열사의 땅에 피어난 오아시스의 꽃, 아랍에미레이트 골프

by 여행하는 골퍼

열사의 땅에 피어난 오아시스의 꽃, 아라비안나이트.

아랍에미레이트 골프 - 사막 위에 펼쳐진 골프와 관용의 기록



프롤로그 ― 왜 나는 사막으로 향했을까?


해외 골프 투어를 기획하고 직접 현장을 발로 뛰며 코스를 답사한지 15년이 넘었다. 아시아부터 유럽, 미주까지 수많은 골프장을 누비며 다양한 풍경과 문화를 경험했다. 그런데 아랍에미리트(UAE)는 언제나 마음 한구석에 남아 있는 미지의 땅이었다.


사막, 석유, 초고층 빌딩. 흔히 떠올리는 이미지들은 분명했지만, 골프는 선뜻 상상하지 못랬다. “왜 사막까지 가서 골프를 치느냐”고 물으면 아무것도 없는 곳에서 무언가를 만드는 인간의 의지, 어쩌면 그 극단적인 결실이 바로 UAE가 아닐까 싶었다. 모래와 바람뿐이던 땅 위에 세계 최고 수준의 골프 코스를 만든다는 것은, 단순히 자본만으로는 설명할 수 없는 특별한 철학이 녹아 있는 일일 것이란 생각을 했다.



비행기에서 9시간 반, 아부다비 공항에 도착한 시간은 이른 새벽이었다. 공항 밖으로 나서는 순간, 후끈하게 달라붙는 생소한 열기가 피부를 감쌌다. 이 뜨거움 속에서 과연 푸른 페어웨이가 가능할까. 그 궁금증 하나만으로도 이번 여행을 떠날 충분한 이유가 되었다.


이번 여정은 결핍을 풍요로 바꾼 사람들의 이야기, 또 서로 다른 종교와 문화가 어우러져 살아가는 ‘관용’의 정신을 직접 보고 느끼고 싶은 인문학적 탐사에 가까웠다. 그리고 이 모든 이야기를 가장 생생히 만날 수 있는 무대가 다름 아닌 골프장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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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art 1. 아부다비 ― 매의 기상, 그리고 관용의 도시


아부다비에 도착해 마주한 첫인상은 그야말로 ‘건설 중인 미래’였다. 도심 곳곳에 세워진 타워크레인과 거대한 건축물들은 이 도시가 현재에 머무르지 않고 계속해서 앞을 향해 나아가고 있음을 말해주었다. 석유로 얻은 부를 어떻게 활용해야 하는지, 길을 잘 아는 도시처럼 느껴졌다.



사디야트 비치 골프 클럽: 사막과 바다가 공존하는 링크스

설계자: 게리 플레이어

홀: 18홀 / UAE 정상급 링크스 코스

아부다비에 도착한 당일, 새벽 5시 반에 공항에 내린 뒤 호텔에서 잠깐 짐만 풀고 곧장 첫 라운드를 시작했다. 오전 10시 30분 티오프. 시차와 수면 부족으로 몸이 무거웠지만, 사디야트 비치 골프 클럽에 들어선 순간 그런 피로가 싹 가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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게리 플레이어가 설계한 이 코스는 흔히 생각하는 사막 골프장과는 달랐다. 한쪽엔 에메랄드빛 바다가 펼쳐지고, 반대편에는 아부다비의 현대적 스카이라인이 시야에 들어왔다. 어떤 홀은 잔디보다 모래가 더 넓게 보여 거칠게만 느껴질 법도 한데, 오히려 인위적이지 않은 자연스러움이 묻어났다.


사막의 본래 모습을 그대로 드러낸 링크스 스타일. 그 위에서 바닷바람을 맞으며 날린 첫 티샷은 30시간 가까이 이어진 여정의 피로를 단숨에 날려주었다. 이곳에서의 골프는 편안함보단 긴장감을, 안정감보다는 집중력을 요구했다. 사막 위에서 치는 골프가 어떤지 몸으로 실감할 수 있었다.




아부다비 골프 클럽: 매가 내려앉은 클럽하우스

홀: 18홀 챔피언십 코스

다음 날 찾은 아부다비 골프 클럽은 입구에 들어선 순간부터 압도적인 느낌이었다. 이 나라의 국조인 ‘매’가 날개를 펼치고 내려앉은 모습의 클럽하우스는, 스포츠 시설이 아니라 이 도시에 대한 자부심과 상징성이 오롯이 담겨 있었다. 이날은 미국인 총지배인과 함께 라운드를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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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의 드라이버 샷이 300야드를 훌쩍 넘길 때마다, 나도 모르게 어깨에 힘이 들어가던 기억이 생생하다. 하지만 더 크게 기억에 남았던 건 비거리보다는 골프에 대한 철저한 태도였다.


화려한 시설 이면에 숨겨진 세심한 코스 관리, 그리고 손님 한 명 한 명을 정중하게 대하는 모습에서 왜 이 나라가 단기간에 골프 강국으로 자리 잡았는지 알 수 있었다. 오일 머니만으로는 결코 설명할 수 없는, 그 속에 담긴 노력과 집념이 분명하게 느껴졌다.




골프장 밖에서 만난 아부다비의 얼굴


아부다비의 감동은 골프장 안에만 머무르지 않았다.

셰이크 자이드 그랜드 모스크에 들어섰을 때, 눈이 따가울 만큼 새하얀 대리석과 금빛 장식이 곳곳을 채우고 있었다. ‘세계 5대 규모’라는 설명이 굳이 필요 없는 곳이었다. 그 넓은 공간 자체가, 인간이 신에게 바칠 수 있는 최대의 경의를 말없이 드러내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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루브르 아부다비도 강렬한 인상을 남겼다.

전시장에 걸린 예술 작품들보다도, 거대한 돔 모양의 건축물이 주는 울림이 더 깊게 다가왔다. 햇살이 거미줄처럼 퍼지던 그 구조물 아래에서, 문명과 예술의 본질에 대해 저절로 생각하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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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장 기억에 남은 곳은 아브라함 패밀리 하우스였다. 이슬람, 기독교, 유대교의 성전이 한 공간에 나란히 서 있는데, 건물의 크기보다 그곳이 품은 메시지가 더 인상적이었다. 세 종교 모두 아브라함의 후손이라는 공통점으로, 건물의 규모와 재료까지 똑같이 맞췄다는 점이 특별하게 느껴졌다. 그곳에서이 도시가 말하는 ‘관용’이 단순한 구호가 아니라는 것을 진심으로 느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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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art 2. 두바이 ― 상상을 현실로 바꾸는 곳


아부다비에서 이틀을 보내고, 두바이로 향하니 전혀 다른 세계가 펼쳐졌다. 아부다비가 ‘품격 있는 미래’였다면, 두바이는 ‘빠르게 움직이는 현재’에 가깝다는 느낌이 들었다. 모든 것이 크고, 빠르고, 화려하게 다가왔다.


트럼프 인터내셔널 골프 클럽 두바이

홀: 18홀 / 파 71 / 7,300야드

이곳은 이름에서 기대했던 모습 그대로였다. 클럽하우스부터 코스 관리까지 어딜 봐도 흠잡기 어려운 완성도를 자랑했다. 골프장 주변의 고급 빌라 단지는 약간 이질적으로 느껴졌지만, 코스 자체는 전략적이고 정교하게 설계돼 인상 깊었다. 연습 시설도 특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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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GA 전문가와 첨단 장비가 갖춰진 드라이빙 레인지 덕분에, 단순한 리조트 골프장이 아니라 ‘실전 훈련’이 강조되는 곳임을 알 수 있었다. 덥고 건조한 사막 한복판임에도, 야간 골프까지 가능하다는 점은 이 지역만의 매력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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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바이 크릭 골프 & 요트 리조트: 바다 위에서 날리는 한 샷

홀: 18홀 / 파 72 / 6,967야드

풍경만 놓고 본다면 이번 여행의 하이라이트는 두바이 크릭이었다. 6번 홀의 티 박스는 바다 위에 떠 있는 구조여서, 마치 항공모함에 올라 샷을 하는 기분이 들었다. 기온이 40도에 가까웠지만, 바다와 도심의 풍경이 어우러져서인지 피로감이 덜했다. 클럽하우스에서는 세계 각국에서 온 골퍼들을 만날 수 있었고, 이곳이 진정한 글로벌 골프의 중심지라는 생각이 저절로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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골프 너머의 두바이


두바이는 인간의 상상력이 어디까지 실현될 수 있는지를 보여주는 도시이다. 900미터가 넘는 버즈 칼리파, 바다를 메워 만든 인공섬, 그리고 모든 것을 아우르는 두바이 몰까지. 매일 밤 열리는 분수 쇼는 단순한 볼거리가 아니라 하나의 ‘공연’처럼 느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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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래 박물관에서는 ‘50년 뒤의 세상’을 주제로 전시가 이어지고 있다. 입구에 새겨진 한 문구, “어떤 일이 일어나길 기다리지 말고, 그 일이 직접 일어나도록 만들어라.” 이 문장이 이 여행 내내 필자의 마음에 계속 남아 있었다.


두바이 프레임에선 과거, 현재, 미래의 두바이가 한눈에 내려다보였고, 바스타키야에선 화려한 도시로 성장하기 전, 이곳의 소박한 시작을 느낄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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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필로그 ― 사막에서 배운 골프, 그리고 인생


사막 한가운데 세계 최고 수준의 골프장을 만들고, 척박한 땅을 기회로 바꾼 두바이와 아부다비. 이 도시들은 결핍을 탓하지 않고, 오히려 그 결핍을 어떻게 활용할지 고민해왔다고 생각한다. 골프도 다르지 않다. 벙커와 워터 해저드는 피할 수 없어도, 결국 그린에 도달하는 길은 스스로 선택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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타는 듯한 태양 아래 라운드를 마친 후 깨달은 것은, 스코어보다 더 중요한 것은 환경을 대하는 마음이라는 사실이었다. 사막 위에 피어난 오아시스 같은 골프 코스들. 그곳에서 다시 한번 깨달았다. 불가능해 보이던 곳에서도 결국 길은 만들어진다는 것, 그리고 서로 다른 존재가 함께할 때 비로소 진짜 풍요가 완성된다는 것을. 이 여행은 골프 여행이었지만, 내 삶의 소중한 기록으로 남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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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행일시 : 2025년 05월 26일~ 06월 02일 6박 8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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