학년 말 조바심
학교란 참 묘한 곳이다. 사람들과 만나는 날, 헤어지는 날이 정해져 있다. 처음 만나 낯설어하던 때가 엊그제 같은데 이번 학년도 이제 한 달밖에 남지 않았다. 마지막 남은 달력을 보며 학생 한 명 한 명을 떠올린다. 방학이 시작되기 전까지 나는 학생들에게 무엇을 더 해줄 수 있을까. 조바심이 생겨난다. 시간이 없어 학생 의견을 묻는 것을 생략한 채로 마음만 잔뜩 담아 행동하기도 하고 짧은 시간에 강한 인상을 주기 위해 화를 내는 척하기도 한다. 이건 아닌데 싶은 생각이 들면서도 최근에 속을 겉으로 드러내는 방법이 거칠어졌다.
조바심이 함정이었다. 학생들을 돕고자 하는 마음은 틀린 것이 아니므로 의심하지 않고 행동한 것이 잘못이었다. 학교에서는 학생들이 매주 6시간 자신만의 프로젝트를 진행 중이다. 주기적으로 프로젝트 중간 점검을 하는데 오늘이 그날이었다. 3주 후에 있을 프로젝트 발표날을 대비한 마지막 점검이었다. 학생들의 이야기를 듣고 있으니 프로젝트에 대한 열정이 잘 느껴지지 않았다. 학년 말이라는 생각이 들자 마음이 급해져 프로젝트가 학생들에게 의미가 있는 것인가에 대한 의문까지 들기 시작했다. 혼자 답답했다.
그때부터 '교사놀이'가 시작됐다. 학생들에게 프로젝트의 부족한 부분에 대해 묻기 시작했다. 틀린 말은 아니었지만 내 답답한 마음이 목소리에 그대로 실려 학생에게 전달되었다. 말의 내용보다는 말속에 들어 있는 감정만이 남은 듯 학생들은 점점 주눅이 들기 시작했다. 약간 마음이 쓰였지만 마지막이라는 생각이 내 조바심을 부추겼다. 지금은 강하게 말할 필요가 있다고 스스로 합리화를 했다.
프로젝트 점검 시간이 끝나고 교사들끼리 모여 이 시간에 대한 회의를 했다. 프로젝트 점검이 좀 과하게 진행되었다는 말도 있었고 할 만했다는 말도 있었다. 나는 내가 한 말을 되새겨보았다. 비난의 의도는 없었지만 감정적으로 말한 것은 맞았다. 학생들의 프로젝트가 좀 더 잘 진행되었으면 하는 바람을 제대로 전달하지 못했다. 감정을 배제하고 내용만 전달해야 했다. 나는 어설펐음을 인정하지 않을 수 없었다.
오후에 우리는 다시 모였다. 점검을 한 후 각자가 느낀 점에 대해 이야기를 나누었다. 학생들은 조금씩 눈치를 보며 남은 3주 동안 잘 준비해야겠다고 말했다. 나는 종결이에게 오전에 내가 한 말 때문에 많이 당황했는지 물어보았다. 당황하게 만들었다면 미안하다고 했다. 종결이는 우물거리며 답을 하진 못했지만 표정이 한결 편안해짐을 느꼈다. 다행이었다. 학생들은 종결이보다 더 당황한 것은 다음에 발표를 해야 했던 포비였을 거라는 우스갯소리를 했다. 표정이 풀리는 학생들을 보니 고마웠다. 주눅이 들어 있던 모습을 그냥 넘겼던 것이 미안하기도 했다.
교사는 학생들을 얼마나 기다려야 할까. 학생들이 깨달을 때까지 믿어주고 기다려주는 것이 기본적으로 교사가 해야 할 일이라고 생각하지만 학생마다 기간도 다르고 방법도 달라 적절한 타이밍을 잡는 것이 어렵다. 언제까지 기다려야 한다고 표시가 되어 있으면 얼마나 좋을까. 학생도 교사도 마음 편히 기다리며 삶을 즐길 수 있을 텐데. 안타깝게도 그런 건 없어 눈에 보이지 않는 변화를 찾아내는 작업을 끊임없이 해야 한다. 시간이 지나면서 내 기다림에 조바심이 대신 현명함이 조금씩 들어가면 좋겠다. 오늘 같은 날이 쌓이면 그리 될 수도 있을까.
교무실에 돌아와 자리에 앉으니 갑자기 피로감이 몰려왔다. 애는 쓰고 성과는 없는 오늘 같은 날은 잘잘못을 따지기 전에 일단 힘이 빠진다. 오후에 해야 할 일을 잠시 미루고 소파에 누웠다. 다시 생각을 해봤다. 오늘은 기다리는 날이 아니라 말하는 날이 맞았다. 나는 느슨해져 있는 학생들에게 말을 해야 했다. 대신 감정을 배제하고 내용만. 지금 생각해도 어려운 말이다. 지금은 화도 나고 미안하기도 하여 마음이 복잡하지만 배워야 할 부분이 맞긴 한 것 같다. 배움의 80%는 불편함이라는 우자의 말씀이 위로가 된다. 그래, 나는 배우고 있는 중이다. 그래도 지금은 한숨 자야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