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다리는 것은 힘들다
고구마를 삶았다. 갈색이 깊이를 더해갔다. 순간 군침이 돌았다. 위와 침샘은 연결이 안 되어 있나 보다. 점심 먹은 지 별로 되지도 않았는데 입에 침이 고이니 난감했다. 다 익으면 바로 먹을 거라는 신호가 머릿속에 입력이 됐다. 책을 읽고 있었는데 내용이 기억나질 않았다. 책을 떠난 내 마음은 몸과 한통속이 되어 부엌만 들락거리며 아직 덜 익은 고구마를 젓가락으로 계속 쑤셔댔다. 순간 과거에 내가 한 말이 돌아와 고구마 위에 앉았다. 교사는 학생이 스스로 용기를 낼 때까지 옆에서 기다려주는 사람이라고 말했던 것 같은데 젓가락 흔적이 온몸에 있는 고구마를 보니 고구마가 학생 같아 괜히 부끄러웠다. 역시 사람은 말을 조심해야 하나 보다. 아니, 행동을 조심해야 하는 걸까.
이제 익을 때까지 더 이상은 쑤시지 말자고 마음을 먹었다. 차분히 의자에 앉아 기다리기로 했다. 책을 들었다가 다시 놓았다. 책에 집중하는 것까지는 무리인가 보다. 잘 기다리지 못하고 엉덩이가 들썩거리는 것이 냄비 뚜껑이 수증기 때문에 움직이는 것과 닮았다. 다행히 다시 젓가락을 들고 돌진하진 않았다. 스스로 다 익을 때까지 기다려야지. 쑤신다고 고구마가 익는 건 아니니까. 의도치는 않았지만, 고구마가 익는 동안 흘러나오는 침을 닦으며 교사로서 내 마음도 다잡으려 노력했다. 뜬금없는 수련의 시간이었지만 고구마가 학생으로 보이기 시작한 후로는 어쩔 수가 없었다.
고구마 익는 소리가 나고 냄비 뚜껑을 뚫고 수증기가 계속 올라왔다. 겨우내 조용하던 학교도 다시 냄비처럼 끓기 시작했다. 이제 새 학년 준비로 바빠질 것이다. 요 며칠 내 마음도 괜히 어수선했다. 새 학기가 시작되면 생고구마처럼 딱딱한 학생들이 들어와 낯선 학교에서 며칠 방황할 것이다. 그러다 각자의 속도로 조금씩 익어가겠지. 수증기에 온몸의 긴장이 조금씩 풀리며 속에 있던 제맛을 그대로 드러내는 시간을 가질 수 있으면 좋겠다. 그때 내가 젓가락으로 쑤시고 다니진 말아야 한 텐데. 내가 생각하는 이상적인 교사는 잘 기다려주는 교사가 맞다. 기다림의 의미가 정리가 안 되어 헤매고 있긴 하지만 오늘처럼 고구마를 머리부터 발끝까지 찔러야 다 익었는지 알 수 있는 건 아니니 자제하는 힘을 다시 길러야겠다.
드디어 고구마가 다 익었다. 고구마 몸에 더 이상 상처를 주긴 싫어 이미 뚫어놓은 곳에 젓가락을 넣고 조심스럽게 그릇에 덜어냈다. 연기가 펄펄 나는 것이 먹음직스러웠다. 침샘이 활발히 활동을 하고 있고 그 속도에 맞춰 내 손도 바삐 움직였다. 아직 한참 뜨거울 때였지만 더 이상은 참을 수 없어 후후 불어가며 고구마 껍질을 깠다. 노오란 속살이 그대로 드러났다. 차가운 갈색 겨울이 익을 만큼 익고 나니 속에 있는 노란 봄이 제 맛을 내며 나오는 듯했다. 서툴렀지만 기다린 보람이 있었다.
잘 익은 고구마를 한입 넣었다. 뜨거워서 저절로 입김을 불었다. 조금 진정이 되고 나니 담백한 고구마 맛이 입안에 남았다. 고구마란 자고로 뻑뻑하게 목메면서 먹는 맛 아닌가. 요즘은 물컹거리면서 단맛이 진한 호박고구마가 더 인기가 많긴 하지만 나는 잘 삼켜지지 않는 밤고구마의 불편함을 느끼고 싶다. 밤고구마 특유의 단맛을 좋아하기 때문이다. 처음 씹었을 때는 나오지 않는다. 오래 보아야 제대로 된 맛을 알 수 있다. 밤고구마가 그렇다. 학생도 그렇다.
제법 덩치 큰 것을 다 먹고 나니 배도 부르고 기분도 좋다. 푹 익은 고구마였으니 덕분에 나도 조금은 익었겠지. 고구마로 변신한 학생이 내 안에 들어와, 다 먹었으면 이제 새 학기를 준비하라고 꿈틀거린다. 든든히 채워졌으니 슬슬 움직여볼까. 내일 학교에 가면 업무분장부터 시간표까지 거의 확정이 될 것이다. 올해는 교사도 두 명이 바뀐다. 새로 오신 분들과 잘 맞춰나갈 수 있도록 이야기도 많이 해야 한다. 작은 학교에서 교사들 간의 관계는 학생들 교육에 직접적인 영향을 끼친다는 것을 알기 때문이다. 새로운 환경이 낯설 때마다 밤고구마를 생각해야겠다. 제 맛이 날 때까지 학생도 동료 교사도 그리고 나도 기다려주는 나를 꿈꾼다. 일단 젓가락부터 내려놓고 보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