맞춤법과 띄어쓰기 공포
자유학교에 근무하면서 가장 좋은 점은 타교과 수업에 내가 '고등학생'으로 앉아 수업을 들을 수 있다는 것이다. 비록 작은 따옴표를 쓸 수밖에 없는 가짜 학생이지만 마음만은 진심이다. 국어 시간은 삶을 위한 받아쓰기로 시작한다. 원고지에 우자가 들려주는 이야기를 듣고 자신이 느낀 점이나 생각을 300자 이내로 적으면 된다. '고등학생'으로서 내가 제일 좋아하는 활동 중 하나이기도 하다.
글을 원고지에 써서 제출을 하면 우자는 다음 시간에 맞춤법과 띄어쓰기가 틀린 부분을 밑줄 쳐서 돌려준다. 자세한 피드백은 없다. 학생이 나름 생각하고 고쳐서 들고 오면 다시 확인을 받을 수 있을 뿐이다. 이 ‘불친절한 피드백’은 이젠 고칠 것이 없다는 뜻의 빨간색 동그라미를 볼 때까지 계속 받을 수 있다. 학생들이 능동적으로 수업에 참여하고 공부할 기회를 제공하는 방법이라 생각한다.
처음 국어 수업을 들었을 때였다. 신나게 써서 제출했던 내 원고지가 수많은 빨간 줄과 함께 되돌아왔다. 내 옆에 앉은 학생들이 내 것을 힐끔거리며 보기 시작했다. 그리고 자기 것과 비교를 했다. 몇 분간의 긴장감을 지금도 잊지 못한다. 나는 당황해서 얼굴을 붉혔다. 학생들이 뭐라고 생각할지 걱정도 됐고 여태 내가 썼던 글 속에 얼마나 많은 빨간 줄이 있었는지 예상을 할 수조차 없어 머리가 하얘졌다. 자세히 보고 무엇이 틀렸는지 알고 싶었으나 당황한 나는 원고지를 접어 책 속에 넣었다. 빨리 수업이 끝나기만을 바랐다.
집에 돌아와서 내 원고지를 다시 폈다. '~ 할 거에요'에 밑줄이 그어져 있었다. 왜 틀렸는지 알 수가 없어 수업 시간에 소개받은 맞춤법 검사 사이트에 들어갔다. '할 거에요'를 치니 '할 거예요'로 수정되어 나왔다. 한 번도 고민하지 않은 부분이었다. 나는 평생 저 표현을 몇 번 쓰고 살았을까. 알 수 없는 부끄러움이 몰려왔다. 부인하고 싶었지만 아무리 봐도 내 글씨였다. 그날 밤 잠을 설쳤다.
모르고 살 때는 어쩔 수 없었지만 더 이상 부끄럽게 살 수는 없었다. 맞춤법과 띄어쓰기를 고쳐 다시 제출했다. 살아남은 빨간 줄 몇 개가 다시 돌아왔다. 두 번째 밑줄은 처음보다는 덜 당황스러웠다. 여유가 생겨 원고지를 책 속에 넣지 않았다. 대신 옆 학생에게 내 원고지를 보여주고 틀린 부분을 아는지 물었다. 학생은 확실하진 않지만 자신의 생각을 내게 말해 주었다. 그 말을 듣고 다시 고쳤다. 고마웠다. 수업이 반복되면서 학생들과 전우애가 생겼다. 그리고 나도 서서히 진짜 '고등학생'으로 되어가고 있었다. 빨간 줄은 여전히 기분 나빴지만, 수업 시간은 편안했다.
띄어쓰기에서 한국인의 삶의 철학을 느낀 적도 있다. 나는 '주고받다'는 표현을 자주 쓴다. 살면서 잘 주고받는 것이 중요하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처음 쓴 '주고 받다'에 밑줄이 그어져 있는 것을 봤을 때 좀 의아했다. '주다', '받다'는 두 개의 동사이니 띄어쓰는 것이 맞다는 생각 때문이었다. 내가 던진 질문에 우자는 사람들이 많이 쓰는 표현은 시간이 지나면 표준어로 인정해준다는 설명을 해 주셨다. 그건 영어도 마찬가지라 이해가 됐다. 우리는 옛날부터 품앗이처럼 주고받는 문화가 있지 않았는가. '주고' '받는' 행위가 하나의 단위로 표현되는 사회가 맞으니 '주고받는'이란 표현도 띄어쓰기가 필요 없는 것이 자연스러운 것이다. 작은 표현 속에도 생각과 문화가 들어있다는 사실이 신기했다. 배움이 재미있었다.
그렇게 6년을 보냈다. 여전히 헷갈리고 모르는 부분이 많지만 이제 더 이상 막막하진 않다. 내가 한글을 잘 모른다는 사실을 알고 있기 때문이다. 빨간 줄이 하나도 없는 원고지도 간간이 본다. 지난 시간이 그냥 지나간 것은 아니었음을 느낀다. 헷갈림 속에 재미도 있다. 한번 알았다고 맞춤법과 띄어쓰기가 바로 고쳐지지 않는다. 여러 번 같은 실수를 반복하니 어이가 없어 웃게 된다. 실수를 인정해주는 교실이라 편하게 틀릴 수 있어 다행이다.
나는 한글을 새로 배우고 있는 중이다. ‘체언과 조사’, ‘어간과 어미’, ‘어근과 접사’가 어떻게 조합이 되는지를 살피고 빈 원고지 위에 잘 배치한다. 글을 쓰며 국어 사전을 찾는 습관이 생겼다. 맞춤법 검사기를 돌렸을 때 가끔씩 오류가 없다는 말이 나오면 얼마나 기쁜지 모른다. 늦었지만 제대로 길을 잡아가고 있다고 생각한다. 배우는 만큼 글의 내용도 깊어지고 띄어쓰기나 맞춤법 오류도 줄어들 거라 믿는다. 좀 더 다듬어진 언어로 나는 자유학교 속 이야기를 적고 싶다. 교육에 대한 사회적 우려를 자유학교가 풀어줄 수 있지 않을까 해서다. 힘없는 일개 교사가 할 수 있는 일이 많진 않겠지만 내가 한 기록이 언젠가 사람들에게 작은 희망을 줄 수 있길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