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 모두 다 사람의 일

내가 응원하고픈 사람은 누구인가

by 김성호

삼년에 60만원이라 했다. 그녀는 <내셔널지오그래픽>에 잡지 영업을 당한 모양으로, 3년 치 구독을 60만원에 하기로 결정했다고 전했다. 이날 가져온 책은 처음 받은 잡지로, 제국주의 국가들이 제3세계로부터 약탈한 문화재의 반환에 관한 것이다.


문화재 약탈이라 하면 한국도 제법 피해를 많이 보았을 것인데, 막상 기억나는 대목은 얼마 되질 않았다. KTX를 설치할 당시 기술이전 파트너로 프랑스 떼제베를 선정해주는 대가로 프랑스가 약탈해간 직지심체요절을 반환받기로 한 정도가 떠올랐을 뿐이다. 아니면 간송 전형필 선생의 수집품들이라거나. 물론 프랑스는 양아치스럽게 직지심체요절을 돌려주지 않았고 이는 한 때의 해프닝 정도로 사람들의 관심에서 빠르게 잊혀졌다. 언론 역시 이를 끈질기게 파헤치는 곳을 찾아보기 어려웠다.


무튼 문화재 약탈은 어느 한 나라만의 이야기는 아닌 모양이다. 제국주의 국가들, 이를테면 영국과 프랑스, 독일 등이 제 식민지로부터 빼앗아간 문화재 이야기가 잡지 한 권을 가득 메웠다니 말이다. 잡지에 실린 지도엔 당시 세계지도를 바탕으로 제국과 그 식민지가 울긋불긋 색칠되어 있는데 그 시뻘건 생김새가 섬뜩하게까지 느껴질 정도였다.


잡지를 가져온 이는 카메룬 술탄의 왕좌 이야기를 풀어놨다. 사진으로만 봐도 범상치 않은 이 독특한 왕좌는 구슬 같은 것으로 화려하게 장식돼 있었는데, 19세기 초 이 일대를 식민지배한 독일이 왕좌를 빼앗기로 단단히 마음을 먹었던 듯 보였다. 독일은 술탄의 전쟁에 군사력을 지원해주는 대가로 왕좌를 내달라 요구했다. 난감했던 술탄이지만 겨우겨우 복제품을 만들어 넘기는 것으로 합의한다. 그러나 무리한 일정에 기일까지 복제품이 완성되지 못하자 독일은 원본을 가져가기로 합의를 본다. 이렇게 빼앗긴 왕좌가 지금 독일 베를린 박물관에 있다. 카메룬은 왕좌를 되찾기 위해 유럽인들의 흔한 이야기, 즉 미개하고 기술력이 부족하여 유물을 전해줄 수 없다는 비판을 깨부술 전문적인 박물관까지 지어둔 상태다. 프랑스나 영국에 비해 유물 반환에 호의적인 독일이 상대란 점도 반환이 기대되는 이유다.


그녀의 설명을 듣다보니 한국이 직지심체요절을 받지 못하는 과정에서 프랑스 도서관 직원인가 뭔가 하는 인간이 이 귀한 유물을 한국 같이 관리할 역량이 없는 곳에 내줄 수 없다나 어쨌다나 했던 말이 떠오른다. 프랑스는 자기들 법으로 약탈이든 뭐든 제 나라에 있으면 제 나라 유물이라 규정하고는, 어떠한 반환 요청도 묵살하는 걸 기본적인 문화재 정책으로 삼고 있다. 그런데 직지심체요절만큼은 도서관 직원이 보자기에 싸들고 입국하여 떼제베의 기술이전 계약만 이뤄지면 돌려줄 것처럼 연기를 했던 것이니 이 기만극을 국가적 차원에서 대응할 필요가 있었던 것인데 우리는 너무나 빨리 그 사실을 잊어버린 건지도 모르겠다.


혹자는 먹고살기 바쁜 세상에서 그깟 유물이 무어 그리 중요하냐고 반문한다. 여전히 강성한 옛 제국주의 국가들로부터 유물을 찾겠다는 시도가 생산적이지 못하고 불필요한 잡음만 일으킨다는 것이다.


그러나 세계 최초의 금속활자, 말하자면 지식의 축적과 전파의 상징물이 한반도에서 유래됐단 건 어마어마한 일이다. 이것을 빼앗겨 현재까지 되찾지 못하며, 또 그 사실조차 기억하지 못하는 건 참담하고 수치스런 일이다. 역사와 그 상징물의 중요성을 이야기하는 것이 오늘 더 부유하며 편안하게 사는 것보다 나은 일이라고 대체 어떻게 설득할 수 있을까.


나는 <비상하는 용 베트남>으로 설명을 이어간다. BBC 하노이 특파원으로 베트남에서 추방까지 당한 이력이 있는 빌 헤이턴의 저술로, 나는 이보다 대중에게 베트남이란 나라를 효과적으로 설명하는 책을 읽어본 일이 없다. 책은 역사는 물론 경제와 산업, 문화와 정체, 종교와 인종 등 다각도로 베트남 사회를 분석한다. 이중 개발과 역사성이 맞붙는 탕롱황성 부지 개발사업 사건은 오늘의 주제와도 맞닿아 흥미를 자아낸다.


헤이턴은 책에서 당시 하노이 중심부 탕롱황성 부지가 개발되기로 결정돼 있었다는 사실을 언급한다. 주체는 하노이시고, 베트남 개발사업이 대개 그렇듯 뒷배로 공산당 고위인사를 끼고 있었을 가능성도 제기한다. 말하자면 새 국회의사당이며 컨벤션센터 같은 현대화된 건물이 이 넓은 부지 위로 들어설 가능성이 있었던 것인데 사업이 수면 위로 올라오며 문제가 발생한다. 천년 수도의 상징인 황성을 이대로 허물 수는 없다는 역사학계가 그 중심으로, 판후이레와 쩐꾸옥브엉, 도호아이남에 더하여 보반끼엣 전 총리까지 힘을 실었다고 했다. 전국적으로 이어진 탕롱황성 보존 캠페인에다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 등재까지 이뤄지며 마침내 개발사업은 백지로 돌아간다. 오늘 하노이를 방문하는 관광객이라면 대개 탕롱황성을 한 번쯤 찾게 마련인데, 그곳에서는 천년의 역사 뿐 아니라 문화재를 수호하려는 이와 개발하려는 이 간에 벌어진 치열한 싸움, 마침내 보존하려는 이들이 승리한 귀한 기록까지를 읽어내야 마땅한 것이다.


테이블리더는 <오염된 재판>을 가져왔다. 늘 범죄와 관련한 책을 읽는 그는 이 책에 DNA 검사가 밝혀낸 잘못된 사건들이 여럿 등장한다고 설명했다. 그 상당수는 지능이 떨어지거나 사회적으로 고립되거나 가난하다는 등의 사유로 세상에 제 목소리를 전할 수 없는 이들이 피해를 본 건이었다. 한국에서 재심을 청구해 뒤늦게 바로잡힌 사건들 또한 그와 비슷한 종류다. 대개 검찰이나 경찰은 내적 확신을 갖고 피의자를 대하고, 때로는 상부의 압력에 따른 결과로 고의로 범인을 조작하기도 했던 것이다. 수집된 250여 건의 사건들을 구했다는 저자의 끈기가 놀라우면서도 한국에선 왜 그와 같은 보도가 나오지 못하는가를 뼈저리게 고민하였다. 잘못된 사건을 피해자가 직접 언론에 가져오는 경우는 생각해볼 수 있겠으나 사건 당사자가 아닌 기자가 정보에 접근하기란 참으로 어려운 일이다. 결국 검찰과 경찰 내부의 오염된 수사에 대한 기록이 외부에 공개될 수 있어야 할 것인데, 이는 이들 조직의 장이 선출직으로 바뀌지 않는 한 불가능하지 않을까를 생각하였다. 아마도 미국과 한국이 이 같은 정보에 접근하는 길이 다르다면 그 근저엔 이러한 이유가 있지는 않은가 싶다.


흔히 경찰을 두고선 두 가지 시선이 엇갈린다. 하나는 한국 경찰에게 권한이 없다는 것이다. 미국 경찰처럼 피의자에게 적극 대응할 수 있도록 집행을 위한 권한 강화가 필요하다고들 말한다. 실제로 취객에게 폭행을 당하거나 강력범에게 제대로 대응하지 못하는 경찰의 모습은 추락한 공권력이 얼마만큼 무능할 수 있는지를 내보인다. 그러나 그 반대편엔 범인을 조작하고 시민을 우롱하는 못난 경찰의 면모 또한 있었음을 잊어선 안 된다. 그들에게 더 많은 권한을 주기 전에, 그들 스스로 얼마나 제가 잘못 쓴 권한에 대하여 반성하였는지를, 또 그를 개선하였는지를 증명할 필요가 있는 것이다.


결국 모든 건 사람이 하는 일이다. 누구는 남의 것을 빼앗고 누구는 제 것을 찾으려 한다. 누군가는 개발을 하려하고 누군가는 옛 것을 지키려 한다. 누구는 조작을 하고 또 누구는 조작된 일들을 구하여 모은다. 누군가는 이익을 얻고 누군가는 수고로움을 감당한다. 내가 응원하고픈 이는 언제나 후자다.



김성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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