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곰아재 Mar 28. 2023

꾸.함.그.즐 - 꾸준히 함께 그리는 즐거움

인스타그램 라이브 드로잉을 1년간 진행하고 나서 느낀 점.

  인스타그램에는 최대 4명까지 실시간으로 방송을 할 수 있는 있는 ‘라이브 룸스’(이하 ’인스타 라이브‘라고 부르겠습니다.)라는 기능이 있습니다.

  작년 1월 21일부터 올해 1월 21일까지. 1년 동안 평일 저녁 9시면 책상에 앉아 인스타 라이브로 그림을 그렸습니다. 그 전에도 가끔씩 인스타그램 라이브로 그림 친구들과 함께 그림을 그리곤 했습니다. 그저 즐거운 마음으로만 그릴 것이 아니라 시간을 정하고 규칙을 정해 무언가를 남기고 싶었습니다. 그렇게 1년 동안 평일 저녁 9시면 인스타그램으로 라이브 드로잉을 했습니다.         

 

꾸.함.그.즐

  [꾸준히 함께 그리는 즐거움] 이라는 타이틀을 만들고, 온라인 그림 친구 한 분과 약속을 정해 서로 요일을 번갈아 인스타 라이브를 주관하기로 했습니다. 새로운 형태의 그림 그리기에 많은 분들이 관심을 가져주셨습니다. 방송을 들으며 그림을 그리거나, 이야기를 나누었습니다. 댓글로 이야기를 나누던 분들께서 용기를 내어 직접 방송에 참여하기 시작하셨습니다.      


  1년동안 어떤 것들을 배우고 얻었는지 정리해 보았습니다.

우선, 그리는 것이 외롭지 않습니다. 즐겁습니다.

새로운 연결이 시작되고, 종종 ‘거인의 어깨’에 올라탈 수 있습니다.

마지막으로, 그림 그리는 일이 일상의 행복한 습관, 리츄얼이 됩니다.     


첫 번째, 함께 그리는 것이 즐겁습니다.

  그림 그리는 일은 외로운 작업입니다. 같은 공간에 있더라도 결국 그림을 온전히 마주하는 사람은 나 자신, 혼자뿐이니까요. 하지만, 인스타 라이브를 통해 함께 이야기하며 그리는 시간이 즐거웠습니다. 눈으로는 내 그림을 쫓으면서 조곤조곤 상대방의 말을 끊지 않으려고 끝까지 듣는 배려가 함께 했습니다. 함께 그리는 분들의 결, 주파수가 맞는 것 같아 더 행복했습니다.     

  같은 공간에 있지 않지만 그림이라는 공통분모로, 그림과 세상사는 이야기를 하며 그림을 그리다보면 금방 시간이 지나버리곤 했습니다.

  처음 저와 함께 인스타 라이브를 번갈아 진행하신 선생님은 얼굴도, 본명도 모르는, 게다가 다른 나라에 사시는 분이셨습니다. 그래도 금새 어색함없이 함께 그림을 그렸습니다. 일상의 리듬이 흐트러져버리는 일이 생길 정도로, 서너 시간을 연달아 그리다 늦잠을 자는 일이 생길 정도로 재미있었습니다. 그래서 시간을 정해 인스타 라이브를 진행했습니다.

 저녁 9시에 시작해 딱 1시간만 함께 그리고 인스타 라이브를 종료했습니다. 아쉬운 마음이 남은, 그림을 마저 그리고 싶은 분들은 다시 인스타 라이브를 열어 늦은 새벽까지 그림을 그렸습니다.     

 인스타 라이브를 처음 시작할 때는 어려웠습니다. 스마트폰 거치대를 준비해 자신에게 맞게 셋팅하는 것부터 어렵거든요. 인스타 라이브를 시작하면 눈으로는 그릴 대상과 종이를 계속 번갈아 보며 그려야 하고, 화면을 통해서는 함께 그리는 분의 그림과 채팅 창의 댓글들도 읽어야 합니다. 거기에 귀로는 함께 그리는 분의 이야기도 듣고, 말로 응답하는 것까지 하는 것이 쉬운 일이 아니었습니다.

  그보다 먼저 자신의 그림을 다른 사람에게 보여줄 수 있는 ‘용기’도 필요합니다.

  내 그림과 그림의 과정을 다른 사람들에게 보여주는 일도, 그림을 잘 그리시는 분들과 ‘비교당하면 어쩌지?‘하는 쓸데없는 생각을 지울 ‘용기’가 필요합니다.

  동시 접속 시청객의 수는 열 명 내외이지만 방송 인터뷰를 하듯 떨린다는 분들도 계셨습니다. 하지만, 함께 그리는 모습을 몇 번 보면 주저하는 마음보다 함께 그리고 싶은 마음이 금새 앞서기 시작합니다.

 그렇게 처음 라이브에 참석하신 분들에게 카메라 셋팅이나 인스타그램 라이브 기능을 알려드렸습니다. 함께 그리는 분들이 늘어났습니다. 간혹 방송체질이 아닌가 싶을 정도로 그림도, 말씀도 잘하시는 분들도 계셨지만 처음 참여한 분들은 두세 번 정도 묵언방송을 하게 됩니다.   

  묵묵히 그림을 그리는 것만 해도 정신이 없으니까요. 그래도 나중에는 방송을 시작하고 10분이 지나면 4명의 정원이 금새 채워졌습니다. ‘번호표’를 받아야 한다는 농담을 건네기도 했습니다. 그렇게 많은 분들과 함께 처음에는 어려웠지만 함께 그림을 그리는 즐거운 경험이 매일 저녁 9시면 책상 앞에 앉게 했습니다.        

  


  두 번째, 새로운 연결로 세상이 넓어지고, 나를 성장시키는 ‘거인의 어깨’에 올라탈 수 있었습니다. 해외에 사시는 한국분들은 물론, 가끔씩 제가 팔로우하고 있는 전업 작가님들이 인스타 라이브에 들어오셨습니다. 이미 유튜브로 온라인 강의를 하시는 작가님, 제가 인스타그램에서 존경의 ‘좋아요’만 남기고 있던 작가님들이 들어오시면 함께 그리자고 청하였습니다. 대부분 흔쾌히 수락하셔서 짧게라도 함께 그릴 수 있는 영광을, 저에게는 소름돋는 경험을 선물하셨습니다.

  사자 일대기를 연작으로 함께 그리신 티노작가님, 사모님의 퇴근을 기다리며 학원 칠판에 보드마카로 멋진 그림을 뚝딱 그려내고, 아쉬움의 ‘탄성’을 받으며 지우시던 김효찬 작가님은 자주 참여해 주셔서 거인의 어깨에 올라탈 수 있는 호사를 누리게 해주셨습니다.

  백승기 작가님의 새로 나온 책을 소개하다 백승기 작가님께서 들어오셔서 원 포인트 레슨을 받아 본 경험도 잊을 수 없습니다.

  그렇다고 작가님들께 무조건 받기만 하는 시간은 아니었습니다. 저도 인스타 라이브로 함께 그리는 재미를 알려드릴 수 있었습니다. 작가님들 대부분 거치대를 셋팅해 보신 경험이 있으셔서 바로 함께 방송을 할 수도 있었지만, 복잡한 거치대 셋팅이라던지, 인스타그램 어플 이용법 등을 알려드리며 도움을 드릴 수 있었습니다.

  주로 풍경을 소재로 하는 그림 친구들 외에 인물화나 디지털 드로잉 같은 다른 장르의 그림친구들도 만날 수 있었습니다. 중학생이나 고등학생 그림 친구들도 함께 방송을 할 때는 서로 선생님이라고 부르며 즐겁게 그림을 그릴 수 있었습니다. 정신없는 10대의 하이텐션에도 적응하게 되었고, 이 경험이 동네 청소년 수련관에서 중고등학생을 대상으로 첫 강의를 할 때 큰 도움이 되었습니다. 나이보다는 그림 그리는 마음으로 친구가 될 수 있는 자세를 배울 수 있었습니다.

  나중에는 그림뿐만이 아니라 글쓰기 모임 분들이 참여하셔서 재미있는 경험을 할 수 있었습니다. 재주가 많은 글쓰기 모임 선생님께서 신청곡을 받아 기타를 치며 노래를 불러 주시고 그 노래를 들으며 그림 그리는 시간은 가야금이나 대금 소리를 들으며 그림을 그렸을 옛 선조들의 풍류가 부럽지 않았습니다.

  함께 그림을 그리던 분이 다른 분과 함께 매주 화요일마다 주제를 정해 글을 쓰고 낭독하며 그림을 그리는 시간을 만들기도 하셨습니다. 말 그대로 고품격 그림방송이었습니다.  

        

  마지막으로, 함께 그리는 시간이 즐거운 루틴, 리츄얼이 되었습니다.

  1년을 즐거운 시간들로 채우면서, 야근으로 방송을 하지 못한 3일을 제외하고는 빼먹지 않고 평일 9시면 그림을 그렸습니다. 함께 라이브 방송을 진행했던 선생님께서 진행에서 빠지신 이후로 혼자 진행할 때가 많았지만 함께 그리는 선생님들께서 대신 방송을 진행해 주시기도 하면서 큰 무리없이 꾸준히 함께 그림을 그렸습니다. 즐거운 경험과, 좋은 습관이 몸에 베이게 되었습니다.      

  아침 일찍 일어나 서평이나 브런치 글을 쓰고, 출퇴근 통근버스 안에서는 책을 읽고, 7시 반 집에 돌아와서 씻고, 8시에는 가족들과 식사, 소파에 드러 눕거나, 늘어지지 않고 바로 책상에 앉아 그림을 그릴 준비를 하고, 라이브 드로잉이 끝나면 정리한 후 열시 반이면 잠자리에 누웠습니다. 뿌듯한 마음으로 잠자리에 들 수 있었습니다.

  이렇게 루틴을 만들고 그것이 습관화되어서 거의 무의식에 영역으로 들어가면 마음이 요동칠 때도 크게 흔들리지 않습니다. 따로 노력하지 않아도 자연스럽게 실행하게 됩니다. 이런 반복이 외로운 우리의 삶을 지켜주는 큰 힘이 됩니다. 원인을 알아채기도 전에 반복적으로 찾아오는 무기력에 오랫동안 침잠하지 않게 됩니다. 구호나 다짐같은 큰 힘을 들이지 않고 책상에 앉게 되면, 자연스럽게 그림을 그리고, 작은 성취감을 느끼고 다시 활력을 찾게 되고. 우울에서 빨리 벗어나게 됩니다.          

  그림 그리는 일도 외로운 작업입니다. 같은 공간에 있더라도 결국 그림을 제대로 마주하는 사람은 나 자신, 혼자뿐이니까요. 혼자 있는 시간을 견뎌야 더 단단해 질 수 있다는 사실도 잘 알게 되었습니다. 함께 이야기하며 그리는 시간은 더 즐겁게 나를 성장시키는 시간이 되었습니다.     


작가의 이전글 그림 초보의 준비물 2. - 펜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