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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거진 칼럼

0의 리더십

언론사 입사준비 10

by 김성호

나는 숫자 0을 좋아한다. 흔히 영, 공, 빵, 땡으로 불리는 이 친숙한 기호는 다른 여러 숫자들 가운데서도 특별한 존재다. '있음'을 표현하기 위해 만들어진 다른 자연수들과 달리 공은 '없음'을 표현하기 위해 만들어진 숫자다.


하지만 존재하지 않는 것을 표현하기 위해 만들어진 숫자임에도 공은 현대사회에서 가장 널리 쓰이는 기호 가운데 하나이고 동시에 가장 중요한 숫자가 되었다. 공의 특별함은 바로 여기에 있다.


인도에서 처음 사용된 공은 그들의 기수법 아래에서 빈 자리를 나타내는 기호로 널리 쓰였다. 공이 등장하기 이전에는 어떤 자리가 비어있다는 것을 나타내기 위해 그냥 그 자리를 비워두었고 그에 따른 혼란과 불편이 매우 컸다. 하지만 공이라는 숫자가 만들어진 후 이런 불편은 일거에 해소되었다. 공의 등장은 그야말로 혁신이었다.


공은 단순히 기수법상 없는 자리를 메우는 역할에 머무르지 않았다. 없는 것을 표기해야 한다는 발상의 전환이 공이라는 새로운 수를 만들었고 이를 통해 인류는 수의 새로운 세계에 접어들 수 있었던 것이다. 실존하는 것의 수를 표기했던 자연수의 세계가 기존의 수학적 우주의 전부였다면 공이라는 실존하지 않는 수의 발견을 통해 인류는 정수의 세계에 접어들게 된 것이다. 정수의 세계 속에서 공은 수직선과 좌표계, 양수와 음수 사이의 중심점이 되었다. 존재하는 모든 수 가운데서 균형을 잡는 수의 중심이 되었던 것이다. 공은 절대적인 균형자로서 특정한 수가 얼마나 치우쳐 있는지, 즉 얼마나 크고 작은지를 나타내는 기준점이 되었다.


물론 공이 가장 빈번하게 쓰인 건 기수법상의 표기에서였다. 일과 십, 백, 천, 만을 구분하는 것은 앞에 붙은 숫자 일이 아니라 공에 의해서다. 사람들은 수의 뒤에 공을 붙이는 것만으로 각 숫자의 단위에 이름을 붙여 외워야 했던 불편을 일거에 해소할 수 있었고 수는 일상과 관련한 산술적 계산에서 벗어나 추상화된 수학, 나아가 대수학의 영역까지 진입하였다. 일곱개의 문자를 통해 모든 수를 표현하고자 했던 로마에 비해 인도에서 산술과 대수가 발달한 건 온전히 공의 공이었다.


공은 놀라운 기능 만큼이나 특별한 성질을 가지고 있다. 사칙연산에 있어 공은 덧셈과 뺄셈의 항등원이며 어떤 수와 곱하거나 나눠도 공을 만드는 특별한 능력이 있다. 덧셈과 뺄셈에서는 자신을 드러내지 않는 겸손을 보이지만 곱셈과 나눗셈에서는 상대를 물들이는 확장성도 지닌다. 또한 공은 뒤서서 크게 하고 앞서길 싫어한다. 다른 수의 뒤에 붙는 것 만으로도 전체를 크게 하는 능력이 있지만 다른 수의 앞에서는 자신을 감추는 겸손도 갖췄다. 게다가 다른 수의 치우침을 알게 하는 중심점이자 결코 흔들리지 않는 균형자이기까지 하다. 이쯤되면 공을 수의 세계의 진정한 리더로 불러도 지나친 표현이 아닐 것이다.


오늘날의 우리사회를 진단할 때 빠지지 않고 등장하는 말이 '리더십의 부재'다. 필마단기의 영웅적 리더십과 독불장군식 리더십이 더이상 통용되지 않는 오늘날의 한국사회에서 리더다운 리더는 좀처럼 모습을 드러내지 않고 있다. 책임지지 않고 겸손하지도 않은 리더와 무임승차의 이익만 누리려는 팔로워들이 한국사회를 가득 메우고 있는 것처럼 보인다.


바로 이 순간 우리에게 필요한 것이 공이 주는 지혜가 아닐까 한다. 덧셈과 뺄셈의 사소한 이득에는 자신을 드러내지 않지만 곱셈과 나눗셈의 커다란 변화에서 자신을 확장시키는 그런 리더가 필요하다. 가끔은 빵이나 땡으로 불려도 화내지 않고 묵묵히 중심을 잡아주는 그런 리더, 자신을 내세우기보다 뒤서서 전체를 키우는 데 집중하는 공과 같은 리더가 절실하다.



2014. 6. 23. 월요일

김성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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