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험 감독하다가 졸았다.

시험 치는 학생을 보며

by 마나

교실에는 난방 기계 소리만 들리고, 평소 중구난방이던 학생들이 책상에 조용히 앉아 있었다. 고요한 아침의 자유학교였다. 교실에 한량은 나뿐이라 할 일 없이 이리저리 주변을 기웃거렸다. 학생들은 움직임이 없는 듯했지만 자세히 보면 쉴 새 없이 등에서 긴장감을 뿜어냈다. 어이없게도 순간 나는 그 등에 기대어 자고 싶었다. 1년을 제대로 나이 먹은 사람들의 등은 깊이와 넓이가 달라 그런 듯했다. 그래도 명색이 영어 시험인데 교사가 졸면 안 되지. 졸린 눈을 비비며 괜히 교실을 한 바퀴 돌았다. 학생들 손에 들린 연필이 바빴다. 움직임이 모두 달라 연필들의 사각거리는 소리가 더 조화롭게 들렸다.


나는 올해 학생에게 주는 마지막 질문으로 "영어 공부를 하고 싶니?"를 선택했다. 학생들은 OREO(Opinion-Reason-Example-Opinion or Offer) 틀을 이용해 질문에 답을 하는 영어 에세이를 적어야 했다. 1년간 자유학교에서 영어를 따져봤으니 이제 각자의 생각이 생겼을 거라 믿고 낸 질문이었다. 학생들은 재판장석에 앉아 열심히 판결문을 쓰고 피고인석에는 영어가, 증인석에는 내가 앉아 선고만을 기다렸다. 내 마음이 떨려야 정상일 텐데 나는 민망하지만 잠이 올 정도로 편안했다. 재판의 결과에는 크게 관심이 없었기 때문이다. 대신 학생들의 글 속에 어떤 이야기가 들어 있을지는 궁금했다. 결과가 어떻든 떼쓰거나 허무맹랑한 글이 아니라 이유 있는 반항이나 이유 있는 동조를 기대했다.


시험 시간이 1시간 지났다. 학생들은 2시간 동안 2개의 영어 에세이를 써야 했다. 학생들이 내는 연필 소리를 들으며 참 겁도 없이 잘도 쓴다 싶었다. 곰곰이 생각해 보니 나도 2시간 동안 영어 에세이를 적었던 적이 임용고시 칠 때를 제외하고는 없었다. 고1 학생에게 좀 과한가 싶기도 했지만 그냥 밀고 나가기로 했다. 따라올 성싶었기 때문이다. 그렇게 나도 학생들도 겁도 없이 오늘 시험을 만들어냈다. 일단 하고 보자는 마음이 생긴 것이 틀림없었다. 시간이 지날수록 학생들의 두 뺨이 점점 발그레졌다. 집중하는 사람들 옆에 있으니 나도 뭔가에 집중을 해야 할 것만 같았다. 나는 한량답게 연필 소리에 집중했다. 무슨 내용이 담길지 점점 더 궁금해졌다.


진짜 겁먹은 연필 하나가 사각거리는 소리에 동참하지 않았다. 빈 좌석도 나름의 이유가 있을 것이다. 예전처럼 애가 타거나 마음이 쓰이진 않았다. 이것 또한 1년을 경험한 후 학생이 자신만의 선택을 한 것이라고 받아들였기 때문이다. 시간을 두고 고민했을 학생의 마음을 존중하고 싶었다. 그리고 나의 마음도 살펴봤다. 교사로서 내가 할 수 있는 것과 할 수 없는 것을 생각했다. 여러 가지가 떠올랐으나 지난 1년 동안 할 수 있는 것은 하려고 노력했다는 사실에 좀 더 무게를 두기로 했다. 실제로 나는 종결이에게 영어 공부를 하기 싫은 이유가 적힌 에세이를 받고 싶었지만 그것도 나의 욕심이라고 빈자리는 말을 하고 있었다.


시험 시간 1시간 30분이 지나고 학생들이 약간 지쳐가기 시작했다. 교무실에서 귤을 가지고 와 책상 위에 하나씩 놓아주었다. 정신 차리려고, 목이 말라서, 그냥 있으니까 학생들은 귤을 까먹기 시작했다. 그리고 다시 연필을 바쁘게 움직였다. 시험 시간이 거의 마무리되었을 때에도 시간이 더 필요한 사람은 더 있어도 된다고 말을 했다. 실제로 3시간을 시험 시간으로 잡고 들어간 시험이었다. 시간 내에 글을 적는 속도를 점검하기보다는 하나의 글을 완성해보는 경험을 주고 싶었기 때문이다. 학생들은 3시간 중 각자가 필요한 만큼 시간을 활용했다. 시험도 수업의 일부가 맞았다.


시험이 끝이 났다. 교실 뒷정리를 하는데 얼굴이 붉게 변한 학생들이 들어와서 주변을 어슬렁거렸다. 하고 싶은 말은 많고 머리는 멍한 듯했다. 그런 모습을 보니 왠지 기분이 좋았다. 학생들을 괴롭히고 즐거워하는 교사가 딱 나였다. 시험이 끝나서 이제 한동안 영어 교사로서의 나는 없다. 이제 좀 더 편하게 학생들과 마지막 시간을 즐길 수 있다. 괴롭히며 얻은 즐거움과 편안해서 얻은 즐거움은 다를 것이다. 학생들에게 힘들지만 나의 질문을 견뎌줘서 그리고 좀 더 나아가 1년간 내 수업을 들어줘서 고마웠다고 말하고 싶다. 그리고 남은 시간은 편안하게 학생들과 지내야겠다. 교사는 학생들이 수업 시간에 흘리는 땀을 느낄 때 가장 행복하다. 한량이 풍류를 즐기듯 학생들의 모습과 소리를 자장가 삼아 행복하게 졸던 시간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