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마트폰 중독 탈출

3일째

by 마나

어릴 적 마술쇼를 본 적이 있다. 마술사가 몸을 차곡차곡 접은 후 작은 상자에 들어갔다. 아무리 봐도 다 들어가지지 않을 부피인데 어떻게 들어갔을까. 숨은 제대로 쉬고 있을까. 보는 내내 가슴이 답답했지만, 뚜껑이 닫힌 상자는 몇 분간 아무런 미동도 없었다. 관객들도 숨죽여 상자만 쳐다보았다. 짧은 시간이었지만 상자 속이 너무 궁금했다.


다행히 쇼라 마법 같은 마술은 늘 해피엔딩이었다. 고이 접혔던 마술사가 팔과 다리를 하나씩 쭉쭉 펴며 나왔다. 그는 무슨 일이 있었냐는 듯 능청스럽게 인사를 했고 우리도 안도의 한숨을 쉬며 박수를 쳤다. 작은 상자가 마술이었을까, 마술사가 마술이었을까. 보고 또 보아도 상자도 마술사도 내가 아는 것과 별반 다르지 않았다. 호기심이 채워지지 않아 그 속이 더 궁금했다.


나도 마술사처럼 천천히 내 몸을 접기 시작했다. 상자는 손바닥만 했으므로 빈틈없이 몸을 접어야 했다. 스며들 듯 스마트폰 속으로 들어갔다. 그때가 2012년이었다. 생각보다 불편하지 않았다. 그 속엔 할 것도 많아 몸을 움직이지 않아도 지루하지 않았다. 상자 안은 나만의 세상이었다. 굳이 바깥 구경을 하고 싶지도 않았으므로 나는 그곳에서 편안하게 지냈다. 시간은 점점 더 빨리 지나갔다. 팔과 다리는 펴지 않은 것이 당연해져 버렸다.


편안함에 한 번 빠지면 그곳을 나올 이유를 찾지 못한다. 불편함을 원하는 사람은 아무도 없기 때문이다. 나라고 별반 다르지 않았다. 나는 손바닥 안에서 할 일과 하지 않아도 되는 일을 구분하지 못한 채 알고리즘이 주는 대로 받아먹기만 했다. 점점 내 생각은 중요하지 않아졌다. 생각할 필요도 없었다. 나는 주는 것 받아먹고 즐기면 되는 갓난아기였다. 마흔이 넘은 아기는 귀여운 구석이 하나도 없었다. 미운 얼굴이 거울 속에 보였다.

며칠 전, 나는 상자를 나왔다. 스스로 움직이지 않아도 되는 세상에서는 행복할 수 없다는 것을 알았기 때문이다. 몇 주째 계속되던 우울감을 떨쳐내기 위함도 있었다. 지금은 2023년, 11년을 넘게 그곳에 있었다. 갑자기 나온 바깥세상은 나를 무중력 상태에 있는 듯, 붕 떠 있게 했다. 살갗에 느껴지는 5월은 봄치고는 아직 쌀쌀했다. 접혀 있던 몸을 하나씩 펴서 의자 위에 얹었다. 나는 어디를 갔다 온 것일까. 여행을 끝낸 후처럼 몸도 마음도 노곤해졌다. 아무것도 없는 곳이 낯설었다.


부모처럼 내 옆에서 알뜰살뜰 살펴주던 알고리즘도 없다. 내가 움직이지 않으면 먹을 음식도 찾을 수 없다. 주변은 그대로인데 나만 딴 세상으로 빠져나와 둥둥 떠다닌다. 여기는 세상 밖일까. 세상 안일까. 휴대폰 데이터를 껐을 뿐인데 내 일상이 통으로 바뀐 듯하다. 낯설어 갈팡질팡하는 나를 본다. 또다시 갓난아기가 되었다. 나이는 숫자에 불과하다더니 정말 맞는 말이다. 나는 제때 나이를 먹지 못해 아기 생활을 반복하는 중이다.


법륜 스님은 이것을 까르마라고 하셨다. 내가 살아온 삶의 습관을 지금이라도 바로 잡아야 했다. 스마트폰에 대한 호기심은 죄가 무거워 11년을 갇혀 있었다. 더 무서운 것은 스스로 현실을 깨닫지 못하면 평생 감옥에 갇혀 산다는 것이다. 교도관도 CCTV도 없는 감옥에서 나올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은 갇혀 있다는 것을 인식하는 것이었다. 알고리즘은 내가 그것을 인식하지 못하도록 엄마의 모습으로 변장하여 나를 보호하듯 가두었다. 그것이 부모가 아님을 알기까지 11년이 걸렸다.

손에 든 스마트폰을 더 이상 스마트해지지 않게 만들기로 했다. 제일 먼저 한 일이 스마트폰 알람 기능을 끄고 아날로그 탁상시계를 사는 거였다. 큰 서점인데도 아날로그시계는 4가지뿐이었고 그나마 재고 상품이 남아있는 것은 2종류였다. 모두가 디지털로 바뀐 후 아날로그 시계 자리도 줄어든 듯했다. 크게 고민하지 않고 먼지 쌓인 시계를 골랐다. 시험 삼아 켜 본 알람 소리는 소외되었던 자가 서러움을 뱉어내듯 쨍쨍했다.


데이터와 알람 기능을 끄고 나니 폰은 그야말로 작은 네모 플라스틱이다. 덩치 작은 이 놈은 왜 그리 매웠을까. 호되게 혼난 후, 지금도 다시는 스마트폰을 사용하지 않겠다는 약속은 하지 못하는 나를 본다. 그러고 싶지 않지만 앞으로 다시 만날 확률이 크다는 것도 안다. 그때가 오기 전까지만이라도 내 삶에 여백이 많았으면 좋겠다. 아직은 온라인이 없는 저녁이 지루하다. 지루해서 낯설고 낯설어서 설렌다. 언젠가 나를 위해 박수 치는 사람을 만난다면 행복할 것 같다. 내가 선택한 길이 시대를 거스르는 길일지라도 능청스럽게 웃으며 걸을 수 있을 때까지 가보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