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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고롱 Mar 30. 2021

'엄카 찬스' 가 대체 뭐죠?

격하게 알고 싶습니다.




나는 애매한 인간이었다.

어머님, 고롱이는 그림을 잘 그려요. 글을 참 잘 써요. 어머님, 고롱이는 체육을 참 열심히 합니다. 노래도 잘하고, 만들기에도 재주가 있는 것 같아요.


지금 생각해 보면, 잘한다의 기준이 모호한 과목들이었는데, 어린 나는 마치 내가 예체능의 신이라도 되는 것처럼 엄마에게 쪼르르 달려가 학원을 보내달라고 졸라댔었다. 미술학원! 체육학원! 음악학원! 그것도 안 되면 논술학원! 그리고 죄다 무시당했지.


애매한 나보다 더 애매한 것이 우리 집안 주머니 사정이라 엄마는 내내 고개만 휘저었다. 나중에 가선 안된다는 말조차도 하지 않았다. 당장 먹을 쌀이 없어 동사무소에서 타오는 주제에 무슨 학원이냐는 눈빛만 보내올 뿐이었다.




고로 애매했던 인간이 한 가지 확실하게 배운 것이 있었는데, 그건 바로 포기였다.


고롱씨, 고롱씨가 잘하는 건 뭐예요?

누군가 지금의 나에게 묻는다면, 나는 어... 저요. 저는 세상에서 포기하는 것을 제일 잘합니다. 놀랍지 않나요? 포기하기 대회가 있다면 우승은 따놓은 당상이죠! 하하. 웃어버릴지도 모른다.



세상에서 포기를 가장 잘하는 인간.

나는 수많은 선택지를 헤치고 헤쳐, 그런 인간이 되어 있었다.






요즘은 꽃이 예쁘면 꽃도 돈 주고 산다. 예전엔 꿈도 못 꿨을 텐데. 그냥 예뻐서 샀다. 





누군가 가난하면 가난한 취향을 갖게 된다고 했다. 


그 말을 어디에서 절실하게 깨달았냐면, 성인이 된 이후 만난 친구들과 쇼핑을 하러 갔을 때였다. 당연히 지하상가쯤 가겠거니, 생각했던 나와는 다르게 친구들은 백화점을 향해 걷고 있었다.


나는 성인이 되기 전까지 백화점에서 옷을 사본 기억이 없다. 백화점은 그냥, 친구들과 영화를 보러 간다거나 가끔 책을 구경하러 서점을 갈 때만 이용하는 곳이었다. 그런 데서 그냥 평범하게 쇼핑을 한다고? 놀라기도 전에 친구들은 별 다른 고민도 없이 이거 예쁘다! 살까? 를 외치며 알록달록한 옷을 끌어모으고 있었다. 




"... 근데 너 이거 다 사게?"

"응. 엄마가 옷 좀 새로 사래. 낡은 거 다 버린다고."

"이거 어머님이 사주시는 거야?"

"당근이지! 엄카 찬스 모르냐, 엄카 찬스?"




응, 그런 거 모르는데...

차마 답은 하지 못하고 그냥 웃어버렸다. 이 옷 저 옷 자신의 몸에 대보던 친구들은 두어 개의 옷을 들고 계산대로 향했다. 나는 그때까지 입구에 서서 옷가지들을 뒤적이고 있었는데, 그게 그렇게도 처량해 보였다. 쇼윈도에 비친 내 모습이 화려한 백화점과는 맞지 않아 더 그랬다. 너는 안 사냐는 친구에 말에 마음에 드는 게 없다고 말하던 것도 너무 초라했다. 마음에 드는 게 없기는. 옷 볼 줄도 몰랐으면서. 그 세련된 옷을 걸치면 머리부터 발 끝까지 촌티만 풀풀 날릴 게 분명했으면서. 하, 쓰다 보니 눈물이 앞을 가린다.



어린 시절의 나를 만나면, 그때 그 쇼윈도 앞에서 혼자 얼굴이 새빨개진 채 서성거리는 나를 만난다면.




"야, 이건 스스로 찬스다! 미래의 내가 번 돈이니까 네가 사고 싶은 거 다 사! 마음껏 사!"




하며 등을 떠밀고 싶다. 이런 사소한 차이에 기죽지 말라고 어깨를 두드려 주고 싶다.


애석하게도 그때의 나에겐 그런 주변인이 없었고, 그날 밤 집에 돌아와 나는 왜 이런 집에서 태어났나 원망하며 울다 홀로 잠에 들어야 했다.










서른이 된 지금도 친구들은 가끔 '엄카 찬스'를 쓴다. 태어나 나는 한 번도 써본 적 없는 찬스. 


물론 우리 엄마 아빠도 지금까지 살아남기 위해 갖은 노력을 다 하셨을 거다. 그래도. 나도 찬스 한 번쯤은 쓰게 해 주지. 




동사무소에서 쌀 타 먹는 게 쪽팔리다고 어린 나를 시켜 십 킬로의 쌀 포대를 들고 오게 했으면, 밤마다 싸워 이제 막 초등학교에 입학한 내가 다른 집으로 피신을 가게 만들었으면, 화난다고 내 물건, 내 장난감을 모두 때려 부셨으면, 죽겠다고 너는 네가 알아서 살라고 협박을 했으면, 외도는 물론이고 가정 폭력을 밥 먹듯이 저질러서 내가 당신을 혐오하게 만들었으면, 적어도 당신들은 술 먹고 지인들과 어울리며 스트레스를 풀다가도 나만은 돈 쓰지 말고 집구석에 처박혀 있으라고 했었으면.


그랬으면 나도 찬스 한 번쯤은 쓰게 해 주지. 서른이 넘은 지금까지도 감감무소식이다.




그나마 자식이라고 비싼 브랜드에서 옷도 사주고 용돈도 줘 봤지만 엄마 아빠는 늘 그 정도는 자식 된 도리로서 해야 하는 게 당연하다고 하신다. 그럼 나는 부모 된 도리를 받고 자랐나? 하, 갑자기 눈물이 차올라서 고개를 들게 되네. 흐르지 못하게 또 살짝 웃어본다.



원망하자면 끝도 없다. 찬스고 나발이고 언제쯤 이 고리를 끊어낼 수 있을 지만 고대하며 사는 요즘. 나는 내가 쓸 수 있는 찬스는 없다는 걸 받아들이려고 노력하고 있다. 


세상은 불공평하다. 위기의 순간에 도움을 받을 수 있는 자와, 그냥 죽어야 하는 자. 공평한 세상은 어디에도 없다. 이 사실을 받아들이기까지 얼마나 힘들었던가.



그렇지만 받아들이면 편하다.

누구에게나 주어지는 찬스가 없는 사람도 있다는 걸. 그게 나라는 걸. 받아들이면, 스스로 찬스를 만들어 낼 수 있는 경지에 오르기 때문이다.










또 누군가는 말했다. 가난하게 자란 사람들은, 가난을 반복하고 싶지 않아 직접 돈을 벌면 검소하게 삶을 살아간다고.




아니?

그건 아니라고 생각한다.



일시불로 긁었던 아이패드와 아이펜슬... 지금은 침대 위를 굴러다니는... 나의 비싼 사치품...




나는 요즘 고삐 풀린 망아지처럼 내가 갖고 싶은 물건을 모두 구매하며 산다. 최고급 아이패드도 사고, 컴퓨터도 사고, 고양이 물품도 사고, 비싼 간식, 음식, 어릴 적 갖고 싶던 장난감(?)까지. 시발 비용이고 나발이고 내가 번 돈 나에게 쓰며 산다의 마인드로 살고 있다. (물론 독립은 해야 하니까 아주 조금의 돈을 모으고 있긴 한데, 사실 앞이 참 막막하다. 언제 독립하지?)


아껴 써야 하는 걸 아는데, 어린 시절의 서러움을 풀어보려는 듯 갖고 싶으면 별 고민 없이 구매해 버린다. 엄카 찬스를 쓰는 친구들 옆에서 나는 나 스스로 찬스를 쓰고 있는 셈이다.


이따위로 살면 결국 또 가난이 되풀이되겠지만, 아직은 좀 더 누리고 싶다. 



처음 성인이 된 후로 친구들과 호텔에 놀러 갔던 날을 기억한다. 능숙하게 체크인을 하고 짐을 푸는 친구들 옆에서 어쩔 줄 모르던 나를. 그래서 아직은 좀 더 누리고 싶다. 여전히 가난한 취향을 가진 나를 조금이라도 바꿔보고 싶어서.





그런데 참 이상하지.

어릴 때 눈물 나게 갖고 싶던 것들은 지금 사도 그렇게 기쁘지가 않더라.


찬스를 써야 할 기회를 놓쳐서 그런 걸까? 더 이상 그것들이 필요하지 않아서 그런 걸까?


분명 멋지게 스스로 찬스를 꺼내 들었는데, 요즘은 자꾸 부질없다는 생각이 먼저 든다.




하, 안 되겠다.

봄맞이 옷이나 사며 이 기분을 달래 보련다.


스스로 힘내기 찬스! 힘내 고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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