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베리아의 바람과 지중해의 태양을 품다 – 스페인 골프

by 여행하는 골퍼

이베리아의 바람과 지중해의 태양을 품다 – 스페인 골프 여행기



언제 부터인가 골프 여행을 ‘다녀온다’기보다 ‘건너간다’고 느끼기 시작했다. 골프를 시작한 후 수많은 티박스에 섰고, 그만큼 많은 선택의 순간을 지나왔다. 국내에도 훌륭한 코스는 충분하다. 접근성도 좋고, 익숙하다. 그럼에도 나는 종종 열 시간이 넘는 비행에 몸을 싵는다.


인천에서 바르셀로나까지 또 여기에서 말라가까지 이어지는 7박 9일, 수천 km의 이동은 결코 느긋하지 않았다. 하지만 그 강행군의 여정 속에서 나는 골프 인생에서 쉽게 지워지지 않을 장면들을 여럿 마주했다.


여정을 완성한 사람들 – 현지 파트너

이번 여행을 안정적으로 이끌어준 것은 스페인의 현지 파트너였다. 그들은 단순히 일정을 관리하는 역할에 머물지 않았다. 스페인이 가진 본래의 얼굴을 보여주겠다는 분명한 태도를 지닌 사람들이었다.


특히 일정 내내 함께했던 현지 담당자는 과거 포병 장교 출신이라는 이력답게, 질서와 책임감이 몸에 배어 있었다. 귀국 당일, 공항에서 우리 일행의 수하물을 직접 박스에 담아 포장하며 묵묵히 땀을 흘리던 그의 뒷모습은 오래 기억에 남는다. 그 장면을 보며 나는 좋은 골프 여행이란 결국 좋은 코스와 좋은 사람이 만나 완성된다는 사실을 다시금 실감했다.








숲의 침묵과 마주하다 – 리얼 클럽 드 골프 엘 프랏


바르셀로나에 도착해 가장 먼저 찾은 곳은 리얼 클럽 드 골프 엘 프랏이었다. 1912년에 설립된 이 클럽은 이름 그대로 왕실의 인가를 받은 ‘리얼’ 클럽이다. 현재의 코스는 그렉 노먼의 손을 거쳐 완성되었고, 수천 그루의 소나무와 참나무 숲 사이에 조심스럽게 자리 잡고 있다.


첫 홀 티박스에 섰을 때 나를 맞이한 것은 소음이 제거된 완전한 정적이었다. 도시의 기척은 사라지고, 숲이 만들어내는 침묵만이 공간을 채우고 있었다. 곧게 뻗은 소나무들은 성당의 기둥처럼 서 있었고, 오전의 햇살은 잔디 위에 길게 그림자를 드리웠다.


라운드를 이어가며 나는 자연 앞에서 인간이 취해야 할 태도에 대해 생각했다. 엘 프랏의 코스는 자연을 정복하려 들지 않는다. 지형의 흐름을 존중하면서도 골퍼에게 끊임없이 선택을 요구한다. 숲 속에서 들리는 것은 발자국 소리와 새소리, 그리고 임팩트 순간의 타구음뿐이었다. 이곳에서의 골프는 경기라기보다 숲과 나누는 조용한 대화에 가까웠다.

resize?v=w1920




카탈루냐의 자부심 – 카미랄 골프 & 웰니스


지로나에 위치한 카미랄 골프 & 웰니스는 스페인 골프의 현재를 상징하는 공간이다. 스페인 랭킹 1위로 꼽히는 스타디움 코스는 이름처럼 단정하고 긴장감 있는 구조를 지니고 있었다.


이날은 가랑비가 흩뿌리는 날씨였지만, 코스의 밀도는 흐트러지지 않았다. 그린 스피드는 11피트에 달했고, 퍼터를 떠난 공은 계산된 궤적으로 잔디 위를 흘러갔다. 비에 젖은 숲의 향기를 맡으며 홀을 걸어가다 보니, 자연스럽게 사그라다 파밀리아 성당이 떠올랐다.


img.jpg?credential=yqXZFxpELC7KVnFOS48ylbz2pIh7yKj8&expires=1769871599&allow_ip=&allow_referer=&signature=jz6RMkZ608goBYvDskPxxqnBJTY%3D
img.jpg?credential=yqXZFxpELC7KVnFOS48ylbz2pIh7yKj8&expires=1769871599&allow_ip=&allow_referer=&signature=dE98awqFmwIn%2FDpZctRn5Lq3Vd4%3D


오랜 시간에 걸쳐 다듬어지는 그 성당처럼, 이 코스 역시 인간의 의지와 자연의 시간이 겹쳐 만들어낸 결과물처럼 느껴졌다.카미랄에서의 라운드는 골프가 단순한 경기 이상의 행위임을 다시 한 번 확인시켜 주었다. 그것은 대지와 호흡하는 느린 대화였다.




안달루시아의 하얀 보석 – 라 레제르바 클럽


남부 스페인 안달루시아로 이동해 만난 라 레제르바 클럽은 분위기부터 달랐다. 소토그란데 지역에서도 가장 현대적이고 세련된 감각을 지닌 코스였다.


라운드 내내 시야에 들어오는 것은 산 중턱에 옹기종기 모여 있는 하얀 마을들, 푸에블로 블랑코였다. 하얀 집들과 지중해의 푸른 하늘이 만들어내는 대비는 한 폭의 회화처럼 느껴졌다. 페어웨이는 넓고 시원하게 열려 있었지만, 곳곳에 배치된 벙커와 워터 해저드는 긴장을 늦추지 못하게 했다.


이곳에서 나는 골프가 허락하는 가장 우아한 사치를 경험했다. 거친 자연을 인간의 미감으로 정제해낸 결과가 얼마나 깊은 만족을 주는지 몸으로 느끼는 시간이었다.

resize?v=w1920





세 대륙이 만나는 자리 – 라 아시엔다 링크스


이번 여정의 정점은 라 아시엔다 링크스였다. 스페인에서는 드물게 만나는 정통 링크스 스타일 코스로, 바다와 맞닿아 있다. 5번 홀 티박스에 섰을 때의 풍경은 쉽게 언어로 표현하기 어렵다.


발아래로는 지중해가 반짝이고, 정면에는 영국령 지브롤터의 바위산이 서 있다. 날이 맑은 날에는 그 너머로 아프리카 모로코의 해안선이 희미하게 모습을 드러낸다. 한 시선 안에 두 대륙과 여러 문명이 겹쳐지는 순간이었다.

img.jpg?credential=yqXZFxpELC7KVnFOS48ylbz2pIh7yKj8&expires=1769871599&allow_ip=&allow_referer=&signature=Rvoa8xVV%2BUUP%2BZ%2Bpu6HkTpkXcyE%3D


800년 전, 이 바다를 건너 이슬람 군대가 이베리아반도로 들어왔고, 그 흔적은 지금도 스페인의 풍경 속에 남아 있다. 라운드 도중 만난 올리브 나무 한 그루 앞에서도 나는 그 시간의 층위를 떠올렸다. 이곳에서의 티샷은 페어웨이를 향한 움직임이 아니라, 역사의 흐름 위로 공을 띄우는 행위처럼 느껴졌다.

img.jpg?credential=yqXZFxpELC7KVnFOS48ylbz2pIh7yKj8&expires=1769871599&allow_ip=&allow_referer=&signature=Z5AZMyuu2EjCA0TbXhVVJYPGnr4%3D



여행의 여백과 골프장 밖에서 만난 스페인


여행에는 언제나 계획되지 않은 장면들이 스며든다. 동반자의 휴대폰 분실과 수하물 소동 속에서 현지 파트너가 외쳤던 “We got it!”이라는 말은 어느새 우리 모두의 구호가 되었다. 그것은 문제 해결의 선언이자, 이 여행 전체를 관통하는 태도처럼 들렸다.


화려한 리조트의 식사 속에서도 문득 그리워지는 것은 익숙한 맛이었다. 밤늦게 컵라면에 뜨거운 물을 부어 먹던 순간의 안도감은 의외로 깊었다. 귀국길에 우연히 만난 손미나 아나운서와의 식사 역시 오래 남는 장면이다. “스페인, 너는 자유다”라고 말하던 그녀의 이야기는 이번 여행의 정서를 조용히 정리해 주었다.


라운드 사이에 마주한 바르셀로나의 가우디 건축, 몬세라트 수도원의 고요, 지브롤터에서 바라본 아프리카의 윤곽, 그리고 현지 식당에서 맛본 소박한 타파스까지. 골프장 밖의 시간들은 이 여행을 한층 더 입체적으로 만들었다.

img.jpg?credential=yqXZFxpELC7KVnFOS48ylbz2pIh7yKj8&expires=1769871599&allow_ip=&allow_referer=&signature=%2F43qWiqYxGELOQW6V34bfHSNIcc%3D





에필로그 – 기록하지 않으면 사라지는 것들


보통 라운드가 끝나면 스코어카드를 먼저 들여다보고, 샷 하나하나를 복기하는 데서 안도감을 느낀다. 하지만 해외 코스에서는 이상하게 그 집착이 옅어진다. 공이 어디로 갔는지 보다, 내가 지금 어떤 풍경 안에 서 있는지가 더 중요해지는 순간들이 찾아온다. 그 변화가 나를 다시 비행기에 오르게 만든다.


내게 해외 골프 여행은 스코어를 남기기 위한 일정이 아니다. 페어웨이를 걷는 동안 그 땅이 지나온 역사와, 그 안에서 살아온 사람들의 흔적을 함께 생각한다. 그래서 이 여정은 언제나 골프이면서 동시에 인문학적인 탐사다.


이제는 좋은 샷 보다, 오래 기억에 남을 장면 하나를 더 소중하게 여긴다. 사진으로 남기지 않아도, 기록하지 않아도 마음속에 또렷이 남는 장면들. 골프를 핑계로 떠나는 여행이지만 그 시간을 통해 삶의 속도를 잠시 늦추고 싶었던 건지도 모른다.

스페인 여행 안내서.png


이번 스페인 여행은 그런 마음이 가장 분명하게 드러난 여정이었다. 출발 전, 일부러 스페인의 역사와 문화에 관한 책들을 찾아 읽었다. 열흘 출장을 위해 한달 이상을 공부했다. 2천쪽의 책을 읽고, 숱한 영상을 훓었다. 800년 가까이 이어진 이슬람 지배의 시간, 그 위에 다시 세워진 기독교 문명의 층위들. 이 복잡한 시간의 결을 알고 싶었다. 그래야 이베리아의 땅을 조금 더 예의 있게 걸을 수 있을 것 같았기 때문이다.


이 여정을 기록으로 남기는 이유는 단순하다. 시간이 지나면 감동은 흐려지기 마련이기 때문이다. 골프라는 매개를 통해 만난 스페인의 역사와 풍경, 그리고 사람들의 태도는 나의 시야를 조금 넓혀주었다.


이베리아의 바람을 가르며 날린 수많은 샷처럼, 언젠가 또 다른 세계를 향해 클럽을 들게 될 것이다. 이 기록이 누군가에게는 새로운 여행을 시작할 작은 계기가 되기를 바라며, 스페인에서의 골프 순례를 조용히 마무리한다.


img.jpg?credential=yqXZFxpELC7KVnFOS48ylbz2pIh7yKj8&expires=1769871599&allow_ip=&allow_referer=&signature=Eekkk8rQrx4LoOJWGLH5Hn6%2FObw%3D

[사진설명] 스페인 도착후 팸투어 호스트가 전체 일정을 설명하고 있다. 7박8일, 호텔 4곳 투숙, 4번의 항공이동, 4곳의 골프장에서 라운드, 버스로 70Km 이동. 13곳의 식당이용.....총 예산은 5만 유로 ( 참가자가 8명이었으니 1인당 소요예산은 약 1천만원 수준. 적지 않은 금액이지만 엄살만은 아닌 듯 하다.)





keyword
매거진의 이전글열사의 땅에 피어난 오아시스의 꽃, 아랍에미레이트 골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