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 읽는 이가 읽지 않는 이보다 적은 세상

무너지는 출판시장 속 읽고 쓰는 일의 의미

by 김성호

0.78까지 떨어진 합계출산률이 인구 자연소멸을 경고하는 가운데 그보다 먼저 소멸할 것이 꼭 몇가지 있다. 그 하나가 독서인구다. 한국 1인당 평균 독서량은 매년 한 권 남짓씩 추락하여 어느덧 1년에 5권을 넘지 못하게 되었다. 스스로 책을 읽는다 생각하는 독서인구 역시 40%대까지 줄어들어, 조사가 시작된 이래 아예 읽지 않는 이가 더 많은 시대가 처음으로 열리게 됐다. OTT서비스를 비롯해 유튜브와 팟캐스트 등 다양한 양식의 콘텐츠가 넘쳐나니 굳이 책을 읽지 않아도 부끄럽지 않다 생각하는 이들이 많은 것도 이유가 될 것이다. 조금 과격하게 말하자면 책을 읽는 건 구시대의 콘텐츠 수용방법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닐지 모른다.


그러나 한국 출판시장은 정 반대 분위기다. 읽는 이도 없고 팔리는 책도 얼마 안 된다며 앓는 소리를 하지만 나오는 책은 하루에도 200권을 헤아린다. 활동하는 출판사만 1만개에 달하고 한해 출간물이 7만권을 훌쩍 넘어가니 많이 낳아지고 많이 사멸하는 다산다사 네 글자가 한국 출판의 본질이라 해도 틀리지가 않다. 읽는 이는 적은데 쓰는 이는 많다니 이 얼마나 민망한 일인가. 우리는 얼마나 듣지 않고 쏟아내기만 하는 건지 그 부조화가 창피하여 나는 글을 쓰는 일의 가치마저 의심하게 되는 것이다.


신념이 흔들리고 마음이 어지러울 땐 정도를 걷는 이를 본다. 책이며 출판과 관련하여 나는 책을 즐기는 마음으로 책 이야기를 나누는 이들과 만나고는 하는 것이다. 요새는 집 근처에서 하는 책모임을 발견해 가끔씩 나간다. 멀리는 발품 팔지 않는, 그러나 집 앞으로는 기꺼이 나가는 책 애호가들을 나는 흥미로운 눈길로 오래 바라본다.


알랭 드 보통은 말만 많이 들었다. 대학교 다니던 시절 글 깨나 읽는 여자아이들이 이 작가의 책을 끼고 다니는 모습을 많이 보았다. ‘알랭’이란 말랑한 이름부터 ‘드’라는 귀족적인 글자와 ‘보통’이란 지나치게 겸손한 성까지가 몽땅 마음에 들지 않아서 나는 그의 책을 단 한 권도 읽어보지 않았다. 실은 이름이 알려지자마자 모든 사람들이, 그것도 주로 세련된 여자아이들 위주로 인기를 끄는 것이 아니꼬워서였는지도 모르겠다. 무튼 그의 책 <불안>도 이름만 알고 있는 것인데 오늘 한 사람이 그의 책 여기저기에 포스트잇까지 붙여 상세하게 설명을 시작한다.


그의 말을 요약하자면 이 책은 보통이 현대사회의 불안을 총체적으로 분석한 책이다. 불안이 생기는 요인을 몇 가지로 나누고 또 해법을 몇 가지쯤 내놓았다는 것인데, 불안보다는 실패와 자주 만나는 나로서는 그닥 끌리는 이야기는 못된다.


자고로 불안이란 기대값과 결과값의 괴리에서 비롯되는 것이 아닌가. 기대를 낮추거나 결과를 감내하는 자세가 수반되지 않고서야 불안을 떨치기란 어려운 일이다. 안타깝게도 나는 불안을 자주 느끼는 이 가운데 기꺼이 기대를 낮추려는 이를, 또는 결과를 기꺼이 감내하려는 이를 얼마 보지 못하였다. 그렇다면 어쩌겠나. 계속 불안할 밖에.


다음 나온 책은 <평화학이란 무엇인가>다. 서울대학교 교수진이 내놓은 다분히 교과서스런 책인데, 이걸 취미 삼아 읽는 이의 목적은 무엇인지 새삼 궁금해진다. 그는 아주 한참을 이 책이 무엇을 지향하며 어떤 내용을 담았는지 풀어내었는데 떨리는 목소리로 끈기 있게 설명하는 모습에 호감이 일어났다. 무려 로크, 루소, 홉스로 시작하여 생피에르와 칸트, UN과 EU에 대한 이야기까지를 풀어놓았던 것이다. 그에겐 중요한 내용을 조금 건너뛰거나 잘못 소개하는 일이 있어서는 안 되는 것처럼 보였는데 그 열의가 그대로 느껴진 덕에 나는 매우 오랜만에 냉혹한 국제관계와 평화의 가능성에 대하여 깊이 생각하는 계기를 갖게 되었다.


그는 EU 식의 정부 위 정부의 존재와 UN 식의 희미한 연방제 중 어느 체제가 더 나으냐를 물었다. 공권력의 존재가 언제나 그 반대보다는 낫다고 여기는 나는 단연 EU를 지지한 것이다. 말라리아 등 후진국 질병을 방치하고, 시리아와 예멘의 내전이며, ISIS 사태부터 수많은 제3세계 인종갈등을 방치해오다시피 한 UN보다야 책임감 있게 제 역할을 수행하려는 EU가 진일보한 체제임을 스스로 입증하지 않았던가 말이다.


니르 이얄의 <훅>도 흥미로웠다. 1000만 명쯤이 이용하는 서비스를 다루고 있다는 이는 여러 성공한 서비스들처럼 저도 소비자가 더 오래, 더 자주 서비스를 찾도록 고심하고 있다 하였다. 이 책을 읽은 것도 그 일환이라 하겠는데, 책 제목인 훅은 후크송 할 때 그 훅으로써, 말하자면 뭔가 제대로 꽂혀 있는 이를 가리키는 말이다.


인간의 심리부터 서비스의 기술적 상호작용을 깊이 따진 끝에 저자가 내놨다는 훅 모델은 크게 네 가지 과정으로 인간을 함락시킨다. 트리거, 행동, 가변적 보상, 투자가 그것이다. 이해한대로 적어보면 서비스로 끌어들이는 계기가 있어야 하고, 그 안에서 쓸 만한 콘텐츠를 제공하며, 또 다른 콘텐츠를 자연스레 노출하고, 여기저기 서비스를 퍼뜨리도록 이끈다는 이야기다. 우리는 이로부터 틱톡이며 유튜브 숏츠와 인스타며 페북 영상에 빠져 허우적거리는 일들을 이야기하기 시작한다. 나는 요 몇 달 부쩍 쓰잘데기 없는 영상들을 습관처럼 넘겨보는 버릇을 상기하고 만다. 말하자면 나는 제대로 훅된 것이다.


그러고 보니 요즈음 웹소설을 연재하는 지인들이 떠오른다. 이들 중 몇은 제가 연재하는 소설에 매회 대동소이한 공식을 적용하고 있는데, 처음 몇 회에 공을 들여 독자를 구독시킨 이후 같은 방식임에도 덜 공들인 이야기로 자극만 전달함으로써 빠져나가지 못하게 하고 있다고 털어놓았던 것이다. 그렇다면 그것 역시 트리거부터 투자에 이르는 훅 공식을 일부 차용한 것인데, 세상에 이런 일이 적지만은 않은 것 같아 나는 세상사로부터 공식을 끌어내는 이들의 솜씨를 흥미롭게 짚어본다.


다음 이가 소개한 책도 꼭 그와 같다. 그는 <좌익축구 우익축구>란 책을 꺼냈는데 제목부터가 정치와 스포츠를 아우르겠단 저만의 색채를 드러낸다. 이미 절판된 책을 어렵게 구했다는 그는 책의 내용을 맛깔나게 풀어 설명한다. 요컨대 저자는 현대축구를 크게 둘로 나눠 설명한다. 하나는 펩 과르디올라로 요약되는 좌익축구며, 다른 하나는 디에고 시메오네로 상징되는 우익축구다. 축구를 아는 이는 바로 감이 올 것인데 이기는 데 올인하는 정신력과 체력과 수비의 축구냐, 다채로움과 보는 재미를 선사하는 축구냐가 그 기준이 되겠다. 책을 소개한 이는 읽으면 읽을수록 좌익과 우익이 꼭 반대로 붙었다는 인상을 느꼈다 말하는데 나 역시 그와 같은 의견이다. 무엇보다 근 몇 년 동안 '좋은 축구'라는 말이 곳곳에서 들려오는데 이 말을 쓰는 이들은 죄다 펩을 중심으로 한 이 책의 좌익축구 지지자들인 것이다. 그러나 이기고 지는 것 외에 축구에 좋고 싫음이며 옳고 틀림이 있다고 할 수 있는 것일까. 이 물음은 꼭 몇 년 전 역사와 정치에 대하여 바르고 틀림의 잣대를 대길 즐기던 우익 정치인들을 떠올리게 한다. 아마도 저자는 먹고사니즘을 우익으로, 더 잘 살기를 꿈꾸는 걸 좌익으로 보았을 테다. 그러나 현실은 펩의 팀이 시메오네의 팀보다는 훨씬 돈이 많은 것이고, 나의 팀은 안익수를 내세워 케이리그 하부스플릿을 전전하는 것이다. 대체 정의는 어디에 있다는 말인가!!!


내가 가져온 책은 <성형을 생각하는 당신에게>다. 기자 시절 나는 성형외과 전문의 이주혁을 만나 이야기를 나눈 일이 있다. 나는 그에게 좀처럼 꺾이지 않는 기개와 자긍심을 보았는데 이 책 가운데 그와 같은 미덕이 꼭 들어 있어 적잖이 마음에 들었다. 한국 성형업계의 번성과 그 안에 자리한 왜곡된 요소들을 전문가의 시선에서 하나하나 짚어내는 과정이 섬세하다. 책임을 방기한 정부와 욕망 앞에 괴물이 되어가는 성형업계의 실태가 그대로 드러나는 가운데, 나는 내가 취재하고도 써내지 못했던 이야기 중 얼마를 참석자들에게 털어놓기에 이른다. 대체 이 나라는 얼마나 더 많은 이를 죽이고, 병신으로 만들 것인가를, 어째서 정부와 언론은 거대해진 성형산업의 그림자를 보려 하지 않는가를 답답해한다.


가만히 생각해보면 성형이야말로 훅을 제대로 꽂아버린 산업이 아닌가 싶다. 넘실대는 광고와 광고인 줄도 알아차리기 어려운 간접광고들로 의료소비자를 유인하고, 알게 모르게 성형에 대한 경계를 무디게 하며, 심지어는 성형 이후 나아진 삶을 선망하게까지 하니, 나는 이 모두가 놀랍도록 효과적으로 기능하는 광경에 아연해지지 않을 수 없다.


수많은 책이 한 자리에 올라와 읽지 않은 이를 두드리고 사라진다. 나는 이날 단 몇 시간 동안 여러 권의 책을 반드시 읽어보아야겠다 결심하였는데, 그중 몇 편 쯤은 나를 지금보다 더 나은 곳으로 이끌지도 모를 일이다. 아이도 독서량도 줄어만 가는 세상이다. 이런 세상 가운데 내 이야기를 풀어놓을 가치가 있을지를 나는 오랫동안 고민한다. 정말 세상엔 정답이 있는 것일까. 사람들을 훅하게 하고, 그들에게 좋고 바른 글을 읽히는 것이 의미가 있는 것일까를 나는 걸음을 멈춘 채 한참동안이나 생각하게 된다.



김성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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