끝과 시작

It's My Life

by 마나

매년 이 맘 때가 되면 학생은 학교를 떠나고 교사는 남는다. 학생들이 없는 텅 빈 교실에는 찬 공기가 가득 차 있다. 아무것도 없는 듯하지만 자세히 보면 인연의 흔적이 보인다. 매일 몇 번씩 드나들던 곳인데 평소에는 보이지도 않던 것이 이제야 눈에 들어온다. 미처 살피지 못했던 학생들의 시간을 보는 듯해 한참을 쳐다보았다. 칠판에 적힌 글씨에 오타가 보인다. 띄어쓰기도 틀렸다. 고쳐주고 싶은 마음이 올라오자 피식 웃음이 났다. 못 말리는 교사 직업병이다. 다행히 학생들이 없으니 틀린 글씨도 내 안의 병도 그냥 둔다. 완벽해서 의미가 있는 것이 아니라 학생이 적은 글씨라 관심이 가는 것이니 틀린 것이 더 매력적일 수도 있겠다 싶다.


5년째 이런 기분을 느끼고 있다. 만나고 헤어지는 것이 인생이란 것을 알지만 그래도 당장은 마음이 허하다. 빈집 증후군 아니, 빈 교실 증후군이다. 바람 빠진 풍선처럼 팔다리에 힘이 쭉 빠진다. 교실에 가만히 앉아 있으면 누군가가 문을 열고 들어올 것만 같다. 그래서 그냥 앉아 있었다. 다시 오지 않을 시간을 미련스럽게 기다려보는 것도 내게 온 빈 교실 증후군을 맞이하는 자세로 나쁘지 않은 듯했다. 다행히 학교에는 학생이 없으면 할 일도 많지 않다. 할 것 없이, 한량처럼 그렇게 교실에 한참을 앉아 있었다. 기다림이 지겨워질 때쯤 찬 공기가 몸에 스며들었다. 올 사람 없으니 정신 차리란 뜻으로 받아들였다.


It's my life

It's now or never

I ain't gonna live forever

I just want to live while I'm alive


내 인생이야.

지금이 아니면 없어.

영원히 살 순 없어.

나는 단지 살아 있다는 느낌이 드는 동안만 살고 싶을 뿐이야.

내 인생이야


- It's My Life (Bon Jovi) 중 후렴부.


수료식이 끝이 났다. 며칠이 지난 지금까지도 마지막 밴드 곡 Bon Jovi의 'It's My Life'가 내 귓가를 맴돈다. 손님들이 한 명씩 올 때마다 떨려서 얼굴이 점점 굳어지던 학생들은 첫 공연을 끝내고 긴장이 서서히 풀리는 듯했다. 정해진 순서대로 각자 지난 1년간 자신만의 자유학교 이야기를 했다. 한 명씩 올라갈 때마다 내 손은 이유도 없이 떨렸다. 그런 나를 비웃기라도 하듯 학생들은 무대 위에서 평소보다 더 뻔뻔했고 능글거렸다. 유난히도 부끄럼 많은 기수였는데 수료식 제목이 '배 째! 어쩌라고!'라서 그런가 학생들은 작정하고 즐기기 시작했다. 옆 친구가 떨면 "틀리지 않으면 재미없데이. 그냥 해버려."를 연신 외쳐댔다. 틀려도 되는 공연은 편안했고 그 편안함 속에 보이는 학생들의 진짜 모습은 보는 우리들의 마음을 뭉클하게 했다.


6명이 진행한 수료식은 4시간 넘게 걸렸다. 무대에 선 학생들의 흥이 나에게도 전염됐다. 마지막이라 애틋하게 무대를 볼 줄 알았는데 예상과 다르게 그냥 즐겼다. 딴생각할 틈도 없이 웃고 울고 또 웃었다. 같은 학교에서 지냈지만 학생들이 얻어가는 삶의 가치는 모두 달랐다. 말수가 적었던 크롱이 애드리브로 징까지 치며 십 분 동안 자신의 이야기를 했다. 일 년간 '잘 놀다 갑니다'라고 능글거리며 말하던 토리, 사람이 좋아 연신 1년간 만났던 사람들을 이야기한 포비, 노력하는 것이 아니라 그저 즐기는 모습을 처음 보여줬던 오비완, 학교를 제대로 다니지 않았다며 사과와 고마움으로 발표를 한 종결, 그리고 이 모든 것을 챙기며 수료식을 준비했던 수줍음 많던 로쏘의 파워풀한 'It's My Life' 목소리까지, 수료식은 일 년간 제대로 나이를 먹은 사람들의 시간이었다.


행사 뒷정리까지 끝낸 뒤 우리는 마지막으로 교실에 모였다. 한 마디씩 아무 말이나 하자 했다. 마지막이니 뭔가 의미 있는 말을 해야 할 것만 같았는데 의외로 내 입에서 나온 말은 "자알 놀았다. 이제 잘 가."였다. 사람들도 웃는 얼굴로 내일 또 볼 것처럼 미련도 아쉬움도 없이 짧게 인사를 했다. 안에 있는 것을 다 표현하고 난 후라 그랬던 걸까. 마지막으로 찍었던 사진 속 사람들의 표정이 다 자연스러웠다. 우자 말씀대로 우리는 이 사진을 찍기 위해 지난 일 년 동안 매일을 조금씩 쌓아왔던 것이라 생각한다. 한 살 잘 먹고 배불러 떠나는 학생들의 모습이 듬직했다.


학생들이 떠난 교실에 앉아 있으니 로쏘의 It's My Life 목소리가 다시 들리는 듯하다. 며칠 사이 교실의 온도 차이가 심해 마음이 허하지만 누군가와 헤어진 후 헛헛함을 느끼는 것은 제대로 시간을 보낸 사람들만이 가질 수 있는 특권이라는 것을 나는 안다. 의자에서 일어서기 전에 마지막으로 교실을 한 번 둘러보았다. 책상과 의자, 그리고 책밖에 없는 이곳에 다른 사람들은 볼 수 없는 우리들만의 시간이 추억이란 이름으로 바뀐 채 켜켜이 쌓여 있다. 실컷 헛헛하고 일어나니 다리에 다시 힘이 생긴다. 이제 나도 빈 교실에서 나올 시간인가. 교실 문을 잠그며 생각했다. 이것이 교사로서의 나의 인생이다. 평생 교실 문을 들락날락하며 희로애락을 느끼는 삶. 그 속에서 살아 있다는 느낌을 계속 느낄 수 있었으면 좋겠다.


https://youtu.be/RmLDfbjioZU

<Bon Jovi의 It's My Lif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