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가 문제아인가

by 마나

문제아는 누구일까. 노란색으로 염색을 하고 뒷골목에 숨어 담배를 피우는 학생들이 떠오른다. 피어싱을 하고 화장을 하고 다니는 건 어떤가. 그들이 문제아인가. 국어사전에는 문제아란 성격이나 행동 따위가 일반 학생들과 달리 문제성이 있는 아이라고 나온다. 사전을 찾는 이유는 단어에 대한 정확한 의미를 파악하기 위함인데 사전 때문에 머리가 더 복잡해진다. 문제아와 일반적인 학생을 구분하는 기준이 뭘까. 성격이나 행동에 문제성이 있다는 것은 무엇을 뜻하는 걸까.


기준도 없는 단어는 사람들의 편견으로 단단하게 포장되어 아무에게나 달라붙는다. 내 머릿속부터 살펴보자. 노란 머리로 염색을 하고 담배를 피우는 것은 무슨 문제성이 있을까. 원래 모발이 검은색인 경우, 노란 머리는 탈색을 해 검은색을 다 뺀 후 다시 노란색으로 염색을 해야 그 빛깔이 나온다. 노란 머리를 계속 유지하려면 계속 이 과정을 반복해야 해서 결국 머리카락이 윤기 하나 없이 빗자루처럼 버석거리게 된다. 담배는 또 어떤가. 중독이 잘 돼 쉽게 끊기도 힘들고 한참 커야 할 청소년들의 성장을 멈추게 한다. 결국, 내 머릿속 문제아는 스스로 건강을 해치는 사람으로 정의 내릴 수 있다.


사전적 정의에 따르면 문제아의 반대말은 일반 학생이다. 그렇다면 일반 학생이란 스스로 건강을 해치지 않는 사람을 뜻하는 걸까. 사람의 건강은 중요한 문제다. 그래고 건강은 각자 스스로가 챙겨야 하는 것이 맞다. 하지만 건강을 챙기고 안 챙기고가 문제아냐 아니냐를 결정짓는 것이 맞는 기준일까. 대부분의 학교는 학생의 머리 모양과 흡연을 규제한다. 교칙을 어겼을 경우에 그에 합당한 벌을 받기도 한다. 학교에서 주는 벌은 적절한 걸까. 백 번 양보해서 '사랑의 매'라고 생각하고 봐도 여전히 상황은 어색하다. 건강을 안 챙기는 것은 벌을 줄 부분이 아니라 걱정해야 할 일이기 때문이다. 편견을 가지고 있는 사람은 노란 머리에 담배를 피우고 있는 학생이 아니라 나였다. 벌을 받아야 하는 사람은 누구일까.

<XXL레오타드 안나수이 손거울>이라는 청소년 연극 대본을 읽었다. 주인공 준호는 모범적인 학교생활을 하는 학생이다. 하지만 그의 취향은 일반 학생들과 다르다. 여자 발레복을 입으면 편안함을 느낀다. 고등학교 입시교육의 심한 압박감을 레오타드를 입으며 해소시킨다. 이해하기 쉽지 않은 취향이므로 다른 사람들에게 들키면 일반 학생들과 다른 문제성을 가진 학생으로 오해받을 것이 뻔하다. 모범생이 문제아가 되는 것은 한순간이다. 준호가 두려웠던 것은 독특한 자신의 취향이 들통나는 것이 아니었다. 다른 사람들에게 자신의 행동에 대한 생각을 말할 기회가 없이 바로 문제아로 찍히는 것이 무서웠다. 울면서 교사 영길이에게 말하는 준호의 모습이 안쓰러웠다. 나라면 어땠을까. 학생들의 말을 제대로 들을 때까지 판단하지 않을 수 있었을까. 아무 말 못하고 당황하는 영길이의 행동이 이해가 되는 것을 보면 아마 나도 영길이와 비슷한 수준일 것이다.


준호 : 당하는 사람은 어떡해요? 그냥 가만히 있어요?

영길 : 다른 식으로 대응해야지.

준호 : 막무가내로 이상한 놈 만들고 병신 만들고 왕따 만들면요?

그럼, 어떡해요?

들어주지도 않고 들어줄 생각도 안 하면 어떻게 하냐고요. 어떡하냐고요!


준호는 쉬는 시간에도 영어 단어집을 들고 다녔다. 숨 쉴 공간이 없는 고등학생의 삶이었다. 모든 고등학생이 다 그렇게 산다고 대수롭지 않은 게 아니었다. 견디기 위해서는 숨 쉴 곳을 찾아야 했다. 그것이 레오타드였다. 남학생이 여자 발레복을 입었다는 것이 문제일까. 입시공부만 밀어붙이는 교육 시스템이 문제일까. 문제의 근원은 살펴보지 않고 다름을 틀린 것으로 보는 사회는 끊임없이 '문제아'를 만들어 추방시킨다. 이 책에서 문제아는 일반 학생들과 다른 취향을 가진 학생이었다. 대다수의 학생이 그렇지 않다는 것이 '문제아'를 규정짓는 잣대였다.


위에서 다루었던 '문제아'들을 다른 각도에서 살펴보자. 진짜 문제아인가. 스스로 건강을 챙기지 않는 아이는 건강의 중요성을 알려주면 되고 독특한 취향을 가진 아이는 왜 그런 취향을 가지게 되었는지 물어보고 함께 이야기를 나누면 된다. 예외를 인정하지 않는 곳은 '일반 학생'만을 찍어낸다. 다양한 동물이 없어지는 사회에 결국 코로나 바이러스의 숙주는 남아있는 인간이 되지 않았던가. 지난 3년 간 마스크와 함께 했다. 무엇을 더 뒤집어쓰며 살고 싶은가. 너와 나는 다르다. 학생들도 모두 다르다. 달라서 서로가 함께 있을 때 튼튼해지는 것이다. 다름을 틀림과 구분하지 못하면 우리는 또다시 같은 것만 남길 것이다. 그리고 또 뭔가를 뒤집어쓴 채로 무겁게 살아가게 될 것이다. 언제쯤이면 마스크도 빼고, 편견도 던지며 가벼워질 수 있을까.


다시 본질로 돌아와 보자. 그렇다면 진짜 문제아란 누구일까. 다른 것이 아니라 틀린 것을 하는 아이가 아닐까. 나를 위해 남을 해치는 것은 틀린 것이다. 나를 그대로 드러내기 위해 남의 불편함을 아랑곳하지 않는 것은 틀린 것이다. 함께 하는 의미를 잘 모르며 나의 이익과 손해만을 생각한다. 나는 이런 아이들을 문제아라고 생각한다. 우리 모두는 자신이 가장 중요하다. 나를 중심에 두고 삶을 살아간다. 하지만 내 삶을 위해 다른 사람을 틀린 사람으로 보고 인정해주지 않는다면 내 삶도 틀린 것이 될 것이다. 어쩌면 '일반 학생'이 진짜 문제아는 아닐까. 배척되지 않기 위해 나의 다름도 남의 다름도 배척한다. 틀린 길을 가고 있지만 대다수에 속하기 위해 소수를 배척한다. 이 길이 문제아의 길이 아닐까.


아리아 : 마나, 저 버스 탈 때 어른 요금 내고 다녀요.

마나 : 왜?

아리아 : 머리색 때문에 청소년으로 봐주질 않아서요.

일일이 말할 수도 없어서 그냥 마음 비웠어요.

마나 : 억울할 텐데. 괜찮아? 그냥 머리색을 검은색으로 하는 게 어때?

아리아 : 아니에요. 기사님이 이해가 돼서 기분 나쁘진 않아요.

그리고 무엇보다 전 제 머리색이 좋아요.


4년 전 아리아라는 학생과 내가 나눴던 대화다. 눈이 크고 늘 생글거리는 학생이었다. 아리아의 머리색은 그 해 여러 번 바뀌었다. 에메랄드색 단발머리를 하고 다닐 때였다. 아리아와 이야기를 하며 내가 어른의 범주에 드는 것이 부끄러웠다. 아이가 어른을 더 이해하고 있었다. 그리고 에메랄드색을 좋아하는 아리아의 마음이 더없이 강해 보였다. 그때 알았다. 어른은 끊임없이 자신의 굳어가는 생각을 경계하는 사람이어야 한다는 것을 말이다. 문제아로 문제 어른으로 평생을 살고 싶지 않다면 틀리지 않은 생각으로 다르게 살아보는 건 어떨까. 꽤나 큰 용기가 필요하겠지만 에메랄드빛만큼의 가치는 있지 않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