉬운가를 이야기한다.


이 책에 실린 그가 어느 편집자와 나누었다는 대화가 기억난다. 편집자가 그에게 물었다. "어떤 독자들을 상정하고 소설을 쓰는가?" 그는 곧바로 이렇게 대답하였다. "목적을 갖고 전력투구하며 살아가는 젊은이나, 열심히 성실하게 일하여 처자식을 먹여 살리는 남자들이다." 그러자 편집자는 반박했다. "이해는 하겠지만, 그런 사람들에게는 문학이 필요 없을지도 모른다." 그는 잠시 생각한 뒤 되물었다. "그렇다면 문학이란 대체 어떤 사람들에게 필요한 것인가?" 그리고 둘은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문학이란 대체 누구에게 필요한가, 또 문학은 누구에 의해 쓰여지나. 그 답은 영영 알지 못할지 모른다.


제목은 기억나지 않지만 운영자는 유명한 소설가 백수십명을 인터뷰했다는 어느 책 이야기를 꺼내었다. 좋은 소설을 쓰기 위한 비결 따위를 기대했을지 모를 그 인터뷰 프로젝트의 결론 아닌 결론은 공통점 따윈 없었다는 것이라 했다. 비결은 존재하지 않고 존재해도 내게까지 닿지 않는다. 내가 아는 건 쓰고자 하는 이는 쓰고, 읽고자 하는 이는 읽는단 것이다. 개중 무엇은 걸작이 되고 또 무엇은 졸작이 되겠으나 그것이 어떻단 말인가. 빌어먹을 성패와 장단은 하늘이 따질 일, 나는 그저 선을 다하면 될 일이다.


책 하나 적었는데 한 시간이 훌쩍이다. 큰일이지만 여기서 그만둘 수는 없다. 재능이 일천한 내가 내세울 거라곤 꾸준함뿐인데 겨우 스물두 번째 글에서 후기쓰기를 중단할 수는 없는 것이다. 그러고 보면 소설가의 루틴, 그 단단한 일상이 빚는 창작의 힘을 이야기한 하루키는 뭔가를 아는 이가 틀림없다.


내가 가져온 책은 이종철의 출판만화 <까대기>다. 한 권짜리 만화책이라 앉은 자리에서 뚝딱 읽어낼 수 있는 책이다. 만화라고 해서 시덥잖은 내용이 들어있으리라 생각한다면 그건 꼰대다 라고 쓰려했는데 그런 생각이나 하고 있는 내가 더 꼰대 같아서 그렇게는 적지 않겠다. 나는 이 책이 이 시대의 필독서가 되어야 한다고 소개하였다. 그건 이 만화가 대단하거나 훌륭해서가 아니다. 이 만화가 다루는 내용을 우리가 알아야만 하기 때문이다.


세상 모든 일을 잘게 쪼개어 그것이 좋은 일이건 나쁜 일이건 꼭 필요한 일이건 없어도 하등 상관없는 일이건 죄다 다른 이들이 노력을 들이도록 만든 것이 분업화를 깔고 앉은 오늘의 자본주의 세상이다. 분업은 인간을 전과 비할 바 없이 자유롭게 했으나 한편으론 인간을 도덕적으로 지적으로 또 감성적으로 무력하게 만들었다. 우리는 돼지 한 마리 잡지 못하며 돼지고기를 먹고, 나무 한 그루 벨 힘도 없으면서 아마존이며 맹그로브며 자연훼손에 가담한다. 쓰다 보니 이것도 꼰대같아 그만 쓰겠다. 무튼 이 세상은 알지 못하면 악당과 공범이 되기 십상이다. 그건 택배 또한 마찬가지다.


<까대기>는 택배업계 이야기를 다룬다. 내가 글을 그리 여기듯 만화를 소명으로 여기는 작가가 수년 동안 택배 상하차업을 겪고 그린 만화다. 대단한 비판의식이나 남다른 통찰 따윈 없지만 그곳 풍경을 있는 그대로 그리는 것만으로도 택배를 이용하지만 택배업을 모르는 이들에게 제가 알아야 할 것이 있음을 일깨운다. 택배비 3000원 뒤에 숨은 노동, 인간들의 땀과 욕망과 절망이 깃든 그것을 알아가는 건 택배를 쓰는 이에게 얼마나 필요한 일인가 말이다.


이날 유일한 여성 참석자는 누가 봐도 대학 교과서스러운 <대상관계 이론과 실제-자기와 타자>를 들고 왔다. 심리학자가 유료로 진행하는 책모임 지정도서라는데, 아들러 이래로 한국 출판계에서 주류로 등장한 심리학 열풍이 책모임까지 이어지는구나 신기할 따름이다. 나도 한때는 프로이트며 융이며 유명한 이들의 책을 몇 권쯤 펼쳐본 시절이 있었는데, 마음 깊이 닿지 않는 이론의 향연에 에라 모르겠다 되는대로 살지 뭐 덮어두고 만 것이다. 그러나 사람들은 얼마나 인간의 내면에 관심들이 있는가. 전공도 아닌 교과서 한 권을 떼고야 말겠다는 그런 열정이 내게는 과연 자리할 날이 있을지, 그런 생각이나 해보는 것이다. 내가 바라는 건 우울도 외로움도 다른 무엇도 없는 삶인데 그런 건 그런 걸 생각하지 않을 때나 가능한 일인 듯하여 어쩌다 다가온 버거운 감정들을 나는 또 모른 척 견뎌내고 산다.


다음 이가 발표한 <채소 과일식>은 아는 이는 다 아는 베스트셀러인 모양인데 나로선 초면이다. 그도 그러할 게 라면과 피자와 햄버거와 술과 온갖 몸 상하는 것들을 애정하는 나의 못난 식습관과 이런 건전한 책은 도무지 어울리지 않는 탓이다. 그러나 낯섦은 흥미로움과 가까운 사이라 나는 그의 이야기에 조금씩 흥미가 동한다. 책엔 무탈하게 장수하기 위한 식습관이 체계적으로 요약된 모양으로, 그는 기상 뒤 미지근한 물을 마실 것이며 사과 같은 과일을 아침으로 먹을 것이며 또 하루에 몇 시간은 햇빛을 쬐어줄 것이며 커피 따윈 가까이 하지 말 것 따위의 지침을 하나씩 이야기하기 시작한다.


그러고 보면 인간이란 종은 대부분의 생애 동안 가만히 매달린 과일이며 과일보다 조금 빠른 나무늘보 따위나 뜯어먹으며 그 질긴 종족을 유지해온 것인데, 장기 또한 제 먹거리를 더 효과적으로 소화하기 위한 노력을 했을 수밖에 없는 일이다. 사과를 소화시키는 데 드는 에너지가 같은 열량의 다른 무엇이 비해 훨씬 적은 건 그래서가 아닌가 짐작해보는 건 꽤나 흥미로운 일이다.


그의 책 소개를 듣는 것만으로도 절로 건강해지는 기분이어서 나는 집에 가는 길에 사과 몇 개쯤 사서 아침엔 사과를 먹어야지 그렇게 마음을 먹는다. 그리고는 평소 찾기 어려운 스낵면과 냉동 시카고치즈피자를 함께 사고 스낵면에 말아먹을 백미 햇반과 스팸까지 구입하니 나의 건강이란 선조들의 수고로움으로 획득된 유전적 면역력에 전적으로 기대는 것은 아닌가 그런 민망함이 들 뿐이다.


마지막 책은 에밀리 디킨슨의 <고독은 잴 수 없는 것>이다. 이름은 들어본 작가지만 잘 손이 가지 않던 이로, 인터넷에서 보았던 시구절도 영 내 타입은 아니다 싶었던 게 전부다. 그런 이의 시를 찾아 읽는 성실한 사람이라니, 방금 전 건강을 이야기할 땐 낮 즈음에 일어나서 공복에 커피부터 마신다던데 인간이란 참으로 쉽게 판단할 수 없는 존재구나 그런 생각에 이른다.


그는 디킨슨이 평생 집 안에서 커다란 경험 없이 산 작가라고 말한다. 세상의 어느 작가는 큰 배를 타고 미지의 세상으로 나아가고 기자가 되어 온갖 사건을 경험하며 그도 모자라서 하늘을 날고 목숨을 걸고 총탄이 나는 전쟁터에 나가는데, 또 누구는 앉아서 세상에 길이 남는 불멸의 작품을 써내는 것이 참으로 놀라울 뿐. 그러나 안에서 안으로 침잠하는 것 또한 나아감은 아님지, 세상이란 바깥에만 있는 것이 아니고 경험 또한 멀리만 있는 것은 아니어서 누군가는 앉아서 천리를 보고 또 누구는 집 안에서 세상을 관통할 수 있다고 믿는다. 고립과 고립이 아닌 것, 정체와 정체가 아닌 것, 멈춤과 멈춤이 아닌 것은 그저 현상으로만 읽어낼 수는 없는 일이다.


무튼 오늘도 책모임의 후기를 이리 장황하게 써내었다. 이것이 내가 쓸 수 있는 가장 짧은 후기란 것이 씁쓸하다. 조금 더 추려 쓸 수 있는 능력이 있었다면 나는 남는 시간에 라틴슈즈를 들고 다른 나라 댄스교습소를 가는 이에게 간고등어와 물류의 상관관계며 보부상이 모자에 솜뭉치를 붙이고 다니는 이유며 교촌치킨과 부분육 혁명 얘기를 들은 것도 덧붙였을 것이다. 그러나 그러지 못하는 것은 죄다 부족한 글솜씨 때문이니 글을 업으로 삼는 내겐 여전히 나아갈 곳이 있음이다.



김성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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