친구는 수업 시간에 사귄다
교사는 학교에 왜 갈까. 자세히 들여다보면 사람마다 이유가 다르겠지만 큰 틀로 보면 간단히 정리할 수 있다. 첫째, 학생들이 있기 때문이고, 둘째, 생계수단이기 때문이다. 학생이 없는 곳에 교사가 있을 리가 없다. 교사는 학생을 위해 존재하는 듯하지만 자세히 따져보면 교사가 학생을 더 필요로 한다는 것을 인정해야 한다. 그렇다면 학생은 어떤가. 학생은 왜 학교에 갈까. 교사가 있어 학생이 학교에 간다는 생각은 요즘같이 인터넷이 발달된 시대에는 다소 부자연스러운 대답이다. 고백하건대 나보다 영어를 잘 가르치는 사람들이 인터넷상에 많다. 굳이 영어를 나에게 배우려고 학생들이 학교에 나올 필요가 없다는 뜻이다. 그렇다고 학교가 학생들의 생계를 책임지지도 않는다. 고작 점심 한 끼를 제공할 뿐이다. 그런데 왜 대부분의 학생들이 학교에 다니는 걸까.
학생들에게 학교에 가는 이유를 물으면 어이없는 질문을 하는 나를 보며 영문을 모르겠다는 눈빛을 보낼지도 모른다. 그리고 대답을 원하는 교사를 위해 배우기 위해서라고 억지로 답하지 않을까. 무엇을 배웠는지에 대한 꼬리질문에 대비하여 기억나지 않는 수업을 생각해 내려 노력할 것이다. 사실은 엄마가 가라고 해서 간다는 반항 섞인 대답을 하고 싶을지도 모른다. 학생들이 학교에 와서 해야 할 것은 교사가 미리 만들어 놓은 시간표에 다 들어 있다. 가야 하는 이유, 해야 할 이유에 대해 제대로 생각해 볼 기회도 갖지 못한 채 학생들은 학교를 다니고 수업을 듣는다. 만약 학생들에게 학교를 다니기 전 선택할 자유를 준다면 어떤 결과가 나올까. 학생들은 배움을 위해 학교를 선택할까.
심심해서 하는 헛된 질문 같아 보이지만 사실은 그렇지 않다. 대부분 우리는 초등학교에서부터 고등학교까지 12년을 학교에서 보낸다. 거기에 유치원과 대학교, 대학원까지 보태면 20년이 넘어간다. 학생들에게 집을 제외하고 그렇게 오랫동안 꾸준히 시간을 보낼 장소가 또 있을까. 20년이란 세월만으로도 학교에 가는 이유쯤은 찾아야 하는 것이 맞는 듯하다. 요즘은 홈스쿨링, 검정고시와 같은 학교 교육과정을 벗어난 제도도 많다. 공식적으로 학교 외에 배울 수 있는 장소와 방법이 여러 가지 있다는 뜻이다. 그런데 왜 학생들은 아직도 배움의 장소로 학교를 선택할까. 혹시 이유도 모르고 친구 따라 학교에 가는 건 아닐까.
어쩌면 '친구 따라 강남 간다'가 답인지도 모른다. 학교에는 또래 친구들이 있다. 같은 곳에서 같은 수업을 들으며 하루에 최소 6시간 이상을 함께 보낸다. 나와 비슷한 존재가 옆에 있다는 것은 삶의 큰 위안이자 두려움이다. 학생들은 그 속에서 삶을 배운다. 내 중심으로 흘러가던 집을 벗어나 세상의 중심이 내가 아니라는 경험을 한다. 그리고 절망과 인정을 통해 진정한 자존감을 쌓아간다. 살면서 꼭 배워야 할 것을 서로를 통해 배운다. 이것이 학생들이 학교를 다니는 이유 아닐까. 친구를 만나기 위해 학교를 오긴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맹목적으로 친구를 따른다는 의미는 아니다. 내가 좀 더 나다울 수 있는 곳이 친구 옆에 있을 때라는 것을 아는 것이다.
3월이 되면 학생들이 학교에 모인다. 1교시부터 6교시까지 빈 공간 하나 없는 시간표를 들고 교과서를 챙긴다. 해야 할 일이 많아 옆 친구를 제대로 볼 시간이 없다. 이럴 때 교사는 무엇을 해야 할까. 학생을 위해 학교에 존재하는 교사는 국영수 수업 외에 무엇을 준비해야 할까. 쉬는 시간을 15분으로 늘릴 수도 없고 시간표에 노는 시간을 별도로 넣을 수도 없다. 아무리 생각해도 교사는 수업 외에 크게 준비할 수 있는 것이 없다. 교사가 할 수 있는 게 이렇게도 없단 말인가. 교사가 무능력한 것일까. 학교에서 친구를 사귀고 싶은 학생의 마음이 과한 것일까.
친구는 수업시간에 사귄다
책 <가르침을 멈추니 배움이 왔다>를 읽다가 교사가 할 일을 발견했다. 역시, 수업이었다. 수업의 개념을 살짝 바꿔보기로 했다. 영어를 가르쳐주기 위해서가 아니라 영어를 가지고 친구와 대화할 수 있는 시간을 만들어보는 건 어떨까. 영어를 소재로 친구들과의 수다에 몰입하는 모습을 볼 수 있다면 학생들이 내 수업을 들으러 학교에 온다는 사실이 미안하진 않을 듯하다. 모르거나 궁금한 것이 있으면 친구에게 물으면 된다. 학생들은 친구를 통해 가장 많이 배운다. 똑같은 말이라도 교사가 하면 잔소리지만 친구가 하면 우정이 된다. 올해 내가 하고 싶은 수업도 수다로 가득 찬 시간이다. 나도 친구 같은 교사로 학생들의 수다에 동참하고 싶다.
2월 말이다. 새 학년이 시작되기 전 교사들이 수업 계획을 짜기 바쁜 시기다. 나도 이런저런 생각을 하지만 아직 구체적인 계획은 잡지 않고 있다. 생각을 정리한 후 시작을 하고 싶어서다. 오늘은 수업 고민을 하다가 학생들의 생각을 감히 추측해 보았다. 내가 내린 결론은 인간관계였다. 학생들이 학교에 오는 이유는 사람과 사람이 만나는 장소이기 때문이라 생각한다. 학생들이 친구와의 관계 속에 삶에 대한 의미를 스스로 발견하는 시간을 가지길 원한다. 그리고 나도 할 수만 있다면 학생들과 우정이라는 것을 나눠보고 싶은 욕심도 내어본다. 사람과 사람 사이에 윤활유 역할을 시간표에 들어 있는 국영수가 하면 좋겠다. 어떤 과목을 배우든 우리는 사람을 배운다. 그것이 우리가 학교에 가는 이유가 아닐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