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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성호 Jun 20. 2024

마이클 무어는 '선동'한다 그러므로 '진보'한다

오마이뉴스 게재, <다음 침공은 어디?> 영화평

[김성호의 씨네만세 150] 마이클 무어의 <다음 침공은 어디?>

▲ 영화 <다음 침공은 어디?> 포스터. ⓒ 판씨네마(주)


오래전 일이다. 누군가 내게 믿는 것이 있는지 물었다. 나는 그에게 평소 믿는다고 생각했던 몇 가지를 말했으나 그는 찬찬히 고개를 가로젓고는 그 모두가 순수한 믿음이 아닌 근거에 따라 흔들리는 판단임을 논박해냈다. 천천히, 하지만 깊은 문답이 오간 끝에 나는 거센 논박으로부터 오직 두 가지 명제만을 지켜낼 수 있었다. 하나는 인간이 존엄하다는 것, 다른 하나는 역사는 진보한다는 것이다.


이 두 가지 명제는 이를 반박하는 구체적이고 실질적인 근거에도 불구하고 내가 끝내 지키려 하는 것이었다. 합리적 근거에 기초한 판단과 달리 이 둘은 맹목적 믿음에 가까웠으며 그 정체를 알고도 좀체 부인하고 싶지 않은 종류의 것이었다. 인간이란 생각하고 느끼며 공감하는 존재이기에 존엄하고, 역사란 느리지만 꾸준히 진보한다는 사실. 비록 이것이 단순한 논리의 비약이자 환상에 가까운 신념일지라도 나는 아직 이 믿음을 포기하고 싶지 않다.


미국의 이름난 다큐멘터리 감독 마이클 무어 역시 낙천적 믿음을 간직한 사내다. 특유의 신랄한 조롱으로. 만약 그의 영화를 봤다면, 부시의 얼굴을 붉다 못해 검어지게 했을 게 분명하다. 그의 작품들은 무어의 낙천적인 세계관을 실현하기 위한 수단에 가깝다. 그가 그토록 열정적으로 진보를 향한 영화를 찍는 근저에는 자신의 영화를 통해 세상이 더욱 나아질 거라는 믿음이 자리하고 있는 듯하다.


영화가 세상을 바꿀 수 있을까?

  

▲ 다음 침공은 어디? 좋은 문화와 제도를 약탈하러 떠나는 마이클 무어 ⓒ 판씨네마(주)


영화가 끝을 향해 다가설 무렵, 무어는 오랜 친구와 베를린 장벽을 따라 걷는다. 그는 친구에게 "세상엔 불가능한 게 없다"며 "베를린 장벽이 무너졌다는 사실 자체가 이를 증명한다"고 말한다. 그는 다시 "아무거나 불가능한 걸 하나만 말해보라"고 하지만 불가능을 용납하지 않을 듯한 베를린 장벽 앞에서 친구는 아무 말도 하지 않는다.


무어는 영화를 통해 세상을 바꿀 수 있다고 믿는 낙관론자다. 카메라 앞에 선 그에게선 지울 수 없는 세월의 흔적이 역력하지만 관객을 흥분시키는 기세만큼은 여전하다. 그렇다. 무어는 선동가다. 그의 다큐멘터리에서 객관적이고 점잖은 저널리즘을 기대했다간 코가 깨지기 십상이다. 그는 관객을 자신이 원하는 방향으로 설득하기 위해 방해가 되는 건 가차 없이 쳐내고 조롱하며 부숴버린다.


무어의 다큐에서 공정과 정직은 제1의 윤리가 아니다. 다른 많은 감독들처럼, 보통은 그보다 자주, 그는 자신의 의도를 실현하기 위해 소재를 선별하고 논리를 단순화하길 꺼리지 않는다. 자연히 사회문화적 맥락이 생략되는 경우도 생기지만 그는 이 영화에서와 같이 "잡초가 아닌 꽃을 따러 왔다"는 주장으로 자신의 선택을 간단히 정당화한다.


마이클 무어가 침공한 아홉개 나라

  

▲ 다음 침공은 어디? 프랑스 공립학교를 찾아 급식을 프랑스의 급식제도를 살펴보는 마이클 무어 ⓒ 판씨네마(주)


<다음 침공은 어디?>에서 무어는 유럽을 중심으로 전 세계 9개국을 침공, 미국의 사회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선진적이고 효과적인 제도를 약탈한다. 성조기를 어깨에 짊어진 그가 처음으로 침공한 나라는 1년에 8주의 유급휴가와 추가급여가 보장된 이탈리아다. 이후 그는 다른 누구보다 성숙한 자세로 과거사를 대하는 독일, 셰프들이 신경 써 조리한 음식이 급식으로 제공되는 프랑스, 숙제 없이도 필요한 모든 교과를 가르치는 핀란드, 학자금 대출 없는 무상교육의 나라 슬로베니아, 마약투여를 처벌하지 않는 포르투갈, 범죄자의 처벌보다 교화를 우선하는 노르웨이, 여성의 권리를 헌법으로 보장한 튀니지, 경제범을 엄격하게 처벌한 아이슬란드까지 9개 나라를 돌며 오늘날 미국사회에 적용되면 좋을 문화적이며 사회적인 성취를 살핀다.


문제는 이 과정에서 제도 이면의 문제가 의도적으로 생략된다는 점에 있다. 무어는 이탈리아의 살인적인 실업률이나 핀란드의 치밀하고 철저한 교육체계, 슬로베니아의 심각한 재정부담 등을 전혀 언급하지 않고 그 장점만을 펼쳐 보인다. 해당 이슈들은 그 나라에서 상당한 논란을 일으키고 있지만 영화는 그와 관련된 어떠한 문제도 드러내지 않는다. 줄기며 이파리 없이 꽃잎만 따온 꼴이다.


그럼에도 영화의 가치를 무작정 폄훼하긴 어렵다. 무어는 다큐멘터리가 내포한 저널리즘과 선전기능을 효과적으로 활용해 관객을 능란하게 구워삶고, 그가 전하는 건 우리가 살아가는 지금 이 시대에 너무도 절절히 와 닿는 메시지기 때문이다. 평범한 작가는 결코 이르지 못할 저널리즘의 가치를 이룩하고 역시 평범한 감독은 시도할 수 없을 강렬한 선동을 해냈다는 점에서 이 영화는 볼 가치가 충분하다.

  

▲ 다음 침공은 어디? 아이슬란드를 찾아 금융위기를 촉발한 금융가들을 처단한 검사를 찾은 마이클 무어. ⓒ 판씨네마(주)



김성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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