점심을 먹고 나면 학생들은 교무실로 양치를 하러 온다. 묵직해진 배를 두드리며 입에 각자의 칫솔을 물고 오물거린다. 학년 초에는 숫기가 없어 하루 종일 얌전히 있었는데 지금은 칫솔이 입안을 차지하는 3분의 시간도 내어줄 수 없다는 듯 정확하지 않은 발음으로 서로에게 옹알이를 쉴 새 없이 발사한다. 나도 내 자리에서 해야 할 일을 챙기며 학생들의 소리를 듣는다. 나이는 17살인데 아재 개그가 좋은가보다. 학생들끼리 하는 아재 개그가 제법 많이 늘었다. 내 나이에 딱 맞는 유머라 나도 덩달아 좋다. 들으며 혼자 키득거리기도 하고 마음에 드는 개그가 있으면 옹알이 사이를 끼어들기도 한다.
12월이다. 아직 1달이 남았다. 요즘 학생들을 보며 드는 생각이다. '아직'이란 단어 속에 벌써 올해도 끝났다는 아쉬움을 담는다. 학생들이 넓은 화장실을 두고 굳이 줄까지 서가며 교무실의 한 칸짜리 개수대를 사용하는 이유는 화장실보다 조금이라도 더 가까운 곳이기 때문일 게다. 하지만 교무실이 불편하지 않고, 좁은 공간에 서로가 붙어 있어도 더 이상 어색하지 않은 것도 이유가 되진 않을까. 학교 안에서 학생들의 동선을 살펴본다. 아침열기를 하고 옆 교실로 옮겨서 수업을 듣고 점심시간이 되면 식당에 갔다가 교무실로 들어온다. 나와 동선이 다르지 않아 아침부터 계속 봐야 하는 얼굴들이다. 1년간 우리는 그렇게 살았다. 처음에는 봐야 했지만 지금은 보면 좋고 안 보면 보고 싶은 얼굴이다. 학생들에게도 내 얼굴의 의미가 그랬으면 좋겠다.
자유학교는 언제 없어질지 모르는 작은 학교이다. 학교에 애정이 가면 갈수록 이 연약한 곳에 힘을 실어주고 싶은 마음이 간절해진다. 학교 못지않게 힘없는 교사지만 그래도 할 수 있는 것이 있지 않을까. 고민하다가 시작한 것이 기록이었다. 지난 5년간 나를 키워준 곳을 글로 남겨보자. 많은 사람에게 영향력 있는 글은 되지 못하겠지만 그래도 내가 쓴 글이 언젠가 자유학교와 비슷한 학교를 꿈꾸는 사람에게 힘이 될 수도 있을 테니 내가 할 수 있는 것을 해보자 싶었다. 그리고 올해의 일상을 차곡차곡 모아갔다. 하루를 정리하는 시간은 내가 어떻게 살았는지를 되돌아보게 해 주었고 하루의 발걸음이 모여 천천히 나의 길을 걸어가고 있음을 느낄 수 있었다. 내가 가는 길이 틀리지 않았다면 자유학교의 힘도 그곳에 있을 것이다.
학교에서 하는 것은 읽고, 듣고, 말하고 쓰며 걷는 것이 다다. 여행을 가기도 하고 외부 사람들을 만나 이야기를 들어보기도 하면서 우리는 끊임없이 읽고 듣고 말하고 썼으며 그리고 걸었다. 요즘 아침열기에 <<동물농장>>을 읽는다. 여러 동물들이 나오기 때문에 읽고 난 뒤에 캐릭터를 분석하는 시간을 갖는다. 오늘 한 학생이 힘세고 순하며 성실하지만 머리가 좋지 않은 말인 '복서'가 생각 없이 행동하는 것을 보고 답답해했다. 나는 스스로를 복서와 닮았다고 생각했기 때문에 마음이 뜨끔했다. 그리고 내가 최근 행동하기 전에 생각을 정리하지 않은 적이 있었는지 다시 복기해보았다. 학교는 따뜻한 곳이지만 따끔한 일침 같은 말들이 가감 없이 오고 간다. 그 속에서 나는 배우고 느낀다. 소중한 시간이다. 자유학교에 애정이 가는 이유는 나와 다른 사람들을 깊이 있게 경험할 수 있기 때문이라 생각한다.
올해는 거의 마무리가 되어가지만 자유학교의 일상은 계속 이어질 것이고 나의 기록도 그 시간을 따라갈 것이다. 자유학교에 근무한 지 5년째다. 시간과 체력이 허락하는 한 이곳에 좀 더 오래 머물고 싶은 마음이 크다. 내가 학교에 계속 있을 자격이 있을까. 열심히 기록하며 내 길의 의미를 찾아봐야겠다. 쉽지 않은 길이지만 성실하되 답답하지 않을 사람으로 살기 위해 자유학교에서 존재의 의미를 찾고 싶다. 평생 배우는 교사를 꿈꾼다. 나는 '복서'를 넘어설 수 있을까. 아직은 질문의 답은 잘 모르겠다. 그냥 계속 질문하며 생각하는 삶 자체만으로 의미을 찾아볼 것이다. 자유학교에서의 하루하루가 귀하다. 그래서 나는 오늘도 행복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