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무 시간을 날아 도착한 바다는 내가 기억하던 색과 전혀 달랐다. 파랗다고 하기엔 지나치게 투명했고, 에메랄드라 부르기엔 또 너무 깊었다. 흔히 비취색이라 불리는 그 바다 앞에 서니, 이번 여행이 단순한 골프만을 위한 게 아님을 단번에 깨달았다. 이곳에서는 고대 마야의 신화와 현대 골프가 한 시공간에 겹쳐 있었고, 나는 그 길 위를 직접 걸어볼 수 있게 됐다.
누군가가 내게 물었다. 공 하나 치겠다고 스무 시간씩이나 비행기를 타는 이유가 뭐냐고. 한국에도 멋진 골프장이 많고, 일본이나 동남아만 가도 훌륭한 코스를 얼마든지 만날 수 있다. 하지만 내게 골프 여행은 결과보다 그 과정을 즐기는 일도 중요하다. 익숙한 일상에서 벗어나 완전히 다른 풍경과 리듬 속에서 스스로를 새롭게 바라보는 그 시간, 바로 그 순간을 얻기 위해 나는 기꺼이 먼 길을 택했다.
칸쿤은 오래 전부터 마음에 담아두던 곳이었다. 골프하면 흔히 스코틀랜드의 링크스가 먼저 떠오르지만, 현대 골프가 얼마나 다양하게 확장될 수 있는지를 보여주는 무대는 바로 유카탄 반도라 생각했다. 정글과 맹그로브, 그 아래 고요히 잠들어 있던 마야 문명 위에 세계 최고의 설계자들이 만든 코스들. 그 조합이 만들어낼 풍경과 감각이 늘 궁금했다. 결국 그 궁금증 안고 먼길 떠나는 비행기에 올랐다.
인천을 떠나 멕시코시티를 거쳐 칸쿤에 도착하기까지 꼬박 20시간이 걸렸다. 창밖이 어두워지고 외부 세계와 단절되자, 일상에서 미처 정리하지 못했던 생각 속으로 빠져들었다. 비행기란 단순히 공간만 이동시키는 것이 아니라, 마음의 속도도 자연스레 늦춰준다.
멕시코시티를 지나 유카탄으로 향하는 비행 동안은 창밖에 펼쳐진 평평한 대지를 바라보며 이미 다른 시간대로 들어선 듯한 기분이 들었다. 칸쿤 공항에 내리니 공기가 확 달랐다. 습한 열기와 바닷바람에 실린 짠내가 온몸을 감쌌다. 회색 도시의 그림자는 어디론가 사라지고, 눈앞에는 오직 초록과 파랑만이 남았다. 이곳은 분명 익숙한 일상의 연장이 아니라, 완전히 새로운 규칙이 통하는 세상이었다.
문 팰리스 골프 클럽은 잭 니클라우스가 디자인한 총 27홀 규모로, 정글 코스에서 강한 인상을 받았다. 문 팰리스 리조트내에 있는 골프장으로 셔틀차량으로 5분이면 닿을 수 있다 .
페어웨이가 비교적 좁아서 한 번만 벗어나도 공이 순식간에 맹그로브 숲으로 사라지기 일쑤다. 이곳에서는 공을 잃는 일이 자주 있었는데, 몇 홀이 지나면서부터는 그 아쉬움조차 자연스럽게 받아들이게 됐다. 마치 코스의 일부가 된 듯했다.
이곳은 멕시코의 국민적인 영웅이자 여자 프로골프계의 전설인 오초아와도 인연이 깊다 . 매년 LPGA 로레나 오초아 인터내셔널 대회가 이곳에서 개최되는 곳이기 때문이다.
그녀의 아버지가 우리 일행이 타고 갔던 아에로멕시코(멕시코항공) 회장이란 점도 작용했겠지만 오초아에 대한 멕시코인들의 사랑이 지금도 변함이 없다는걸 증명하는 듯 하다. 우리나라 박인비 선수도 이 대회에서 우승을 했고, 지난해(2016년) 에는 김세영 선수가 우승해 더 뜻깊고 정겹게 느껴지는 곳이기도 하다 .
문 팰리스에서 진짜 매력은 긴장과 이완이 교차하는 리듬에 있다. 코스에서는 계속해서 집중해야 하지만, 홀 사이 그늘집에 들어서면 전혀 다른 시간이 흐른다. 차가운 데킬라 한 잔과 타코는 굳은 몸과 마음을 한 번에 풀어준다. 이곳에서 골프가 꼭 금욕적인 스포츠일 필요는 없다는 걸 새삼 느꼈다. 이런 식으로 여유롭고 관능적인 골프도 충분히 재미있고 의미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정말 악어가 출몰하는지는 모르겠지만.... 독특한 경고판을 보면서 남미에서 라운딩중이란 사실을 환기한다.
맹그로브 숲이 품은 카리브해의 진주, 리비에라 칸쿤
칸쿤의 관문에서 만나는 잭 니클라우스의 또 하나의 걸작, 맹그로브 습지와 비취색 바다가 교차하는 자연의 미로를 걷다.
제원: 18홀 / 파 72 / 7,065야드
리비에라 칸쿤(Riviera Cancun)은 칸쿤 호텔 존의 끝자락, 공항과 맞닿은 곳에 위치해 여행의 시작이나 마지막을 장식하기에 좋다. 클럽하우스에 들어서면, 눈앞에 펼쳐지는 것은 인공적인 조경이 아닌 억척스러운 생명력을 품은 맹그로브 습지의 장관이다.
이곳은 잭 니클라우스가 "자연을 훼손하지 않고 그 안에 길을 내겠다"는 철학으로 빚어낸 코스다. 페어웨이는 맹그로브 숲 사이로 아슬아슬하게 뻗어 있고, 한 번이라도 경로를 이탈하면 공은 영영 숲의 주인이 된다. 캐디 없이 직접 카트를 몰며 마주하는 풍경은 골퍼로 하여금 오롯이 대지와 대화하게 만든다.
해변에 면해 있는 15번 그린 - 카리브해의 아름다움에 취해 제대로 퍼팅하기가 힘들다 . 그린과 모래사구 너머로 보이는 카리브해의 모습이 가히 절경이다 . 링크스코스 답게 곳곳에 사구와 거친 러프가 골퍼들을 압도한다 .
코스 곳곳에서 일광욕을 즐기는 이구아나와 이름 모를 새들의 지저귐은 이곳이 단순한 경기장이 아닌 거대한 생태계임을 상기시킨다. 좁은 페어웨이를 지켜내야 한다는 압박감은 18번 홀 그린 위에 섰을 때 비로소 해방감으로 변한다. 강렬한 태양 아래 보낸 이 시간은 자신을 들여다보는 가장 투명한 거울이었다.
유카탄반도의 골프장을 이해하려면 먼저 이 땅이 어떤 곳인지부터 알아야 한다. 여기는 흙 위가 아닌, 수백만 년 바다 속에서 쌓인 산호가 굳어져 형성된 석회암 대지 위에 코스가 놓인 곳이다. 그래서 페어웨이 아래엔 언제나 빈 공간이 숨어 있고, 그 덕분에 세노테라는 신비한 지형이 탄생했다. 빗물이 석회암을 깎고 또 깎아 만든 거대한 싱크홀, 이곳은 마야인들이 지하 세계인 시발바로 들어가는 문이라 믿었던 곳이기도 하다.
그렉 노먼이 설계한 마야코바 코스는 이름 그대로 변화무쌍했다. 티잉 그라운드에 서면 열대 정글이 시야를 가득 채우다가, 얼마 지나지 않아 맹그로브 숲이 모습을 드러낸다. 그리고 어느 순간 카리브해의 눈부신 백사장이 시야를 탁 트이게 한다.
한 코스에서 완전히 다른 세계를 세 번이나 건너는 셈이다. 코스의 길이는 짧은 편이지만, 난이도의 관건은 바람이다. 특히 바다와 맞닿은 홀에서는 무역풍이 갑자기 방향과 세기를 바꿔버린다. 이전까지 계산했던 거리와 클럽 선택이 무의미해지는 순간이 이어진다.
7번 홀 페어웨이 한가운데에는 ‘악마의 입’이라 불리는 거대한 세노테가 버티고 있다. 티샷을 앞두고 나는 잠시 클럽을 내려놓은 채, 그 끝없는 어둠을 바라보았다. 깊이를 도무지 알 수 없는 검은 공간, 단순한 해저드 그 이상이었다.
칸쿤에서 라운드를 하다 보면 자연스레 자신과 대화 하게 된다. 골프장이 조용해질수록 오히려 생각은 또렷해진다. 공을 세노테 너머로 보내는 순간은 기술적 샷이 아니라, 내 안의 심리적 경계를 넘어서는 경험처럼 느껴진다 . 공이 무사히 페어웨이에 안착했을 때의 안도감은, 그동안 다른 코스에서 느꼈던 평범한 감정과는 분명히 달랐다.스코어와는 상관없이, 스스로에게 느끼는 작은 성취감이었다.
첫 숙소는 문팰리스 리조트였다. 호텔 존의 번잡함을 피해 맹그로브 보호구역 뒤편에 자리한 이 리조트는 골프 여행에 딱 맞는 리듬을 만들어준다 . 올인클루시브 시스템 덕분에 계산 걱정은 덜고, 시간과 감각에 더욱 집중할 수 있었다.
4,500여개의 객실과 20여개의 수영장, 30여개의 레스토랑, 27홀 골프코스까지 갖춘 매머드급 리조트로 워낙 넓어 이동은 전동카터를 이용한다.
라운드 후 맛본 스테이크는 원초적인 만족을 줬다. 불 위에서 익어가는 고기와 데킬라 한 잔은 더 설명이 필요 없는 완벽한 조합이었다. 몰레는 또 하나의 기억으로 남았다. 초콜릿과 고추, 커피가 겹겹이 쌓인 그 소스에는 멕시코만의 시간이 녹아 있었다.
골프가 스코틀랜드의 유산이라면, 몰레는 분명 멕시코의 영혼이 아닐까 싶었다. 칸쿤에서의 골프는 기술적으로도 특별한 점이 많다. 대부분의 코스가 파스팔럼 잔디를 써서 풀샷은 안정적인데, 그린 근처에서는 정확한 컨택이 꼭 필요하다. 결이 강한 그린에서는 퍼팅 거리 감각도 색다르게 느껴진다. 그리고 적도에 가까운 강렬한 햇살은 생각보다 훨씬 세다. 선크림과 팔토시는 선택이 아니라 필수에 가까웠다.
칸쿤의 강렬한 태양 아래서 페어웨이를 걷는 시간은 느리게 흘렀고, 그 빛 속에서 오롯이 자신과 마주할 수 있었다. 내가 왜 이렇게 먼 곳까지 와서 골프를 치고 있을까? 20시간 넘게 비행하고, 정글의 습기와 바다의 바람을 이겨내며, 마야의 신들이 지켜보는 세노테를 넘겨 그린에 공을 올리는 그 희열. 그것은 스코어의 기록이 아니라, 내 삶의 한 페이지를 '성취'로 채우는 과정이었다. .
칸쿤에서의 라운드는 끝났지만, 비취빛 바다와 어둑한 세노테, 그리고 진한 몰레의 여운은 아직도 생생하다. 태양의 돌 위에서 보낸 그 며칠간의 기록은, 내 인생이라는 긴 라운드에서 가장 빛나는 버디로 기억될 것이다.
칸쿤 골프를 계획하는 이들에게 꼭 전하고 싶은 조언이 있다. 바로 '파스팔럼(Paspalum)' 잔디에 대한 이해다. 이곳의 잔디는 잎이 억세고 꼿꼿해서 공이 티 위에 올라와 있는 듯한 느낌을 준다. 우드나 아이언 샷을 하기엔 좋지만, 그린 주변 어프로치에서는 채가 잔디에 감기기 쉽다. 정확한 컨택이 없으면 이른바 '철퍼덕'하는 샷이 나오기 십상이다. 또한 그린 결(Grain)이 매우 강해 역결에서는 생각보다 훨씬 강하게 퍼팅해야 한다.
날씨 또한 중요한 변수다. 적도의 태양은 상상 이상으로 강렬하다. SPF 50 이상의 선크림과 팔토시는 멋이 아니라 생존을 위한 필수품이다. 맹그로브 숲 근처의 모기들 또한 강력하니 기피제를 반드시 챙겨야 한다. 장거리 여행인 만큼 본인의 클럽을 가져간다면 패딩이 두꺼운 항공 커버를 추천한다. 아에로멕시코의 수하물 규정을 미리 체크하는 꼼꼼함도 필요하다.
관광 정보: 하루 정도는 시간을 내어 세계 7대 불가사의인 '치첸이트사(Chichén Itzá)'를 방문하자. 골프장에서 보았던 마야의 신화가 실체로 다가오는 놀라운 경험을 할 수 있다.
고대 마야를 만나다.
마야문명의 상징인 치첸이사 피라미드- 칸쿤에서 약 두시간 정도 거리에 위치한 곳으로 멜 깁슨이 제작한 영화 "아포칼립소"의 배경지이도 한 곳이다 .왕의 무덤인 이집트 피라미드와는 달리 이곳의 피라미드는 신에게 제사를 드리는 제단으로 건설되었고, 이곳에서 인신공양이라는 끔직한 일도 이뤄졌다고 한다.
노테라 불리는 천연 다이빙 & 수영장 - 석회암지대의 침하로 만들어진 자연 싱크홀이 천연 수영장과 멋진 다이빙장이 되어 관광객들을 불러 모으고 있다 .이 동굴 수영장은 수직으로 지하 50여미터 아래에 있어 물이 얼음장 처럼 차갑다. 적도의 뜨거운 햇살 아래 지친 관광객들에게 그야말로 천혜의 휴식처다 .
� 에머랄드 빛 카리브해
" 지상낙원"
아름다운 여행지를 흔히 이렇게 표현한다. 카리브의 아름다운 바다와 멕시코 특유의 문화와 역사가 공존하며, 현대와 고대 문명이 함께 하는 곳, 게다가 훌륭한 PGA 골프코스까지.... 이만하면 이곳이 골퍼들에겐 지상 최고의 파라다이스가 아닐까 싶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