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마이뉴스 게재, <원팀리더십> 서평
[김성호의 독서만세 157] 이정찬의 <원팀리더십: 한국축구대표팀에 '팀의 길'을 묻다>
28일, 또 한 번 손흥민의 득점으로 대표팀이 승리했다. 카메룬과의 평가전을 맞아 1대0의 신승이다. 월드컵 본선무대에서 맞닥뜨릴 상대의 면면을 떠올려보면 최근 대표팀의 경기력엔 의문부호가 따를 밖에 없다. 파울로 벤투 감독의 리더십은 이대로 괜찮은 걸까. 2002년 이후 많은 시간이 흘렀건만 한국축구는 언제까지 약체여야 하나. 이 같은 질문이 사람들의 머릿속을 스친다.
<원팀리더십: 한국축구대표팀에 '팀의 길'을 묻다>의 저자 이정찬 기자가 FIFA랭킹 1위를 기록한 벨기에 축구를 취재할 때의 이야기다. 그는 벨기에 유소년시스템 개혁을 주도한 크리스 판 푸이벨데 벨기에축구협회 기술이사 겸 유소년 아카데미 총괄과 나눈 대화를 책에 적었다. 이 기자는 그와의 대화 뒤 농담처럼 한 가지 질문을 던진다.
"한국도 벨기에의 유소년 시스템 정책을 받아들이면, 빠른 시간 안에 FIFA랭킹이 오를 수 있을까요?"
그는 단칼에 "아뇨. 불가능해요"하고 답한다. 이어 나오는 말이 걸작이다.
"제가 만약 한국에 가게 된다면, 저는 가장 먼저 한국의 문화부터 연구할 것입니다. 그리고 한국 문화에 가장 적합한 방식을 찾을 겁니다. 당신들이 가진 것을 먼저 돌아보세요. 한국엔 좋은 선수들이 넘치고, 좋은 코치들이 많아요. 그것을 바탕으로 무엇을 바꿀 수 있는지, 조금 더 나아질 수 있는 부분이 무엇인지 찾아보세요. 카피 앤 페이스트는 절대 불가능합니다."
부임 직후 유니폼 색 바꾸려 했던 감독
이정찬 기자는 책에서 흥미로운 이야기 하나를 더 소개한다. 이번엔 한국 국가대표팀 원정 16강을 이끈 성공한 지도자 허정무 감독의 이야기다. 그가 K리그 인천유나이티드 감독으로 부임했을 때 유니폼 디자인에 관심을 가졌다고 한다. 평소 붉은 빛깔의 유니폼에서 강한 기세가 나온다고 믿던 그는 인천의 유니폼에 붉은 색을 넣으려고 시도했다.
문제는 인천의 유니폼은 검은색과 푸른색 줄무늬로, 팬들이 이를 십 수 년 동안이나 검파유니폼이라 부르며 아껴왔다는 데 있었다. 허 감독의 변화 시도가 알려지자 팬들의 반발이 있었고 결국 시도는 좌절된다. 허 감독이 인천에서 좋지 못한 결과를 얻고 물러나기까지 이 같은 성향이 영향을 미쳤을지 모를 일이다.
실제로 허 감독은 부임 직후 김남일, 설기현, 정인환, 김명운 등 본인에게 익숙한 선수들을 영입하기 위해 기존 스쿼드에 크게 변화를 주기도 했다. 기존의 것을 살피는 리더십이 그에게 없었던 것 아니냐는 비판이 제기될 수 있는 대목이다.
한국 축구를 이끈 리더십
이 책은 한국축구의 여러 사례를 들어 바람직한 리더십을 엿본다. 재료가 되는 건 2002년부터 2017년에 이르는 한국 축구 전반이다. 거스 히딩크부터 김호곤, 움베르투 코엘류, 박성화, 조 본프레레, 딕 아드보카트, 핌 베어벡, 허정무, 조광래, 최강희, 홍명보, 울리 슈틸리케, 신태용에 이르는 감독들이 책 곳곳에서 소환된다. 널리 알려지지 않은 그들의 일화가 선수와 코치들의 인터뷰를 거쳐 지면 위에 드러난다.
영국과 같은 나라에서 출간돼 인기를 얻는 적나라한 축구판 취재 뒷얘기를 기대하면 곤란하다. 한국 정서에 맞춰 누구의 기분도 거스르지 않는 온건한 책이기 때문이다. 그렇다고 그렇고 그런 시시한 이야기로 생각하면 곤란하다. 각 지도자의 성향을 고스란히 드러내는 일화들로부터 리더의 덕목을 뽑아내는 솜씨가 제법이다.
책은 울리 슈틸리케와 같이 한국축구에서 옹호하는 이가 거의 없다시피 한 감독에 대해서도 긍정적인 면을 뽑아낸다. 슈틸리케가 한국축구에 자율성을 심었다는 게 저자의 주장이다. 이와 관련해 A매치 출전 경험이 없던 이재성 선수를 방으로 불러 출전여부와 뛰고 싶은 포지션을 물어본 사례 등이 언급된다. 슈틸리케는 정장차림으로 소집장소로 모이던 과거의 관행도 깨고 자유롭게 옷을 입도록 했다. 경기장 안팎에서 논란을 일으켜 주장감이라 여겨지지 않던 기성용에게 주장완장을 채운 것도 그의 결단이라고 소개한다.
무엇보다 부임 1년 동안 대표팀에 59명의 선수를 부르고 이중 11명이 A매치 데뷔전을 치렀다는 점은 인상적이다. 그는 선수를 확인하려 무려 41차례나 지방 출장을 다녔다. 이정협과 같은 선수는 그가 아니었다면 대표팀에 발탁되기 어려웠단 평가도 받았다. 편견 없이 선수를 있는 그대로 보려 한 노력이 슈틸리케에게 있었다.
자율성의 슈틸리케, 고집의 벤투
이 같은 특징은 현 국가대표팀 감독 파울로 벤투와 대비된다. 벤투는 처음부터 분명한 제 스타일을 강조했다. 후방 빌드업 축구로 표현되는 그의 스타일에 어울리지 않는 선수는 리그에서 탁월한 활약을 보여도 차출되지 않았다.
K리그 득점 1위 주민규, 3위 이승우, 라리가에서 뛰는 이강인 등은 벤투호에 아예 차출되지 못하거나 중용되지 못했다. 특히 일본과의 경기에서 이강인을 훈련도 없이 제 포지션이 아닌 최전방 원톱으로 45분만 뛰게 했던 사건은 충격을 던졌다. 그는 이후 한동안 그를 발탁하지 않다 이번 소집 때 차출했으나 2경기 모두 쓰지 않았다. 상암 월드컵경기장에 들어찬 6만 관중이 한 목소리로 이강인을 외쳤으나 그 뿐이었다.
현재로선 벤투의 리더십이 틀렸다고 말할 수 없다. 그는 대표팀을 월드컵 본선으로 이끌었다. 손흥민 중심의 팀을 꾸렸고 그 과정에서 몇몇 재능들은 선택받지 못했다. 그 결과는 본선 무대에서 드러날 것이다.
우리가 알 수 있는 건 벤투가 걸어온 길로부터 그의 리더십의 속성을 알아보는 것이다. K리그 무대를 잘 찾지 않고 새로운 선수를 발굴하지 않는 그의 모습으로부터 주전 선수들에게 안정감을 주는 리더십을 읽어낼 수도 있을 것이다. 반면 변화를 통해 팀에 긴장감을 불어넣거나 전술적 유연성을 도모하는 모습은 찾아보기 어렵다. 이 지점에서 한국 축구에 어떤 리더십이 더 적합했는지를 생각해보는 건 흥미로운 생각이 될 수 있다.
우리에게 필요한 리더는 누구인가
책에서 가장 인상적인 건 글 초입에 적은 대목이었다. 복사 붙여넣기로는 안 된다는 자세, 리더십 역시 환경과 문화에 대한 이해로부터 출발해야 한다는 인식이 과연 선진적이구나 싶었다. 그로부터 쇄신에 대하여, 개혁에 대하여, 나를 인정하는 일에 대하여 생각하게 되었다.
흔히 우리는 하나의 성공방정식을 알고 나면 그것이 모든 사례에 적용되리라 믿곤 한다. 그리하여 너무나 쉽게 현재를 뜯어 고치려고 든다. 고치고 또 고치고 또 고치다 보면 본래 제 것이라 할 만한 것이 얼마 남지 않을 때도 있다. 알고 보면 가장 먼저 뜯어고친 것야말로 '오리지널리티'라 불리는 것, 끝내 지켜야 했을 개성의 씨앗일 수도 있는데 말이다. 아카데미 시상식 무대에서 "가장 개인적인 것이 가장 세계적인 것"이라 했던 봉준호 감독의 말은 참으로 옳았다.
책은 어느 특정한 지도자를 골라 지지하지 않는다. 대신 여러 지도자가 각 시점에 보인 리더십의 형태와 그 장단을 드러내려 할 뿐이다. 그로부터 우리는 우리가 볼 수 있는 여러 지도자, 가깝게는 직장 상사와 대표, 국가대표팀과 프로 스포츠팀 감독, 국회의원과 대통령 등에 대해 생각해볼 수 있다. 그들은 우리의 문화를 깊이 살피고 개선하려 하는가, 잘 보지 않고 제 색깔만 내려하는가.
용산 시대가 개막하고 영빈관 신축을 놓고 사회적 논란이 일기까지 했던 최근의 상황은 이 책을 더욱 흥미진진하게 느껴지도록 한다. 그렇다면 우리에게 필요한 리더는 과연 어떤 모습일까.
김성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