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임의 쓸모
연예인 누구 닮았어요 그가 말했다. 그는 잠시 생각을 하는 눈치더니 아 그래 송중기, 송중기 닮았어요 하고 말했다.
이런 칭찬은 역적의 시신과도 같아 나서서 수습할 수 없다. 잘못 나섰다간 저기 양심도 없는 놈 보소 손가락질 받기 십상이다. 그 정도면 다행이지 심한 경우 현장에서 조리돌림을 당할 수도 있는 일이다.
그리하여 나는 현명한 방법을 택하였다. 그냥 대충 잘 보아줘 고맙다 넘어간 것이다. 스스로 현명하다 생각했다. 왜 아니겠나. 오억 원 가진 놈을 백억 부자라 소개하면 차액인 구십오억 만큼 무시 받는 것이다. 닥치고 오억의 이점이나 누릴 일이다.
그러나 곰곰이 생각하니 그리 가벼이 지나칠 만한 것인가 싶어진다. 잠시 이야기를 하다가 송중기 생각이 나고 또 다른 이야기를 하다가 다시 송중기 생각이 나는 것이 이 칭찬을 그저 흘려버려선 안 되겠다 그런 생각에 이른다. 말하자면 남은 생 가운데 다시는 듣지 못할 수 있는 칭찬일지 모를 일이다. 그리하여 나는 내가 오늘 송중기 닮았다는 이야기를 들었음을 여기에 새겨두려 한다. 더불어 앞으로 송중기의 모든 행보를 호감을 갖고 응원하며 지켜보기로.
초면에 귀한 칭찬을 해준 이는 제가 읽은 책을 소개하겠다며 직접 작성한 노트를 꺼내들었다. 거기엔 꾹꾹 눌러쓴 글씨로 책의 이모저모를 꼼꼼히 기록한 것이 마음을 쓴 독서였음을 짐작케 했다.
그가 가져온 책은 김수현의 <나는 나로 살기로 했다>인데, 참가자들이 모두 제목은 들어보았을 만큼 유명한 책이다. 한때 서점마다 넓은 매대에 이 책이 좌악 펼쳐져 있었는데, 무려 전 세계 156만부나 팔려나간 성공작이라 했다.
누군가의 에세이가 156만부나 팔리다니, 나는 그가 부러웠다. 내가 쓴 책은 156부를 간신히 넘겼을까 싶은데, 156만부는 얼마나 큰 숫자인지 감도 오지 않는다. 이정도면 대전 쯤 되는 도시 시민 전부가 한 권씩 사 읽은 꼴인데, 이게 얼마나 대단한 일인가 말이다. 개중에선 이처럼 책 내용을 따로 적어가며 곱씹는 이들도 있는 것인데, 좋은 독자와 만나는 일이란 작가에게 얼마나 귀한 경험일 것인지.
괜한 질투심을 느끼며 나는 그가 풀어놓는 이야기에 귀를 기울인다. 친구와 함께 빈 공장에 들어가 사연 있는 물건들을 챙겨 나온 이야기, 제 부모와 얽힌 오랜 이야기가 특별히 인상적이다. 자기계발서 비슷한 그렇고 그런 이야기를 멀리하는 내게 이런 이야기는 그런 책에도 나름의 효용이 있음을 일깨운다. 그렇다. 언제나 무엇에게건 쓸모가 있으면 될 일이다. 나는 그 쓸모를 다 하고 있는가. 옅은 질투가 스르륵 또 다른 감정으로 화할 때 다른 이의 이야기로 넘어간다.
<물고기는 존재하지 않는다>는 책모임에서 여러 번 만난 책이다. 그만큼 많이 팔렸다는 뜻이거니와 또 누구에게나 제법 인상적이었다는 얘기겠다. 일견 에세이 같기도 한 이 소설엔 일생을 물고기 분류학에 바친 어느 학자의 이야기가 주요하게 등장한다. 그러나 실은 물고기란 건 따로 물고기로 분류할 수가 없는 것이다. 어느 물고기는 포유류고, 또 어느 물고기는 파충류로, 물 안에 산다 뿐이지 각자 나름의 종이기 때문이란다. 물 안에 산다는 점 말고는 생을 유지하고 종을 퍼뜨리는 방식이 물 바깥 것과 다르지 않다니 정말이지 물고기란 종은 따로 존재하지 않는 것이다. 일생을 바친 뒤에 제 삶이 의미 없었음을 알게 되는 삶이란 듣기만도 끔찍하여 나는 이 소설이 무척 비극적으로 느껴졌다. 그렇다면 나는 과연 얼마나 의미 있게 살고 있는가. 생각하니 문득 부끄러워 나는 어서 다음 책으로 눈길을 돌린다.
<달러구트 꿈 백화점>은 또한 한국 출판계의 대히트작이다. 이따금 서점에 가면 이 책을 만나지 않고는 책 구경을 할 수가 없었을 정도다. 읽은 사람 또한 그만큼 많았는데 나는 그중 하나를 오늘 또 만나고야 만 것이다.
책 이야기는 꽤나 흥미로워 우리는 한참이나 이 책 내용으로 수다를 떨기에 이른다. 설정은 이렇다. 꿈속엔 꿈을 파는 가게가 있다. 우리는 꿈에서 느낀 감정을 돈처럼 지불하여 각자가 꿀 꿈을 산다. 어느 꿈은 재미있고 어느 꿈은 끔찍한데 그 꿈 모두에 나름의 의미가 있는 모양이다. 마치 영화처럼 꿈을 생산하는 장인들이 있고, 각자 주력하는 분야 또한 있다고 했다. 책을 가져온 이는 특히 악몽에 쓸모가 있다고, 말하자면 악몽의 긍정적 효과를 부여한 대목이 흥미로웠다 말한다.
사람들은 서로가 자주 꾸는 꿈이 있는지, 있다면 그 꿈은 어떠한 것인지, 꿈을 좋아하는지, 또 잘 기억하는지 등을 가지고 이야기판을 벌인다. 꿈 이야기라면 나도 어디 빠지지 않는 편인데, 이날은 수십 번이나 같은 꿈을 꾼 끝에 마침내는 파훼법을 찾아낸 마녀에게 쫓기는 꿈 이야기를 풀어낸다. 물론 처음은 무서웠다. 그러나 나는 꿈속에서 수련을 거듭하여 더 빨리 달리고 날고 돌고 서고 구르는 능력까지 갈고 닦은 끝에 마침내는 마녀를 농락할 정도가 되었다. 그리하여 이제는 그 꿈을 식상하게 여길 정도에 이르렀으니 이런 식으로 꿈과 대면한 경험이 내게는 적잖은 것이다. 책 이야기가 만일 진실이라면 내게 이 꿈은 어릴 적 즐겨보던 도시괴담 쯤이 될 것으로, 한때는 벌벌 떨며 한 장씩 넘기던 그 책이 어느덧 추억 가득한 시시껄렁한 이야기가 된 것이라 하겠다. 그만큼 성장이 이뤄졌다는 뜻일 테다.
베스트셀러의 향연 가운데 민망하게도 나는 하인리히 뵐의 <카타리나 블룸의 잃어버린 명예>를 꺼내놓았다. 노벨문학상을 받은 작가의 대표작이지만 나는 이 책을 심심하게 읽은 터다. 그건 이 책이 언론의 폐해를 다룬 때문이고, 또 그것이 오늘날 기준으로는 영 식상하기 때문이다. 책은 성실한 가정부 카타리나 블룸이 사건에 휘말려 언론으로부터 화제의 인물로 떠오르고, 온갖 조작 날조보도를 겪은 끝에 언론사 기자를 총으로 쏘아 죽이는 이야기다. 그로부터 카타리나 블룸은 명예를 잃었으나 요즘 기준으론 언론을 타고도 그쯤을 잃지 않는 건 불가능한 일에 가깝다. 겨우 그런 일로 카타리나는 살인까지 하였으니 나는 언론보다도 카타리나에게 불쾌감을 느낀다.
이 책의 또 다른 아쉬움은 소설이 가져야 할 기본 중의 기본인 재미를 상실했다는 것인데, 나는 이 소설의 문제점에 대하여 거의 열변을 토하고 만다. 그런데 웬걸, 모임장이 이 설명이 재미있다며 책을 꼭 읽어보기까지 하겠단다. 나는 그녀가 쓸 것이 내 시간이 아니므로 굳이 말리지는 않는다.
마지막 언급된 책은 모임장이 가져온 <보통의 언어들>이다. 한국 작사가 가운데 가장 유명한 김이나의 에세이로, 책장마다 절반 넘는 양이 비어 있어 나무에게 미안하단 생각부터 불쑥 든다. 그러나 이것은 금세 한 권을 뚝딱 읽어낼 수 있다는 장점이 되기도 하는 모양이다. 카페에 앉아 금방 한 권을 다 읽었다는 그녀는 인상 깊은 구절 몇 개를 떼어내 흥미롭게 소개한다. 이를테면 슬픔과 서러움, 서글픔 같은 비슷하지만 조금씩 다른 단어를 깊이 생각하게 하는 대목들이 언급된다. 하나의 단어를 오래 바라보고 쓰는 단어의 수를 늘려가는 건 삶을 풍요롭게 하는 효과적 방법이다. 왜 의미 있지 않겠는가. 단숨에 베스트셀러 자리에 오른 이 책을 보며 나는 베스트셀러가 된 책들과 그러지 못한 책의 차이를 곰곰이 생각한다.
그러고 보면 내가 쓴 책이 베스트셀러가 되지 못한 건 나 때문이구나 싶다. 나는 도통 이런 이야기들에 흥미가 없고 보다 깊고 보다 진전된 그리하여 보다 불편하고 낯선 이야기들에 관심이 있는 탓이다. 세상 사람이며 사건을 자주 시시해하는 못된 습관을 가진 내가 이런 책모임이라도 다니지 않는다면 어떻게 쓸모 있는 생각을 하겠는가. 그런 마음으로 나는 모임의 쓸모에 대하여 생각해보는 것이다.
김성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