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무튼 디지몬.. 그리고 천 개의 파랑..
한국 SF 소설계의 젊은 파란. 천선란 작가님의 북토크에 참석했다. 주제는 <아무튼 디지몬>이었지만, 그 안에는 작가님의 삶과 소설을 쓰게 된 이유, 그리고 그녀가 겪은 아픔들이 깊이 담겨 있었다. 평소 그녀의 작품을 읽은 경험은 단편 SF소설 한 편 <어떤 물질의 사랑> 뿐이었지만, 나는 그녀의 개인적인 이야기를 직접 들을 수 있어 기대감으로 가득했다.
강연은 작가님의 어린 시절로부터 시작되었다. 그녀는 어릴 적부터 “사람은 왜 사는가”라는 근본적인 질문에 사로잡혀 있었다고 한다. 학교에서 친구들과 어울리면서도 공허함과 우울감을 느꼈고, 공황장애까지 겪었다는 그녀의 고백에 마음이 아팠다. 그런 그녀에게 디지몬은 현실에서 벗어나 다른 세상으로 인도해 주는 창구였다. 디지몬의 아이들이 목적을 가지고 모험을 떠나는 모습을 보며, 그녀도 목적 있는 삶을 살고 싶다는 열망을 품게 되었다고 한다.
작가님은 만화와 애니메이션에 심취하며 화가나 영화감독을 꿈꿨지만, 현실의 벽은 높았다. 그림 실력의 한계로 화가의 꿈을 포기했고, 영화 산업의 현실적인 어려움과 당시 여성 영화감독의 부재로 인해 그 꿈도 접어야 했다. 결국 문예창작을 전공하게 되었지만, 대학에 진학한 후에도 삶의 방향을 찾지 못하고 방황했다고 한다.
그러던 중 그녀의 삶에 큰 전환점이 찾아왔다. 어머니께서 지주막하 출혈로 쓰러지신 것이다. 의사들은 생존 확률이 낮다고 했지만, 기적적으로 어머니는 살아나셨다. 하지만 치매와 같은 후유증으로 인해 어린아이와 같은 상태가 되셨고, 작가님은 간병인으로서의 삶을 시작해야 했다. 경제적인 어려움과 정신적인 고통 속에서 그녀는 하루하루를 버텨야 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글쓰기에 대한 열망은 사라지지 않았다. 교수님의 격려로 다시 펜을 잡게 되었고, 자신의 경험과 감정을 담아낸 소설을 쓰기 시작했다. 그 결과로 나온 작품이 바로 ‘천 개의 파랑’이다. 이 작품으로 그녀는 상을 받게 되었고, 작가로서의 길을 걷게 되었다.
강연을 들으며 나는 그녀의 솔직하고 진솔한 이야기들에 깊은 감동을 받았다. 그녀는 자신의 아픔을 숨기지 않고 오히려 그것을 통해 성장하고 있었다. 특히 “이제는 내가 내 삶의 주인공이 되어, 나의 이야기를 만들어가고자 한다”는 말은 내 마음에 크게 와닿았다. 어머니를 위해 살아가던 그녀가 이제는 자신을 위해, 그리고 다른 사람들에게 위로와 희망을 전하기 위해 살아가고 있다는 것이 인상적이었다.
나 역시 때때로 삶의 의미를 찾지 못해 방황할 때가 있다. 그런 나에게 오늘의 강연은 큰 위로와 용기를 주었다. 디지몬이 그녀에게 그러했듯이, 그녀의 이야기가 나에게도 작은 등불이 되어 주었다. 이야기는 이렇게 우리의 삶을 풍요롭게 하고, 서로를 이어주는 다리가 되어준다는 것을 다시 한번 깨달았다.
강연이 끝난 후, 작가님께 직접 감사의 인사를 전하고 싶었지만, 많은 사람들로 인해 그러지 못했다. 대신 그녀의 책을 다시 읽으며 오늘 들은 이야기를 마음속에 깊이 새기기로 했다. 그녀의 앞으로의 작품들이 더욱 기대되고, 그 안에 담긴 진심이 더 많은 사람들에게 전달되길 바란다.
오늘의 북토크는 단순한 작가와 독자의 만남이 아니라, 삶과 존재에 대한 깊은 성찰의 시간이 되었다. 천선란 작가님의 이야기를 통해 나 또한 내 삶의 주인공으로서의 역할을 다시 한번 생각해 보게 되었다. 그리고 나도 나의 이야기를 만들어가야겠다는 다짐을 하게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