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마이뉴스 게재, <N분의 1은 비밀로>
[김성호의 독서만세 159] 금성준의 <엔분의 일은 비밀로>
교도소에서 정신이 온전치 않은 노인이 죽었다. 노인이 맡긴 물건을 정리하는 건 2인 1조 교도관, 단 둘이다. 기봉규와 허태구가 연 캐리어엔 어마어마한 돈뭉치가 들어 있다. 세다 보니 자그마치 9억 원이다. 일생일대의 기회인가, 둘은 침만 꿀꺽 삼킨다. 비밀로 하고 둘이 나누면 4억 5000만 원씩 떨어진다. 공무원 월급으론 꿈도 못 꿀 액수다. 둘은 돈을 빼돌리기로 결정한다.
<N분의 1은 비밀로>는 한국에선 흔치 않은 소동극이다. 일확천금을 노린 두 교도관이 겪게 되는 우스꽝스럽지만 웃을 수만은 없는 이야기가 소설 한 편을 내달린다. 감추려 할수록 번져나가고 숨죽이려 할수록 터져 나오는 사건들이 꼬리에 꼬리를 물고 이어진다. 거액처럼 느껴졌던 9억 원의 돈이 교도소 밖으로 거의 다 옮겨졌을 무렵, 이들은 어쩔 수 없이 돈을 다시 몰래 돌려놔야 하는 상황에 내몰린다. 그와 같은 황당한 상황이 주는 재미가 이 소설의 승부수다.
기봉규의 아내가 알게 되고, 처남과 그의 애인이 알게 되며, 무당과 또 다른 교도관, 죄수들까지 두 교도관의 비밀을 알게 된다. 9억 원이 2인분에서 3인분, 5인분, 10인분으로 쪼개지는 건 시간문제다. 급기야는 아예 혼자서 다 먹겠다는 이까지 나온다. 교도소 내에서 낌새를 챈 직원이 조사까지 시작하자 기봉규와 허태구는 그야말로 전전긍긍이다. 이러다간 일자리까지 잃고 범죄자가 되어 교도관에서 죄수로 전락하는 게 아닐까. 돈벼락이 벼락이 되는 게 순식간의 일이다.
교도관들이 벌이는 한 판 소동극
금성준의 소설 <N분의 1은 비밀로>는 출판사 넥서스가 처음 개최한 경장편 작가상에서 우수상을 받았다. 교도소라는 결코 친숙하지만은 않은 공간을 배경으로 있을 법한 일상적 소동극을 그려 높은 평가를 받았다.
비일상의 일상화는 일상에 지쳐 새로운 자극을 찾는 독자들에게 언제고 매력을 발한다. 미국 드라마 <프리즌 브레이커>부터 tvN의 <슬기로운 감빵생활>, 근래 유행하는 전과자들의 유튜브에 이르기까지 교도소 안 이야기는 사람들의 호기심을 자극한다.
흥미로운 이야기가 독특한 장르 안에 담겼으니 좋아하는 이가 적진 않을 듯하다. 내달리듯 전개되는 소설의 속도는 활자에 익숙하지 않은 독자도 쉽게 잡아끌 만하다. 매력적인 소재에 무겁지 않은 구성이니 요즈음 흥행하는 OTT 서비스 업체에서도 영상화에 관심을 가질 듯하다.
다소 약한 주제와 예상을 크게 비껴나가지 않는 전개, 소설로서의 완결도가 흠이라면 흠이겠으나 읽는 시간을 지루하게 하지 않을 만큼은 된다. 소설이 달성해야 할 첫 목적이 재미라면 이 소설은 그 목적만큼은 얼마간 달성했다 해도 좋겠다.
한편으로 생각해보게 된다. 하늘에서 떨어진 내 것이 아닌 9억 원과 맞닥뜨렸을 때, 우리는 어떤 결정을 하게 될까. 돈을 어떻게 갖게 되었는지는 오로지 나 혼자만 알 수 있다면 그 유혹을 견딜 수 있는 사람은 얼마나 될 것인가.
내 앞에 9억원이 떨어진다면?
이따금 뉴스에는 내 것이 아닌 돈을 주인에게 찾아주는 이들이 등장한다. 바로 그 뒤엔 온갖 사기로 남의 돈을 갈취하는 이들, 회사 자금을 수십 억 원씩 횡령하는 이들이 나온다. 이들을 가르는 것은 과연 무엇일까. 어떻게 누구는 남의 것을 탐내지 않고, 누구는 그 유혹을 이겨내며, 또 누구는 욕심 앞에 함락되고, 누구는 가책조차 받지 않는가. 그 차이는 무엇인가.
<N분의 1은 비밀로>가 약간이라도 그런 부분을 건드려주었다면 훨씬 더 좋은 작품이 되지 않았을까 하는 아쉬움을 갖는다. 잘 만들어진 적잖은 소동극이 소동 그 자체에서 그치기보단 독자에게 생각할 지점을 던지기도 한다는 점은 이 소설이 나아갈 수 있었던 또 하나의 지점을 보여주는 대목이다.
때로는 저만의 가치를 갖고도 유혹 앞에 함락되는 인간이 있고, 가치 없이 살다 불현듯 살아갈 길을 깨우치는 인간도 있는 법이다. 아무 생각 없이 닥쳐오는 대로 움직이는 인간들의 모습이 나름의 재미를 주는 것도 사실이지만 그런 이들로만 가득한 세계라면 너무 시시하지 않겠는가.
김성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