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필로그 : 다시 새 학기

by 마나

3월이다. 작년 학생들이 자유학교를 수료한 지 2달이 넘어간다. 학생들은 수료식 때 밴드 공연으로 Bon Jovi의 It's My Life를 불렀었다. 세상 쿨하게 한바탕 잘 놀고 간다고 말하는 듯했다. 마지막 날이라 눈물이 나올 순간을 걱정하고 있던 나를 학생들은 십 대 특유의 유쾌함으로 잡아주었다. 그래, 잘 놀았으면 이제 가야지. 옆에 학부모들이 계셨지만 밴드 노래를 힘껏 따라 불렀다. 나도 덩달아 1년 동안 잘 놀았다는 의미였다. 마지막 하루닫기를 끝내고 학생들은 마치 어른이 된 듯 교사들에게 먼저 악수를 청했다. 그리고 뒤도 안 돌아보고 학교를 떠났다. 자유학교 사람들에게 수료식은 마지막 날이자 또 다른 첫날이었다.


학생이 떠나고 교사는 남았다. 그날의 여운이 학교 안에 아직까지 남아있다. 남은 자는 그 여운을 좀 더 진하게 느껴야 한다. 복도를 걷다가, 급식소에서 밥 먹고 나오면서 슬쩍슬쩍 It's My Life 노랫소리가 들리는 듯하다. 5기들은 잘 지내고 있으려나. 쿨하지 못한 나는 각자의 길을 잘 가고 있을 학생들이 궁금해 괜히 질퍽하게 텔레파시를 보내본다. 답이 오길 바라는 마음과 오지 않았으면 하는 마음이 공존한다. 내가 아직 작년을 다 보낸 것이 아닌가 보다.


내 마음과는 상관없이 올해도 새 학기도 시작됐다. 요즘은 동료 교사들과 계속해서 과목별로 짠 수업 계획을 공유하고 수정하는 중이다. 교사도 4명 중 2명이 바뀌어서 작년과 회의 분위기가 또 다르다. 새로운 환경이라 기존의 교사도 새로 전입 온 교사도 몸에 힘이 잔뜩 들어간 채로 생활을 한다. 퇴근할 때가 되면 한 것 없이 피곤하다. 아직은 서로 어색해하는 면이 있다는 뜻이다. 다행히 회의는 진정성 있게 흘러간다. 다들 수업 욕심이 있기 때문이다. 좀 더 나은 수업 계획을 짜기 위해서는 솔직한 피드백을 주고받는 것이 중요하다. 동료 교사는 회의론자처럼 질문을 던진다. 비난이 아니라 내 수업에 대한 새로운 관점을 제시해 주기 위함이다. 질문은 수업에 대한 시야를 넓혀 준다. 서로에 대한 믿음이 있어야만 가능한 일이다. 교무 회의가 제대로 진행되고 있다는 증거이기도 하다.


올해 내가 세운 영어 프로젝트 제목은 'It's My Life'이다. 5기 학생들의 응원을 6기 학생들에게 전달하고 싶다. 영어는 의사소통 도구다. 아직까지 한국 사람들은 영어를 부담스럽게 생각하는 경향이 많다. 영어 교사인 나도 다르지 않다. 하지만 걱정이 앞서면 아무것도 시작할 수 없다. 걱정 앞에 호기심을 놓아주는 것이 영어 수업 시간에 내가 해야 할 일이다. 그래서 나는 질보다는 양을 추구한다. 완벽한 영어를 1번 내뱉는 경험보다 어설픈 영어를 5번 하게 하는 기회를 주려고 한다. 경험 속에서 다듬어지는 학생들의 영어를 보고 싶다. 실수할까 두려워 사용하지 못하는 것이 아니라 실수를 10번 해야 얻을 수 있는 거라고 말해주고 싶은 것이다.


영어 프로젝트 계획을 공유하면서 동료들에게 질문을 던졌다. 말하기와 쓰기 위주로 진행될 영어 수업이다. 어떻게 하면 학생들이 수업 시간에 편하게 실수할 수 있을까. 동료 교사들은 편하게 말할 수 있는 수업 분위기는 꼭 영어 수업 시간만이 아니더라도 모든 수업에서 함께 만들어 가야 할 부분이라 했다. 함께라는 말이 고마웠다. 영어 교사가 아니라 타 교과 교사들의 피드백은 학생들이 말하는 것과 비슷한 내용이 많다. 영어 자체가 어려운데 거기에 철학적인 내용까지 담는 것이 무리가 아니냐는 질문이 들어왔다. 나는 영어가 익숙하지 않아 표현의 한계가 있을 수 있음을 인정했다. 하지만 영어를 제대로 사용하는 경험을 하게 해주고 싶다. 영어는 시간이 쌓여야 입 밖으로 나오기 때문이다. 서툴러도, 실수해도 괜찮다. 질보다는 양으로. 조금씩 틀을 깨는 경험치를 늘려간다. 그 맛보기를 영어 시간에 하는 거라 생각한다.


수업에 대한 이야기도 하고 회의 자체에 대한 이야기도 한다. 우리가 앞으로 지내면서 매번 의견이 맞진 않을 수 있다는 말도 자주 한다. 미리 대비하는 작업이라 생각한다. 교사는 각자가 살아온 틀과 방식이 있다. 학생들을 대하는데 차이가 있을 수밖에 없다. 그때 갈등이 발생한다. 당연한 거라 생각한다. 개인적인 문제가 아니라 교사 간, 교육에 대한 견해 차이이기 때문에 정기적인 교사 회의는 상황을 정리하는데 유용할 것이다. 다행히 자유학교 교사 회의는 형식적이지 않다. 나이에 상관없이 모든 교사가 자유롭게 말할 수 있다. 교사 회의의 분위기는 학생들과 함께 하는 공동체 회의로 확장된다. 공동체 회의에서도 교사와 학생은 모두 같은 위치를 가진다. 회의 시간이 의미가 있을 수밖에 없다.


화이부동(和而不同) : 화합하되 붙어 다니지는 않는다.


교사들은 각자의 수업 계획을 공유하며 조금씩 편안하게 불편한 관계를 만들어가는 중이다. 회의를 진행하면 할수록 4명의 교사가 참 많이 다르다는 생각을 한다. 나와 다른 사람들의 모습이 새롭고 또 두렵다. 늘 좋을 수는 없겠지만 함께 학교를 운영하되 똑같아지진 않는 사이로, 따로 또 함께 하길 바란다. 학교에서 동료 교사와 수업에 대해 터놓고 의논했던 적은 자유학교 이전에는 없었다. 수업은 늘 혼자서 계획하고 고민했던 부분이라 동료들과 이런 회의를 할 수 있다는 것 자체가 감사할 일이라는 것을 안다. 함께 시작할 수 있어서 다행이다. 나의 색깔을 있는 그대로 드려낼 수도 있어서 다행이다. 작년에서 올해로 넘어간다. 5기에서 6기로 학생들도 넘어간다. 이에 맞게 교사들도 다시 새 길을 걷기 시작한 듯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