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필로그 :자유로 가는 길

인연의 시작과 끝

by 마나

"거긴 야근하는 날이 많나요?"

"아니요. 여긴 야간자율학습이 없어요."

"아, 그래요?"


6년 전, 오후 수업을 마치고 교무실로 돌아왔을 때 전화 한 통을 받았다. 내년에 교육청에서 자유학교라는 대안학교를 만들 예정인데 그곳에서 함께 일해보지 않겠냐는 제안이었다. 그때 나는 일반계 고등학교에서 오전 7시 40분부터 밤 9시 30분까지 일하는 생활을 하고 있었다. 무의미한 야간자율학습 감독에 질려 있던 터라 자유학교에 대한 이야기를 들으면서도 새 학교에 대한 설렘보다는 퇴근 시간이 보장되는지가 더 궁금했다. 제안을 수락한 것은 순전히 존재하지 않는 야간자율학습 덕분이었다. 이것이 내가 자유학교와 인연을 맺은 첫날의 이야기다.


야간자율학습에도 자유라는 단어가 들어갔던 탓에 새로 일할 학교의 이름이 자유학교라는 것이 전혀 기대되지 않았다. 자유학교를 만드는 TF팀에서 대안학교가 무엇인지 처음 알게 되었을 때도 대학 때 배웠던 교육학 개론 속에 예시로 등장하는 학교처럼 현실감 없이 들렸다. 그래도 나는 그곳에 있겠다고 마음을 먹었다. 뜬구름 잡는 일일지라도 해보자라는 말을 동료 교사들이 하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확신 대신 불확신을 선택한 4명의 교사 속에 내가 있다는 사실이 불안하면서도 나쁘지 않았다. 내가 소모품이 아닐까에 대한 생각을 하며 인문계고에서 지냈던 지난 5년 간의 불안과는 차원이 다른 불안이었다. 새로운 세계에 대한 이야기는 현실에 매몰된 채 죽어가던 나에게 손을 뻗어주는 듯했다.


도망치듯 나와 자유학교에 도착했다. 학교에 학생들이 들어오고 새로운 형태의 수업을 만들었다. 그 당시 나는 프로젝트 중심 수업(Project-based Learning)을 공부하고 있었기 때문에 배운 것을 수업 시간에 그대로 써먹었다. 첫 해에는 말 그대로 교사와 학생 모두가 허허벌판에서 같이 뒹굴었던 듯하다. 열정 하나만 가지고 진짜 자유가 무엇인지도 모른 채 자유를 향해 나아갔다. 가끔 학생들이 하는 질문은 자유학교가 나아가야 할 곳을 가르쳐 주는 이정표 같았다. "이거 왜 해요? 자유학교에서 왜 자유가 없어요?" 학생들의 반항 섞인 질문에 나는 제대로 답하지 못했다. 자유가 무엇인지 생각해보지 않았던 자유학교 교사였기 때문이다. 교사들은 학생들의 질문에 호되게 아파하며 자유에 대한 공부를 하기 시작했다. 이제와 생각해 보면 다 준비되지 못한 상태에서 시작한 학교라 나아가는 길을 찾기 쉽지 않았던 듯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학교가 지금까지 이어지고 있는 것은 대다수 사람들이 놓치고 살고 있는 자유를 생각할 기회가 계속 주어지기 때문이 아닐까.


벌써 6년째다. 나는 여전히 방황하며 배우는 교사다. 자유학교에서는 방황도 하나의 도전으로 보일 수 있어 좋은 교육 자료가 된다. 나라는 사람, 내가 만들어 가는 삶 자체가 하나의 교과서다. 그런 '나'가 모여 11명이 함께 한다. 학생 7명, 교사 4명이 모여 올해도 읽어야 할 교과서가 11권이나 된다. 읽으면 읽을수록 점점 더 단단해지는 책이다. 자유란 무엇일까. 학생들이 다시 묻는다면 이제는 방황을 선택할 수 있는 힘이라고 대답할 것이다. 완벽하지 않는 나라는 인간이 불완전함을 그대로 드러내고 본래의 나로서 살기 위해 애쓰는 삶 속에 자유가 있다고 말할 수 있지 않을까. 우리가 모두 책이 될 수 있는 이유는 불완전하기 때문이라고 말하고 싶다. 완벽한 책은 재미도 감동도 없을 듯하다.


요즘 국어 시간에 <크게 그린 사람>이란 책을 읽고 있다. 은유 작가님이 인터뷰를 하고 적은 책인데 18명의 인터뷰이가 모두 다른 사람책이라 챕터마다 배움의 색이 달라 좋다. 그중 인권기록활동가로 살아가는 홍은전 씨의 이야기가 흥미로웠다. 그는 노들장애인야학에서 13년 간 지내다가 나왔다. 그는 인생에서 가장 잘한 것이 노들장애인야학에 들어간 것이자 그곳을 나온 것이라 했다. 그 부분을 읽는데 문득 궁금해졌다. 자신의 열정을 모두 바쳤던 곳과 잘 헤어졌다고 표현하는 마음은 어떤 것일까. 그리고 꼬리질문이 생겼다. 나는 자유학교와 잘 헤어질 수 있을까.


홍은전 씨가 노들장애인야학에 대해 이야기하는 부분을 읽으며 그의 애정을 잘 느낄 수 있었던 것은 내가 자유학교에서 근무하며 느끼는 것과 결이 비슷하기 때문이다. 국어 시간 마지막 소감에서 '어떻게 자유학교와 잘 헤어질 수 있을까요?'를 질문으로 던졌다. 어차피 내가 찾아야 할 답이었으므로 남으로부터 답을 구하기보다는 이제부터 잘 찾아보겠다는 나의 의지가 들어 있는 질문이었다. 홍은전 씨가 나에게 질문을 선물로 주셨다고 생각한다. 언제가 될지 모르는 헤어짐을 생각하며 자유학교가 나에게 어떤 의미인지를 좀 더 찾아볼 생각이다. 아직 시간적 여유가 있어서 다행이다.


나는 자유학교가 참 좋다. 이곳에서 만나는 모든 사람들이 스승이자 친구이다. 모두에게 배울 점이 있다. 이 세상에서 가장 재미있는 책은 뭐니 뭐니 해도 사람책이 아닐까. 매일 책을 읽고 이야기를 나눈다. 각자의 자유를 찾아 제각기 길을 떠나는 사람들은 옷차림도 생각도 모두 다르다. 그 속에서 나도 자유를 찾는다. 나는 점점 더 자유로워지고 있다. 어설프지만 배우는 교사로 콘셉트를 잡고 나니 완벽하지 않아도 된다는 사실이 나를 편안하게 한다. 이렇게 좋은 곳에서 6년째 뒹굴고 있다. 좀 더 있고 싶은 마음으로 헤어질 날을 생각한다. 학교 가지 않는 주말을 사랑하는 교사지만 학교 가는 날도 설렘으로 출근한다고 말할 수 있어 좋다. 자유학교와의 인연이 소중하다. 헤어질 시간도 그럴 수 있으면 좋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