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동
주말이다. 여행이 끝난 후 집은 평소보다 더 반갑다. 학생들과 올해 첫 여행으로 하동을 다녀왔다. 걷기 여행답게 3박 4일을 계속 걸었다. 분명 잘 놀다 왔는데 더 놀고 싶다는 아쉬움보다는 아무것도 하지 않아도 되는 주말의 설렘이 더 크다. 여행은 돌아갈 일상이 있기 때문에 좋은 것이 아닐까. 무사히 잘 지내고 왔다는 교사로서의 뿌듯함까지 다 던져버리고 오롯이 나로 돌아와 거실에 대자로 뻗어 눈을 감고 숨을 쉬었다.
널브러진 내 옆에 여행 가기 전 화분에 심었던 콩이 싹을 틔워 제법 올라와 있다. 봄이 느껴졌다. 하동에서 본 새싹과 닮은 모습이었다. 흙에 콩알 몇 개를 심고 물을 주었을 뿐인데 어린 콩은 세상 열심히 고개를 들어 흙을 뚫고 나왔다. 지금 내가 느끼는 생명력이 봄의 기운이 아닐까. 나에게 내 화분에 있는 콩이 중요하듯 하동 곳곳에 피어나는 꽃과 새싹들도 하동 사람들에게는 그러할 것이다. 내 몸에 잔뜩 스며든 하동의 봄기운이 기분 좋게 묵직하다. 우리의 첫 여행도 봄과 잘 어울리는 시간이었다.
첫날 하동으로 들어가는 차 속에서 우리가 목표로 한 구재봉과 형제봉을 보았다. 산등성이 중 가장 높은 두 곳이 마주 보고 서있었다. 산 앞에서는 늘 한없이 작아진다. 내 한 몸 건사하기도 힘들어 비실거리는 내가 학생들을 데리고 무사히 다녀올 수 있을까. 혼자서는 어림없는 일이었다. 나는 동료 교사와 함께였고 자유학교 사람들은 '놀루와'라는 하동의 공정여행사와 함께였다. 5년째 함께 일을 해오고 있는 놀루와 사람들은 자유학교와 살아가는 결이 비슷하다. 있는 그대로의 나를 찾으려 노력하는 자유학교와 있는 그대로의 하동을 보여주고 싶어 하는 놀루와가 만나 함께 걸었다. 기분 좋은 땀냄새가 꽃향과 섞여 났다.
산은 인간을 위해 만들어진 곳이 아니다. 인간이 손을 대면 댈수록 힘들어지는 곳이고 그냥 두면 둘수록 우리를 보듬어주는 곳이다. 구재봉을 오를 때는 가파른 길에 모두가 헉헉거렸다. 별것도 아닌 인간이 올라보겠다고 애쓰는 것에 심통이 난 듯했다. 우리는 산에 핀 진달래와 벚꽃을 제대로 살펴볼 정신도 없이 연신 숨을 고르며 올라갔다. 구재봉은 쉽게 올라갈 수 있는 곳은 아니었지만 학생들은 젊음을 무기로 교사들은 책임감을 무기로 다 함께 산을 올랐다. 구재봉 활공장은 섬진강과 평사리 들판을 한꺼번에 볼 수 있는 일몰 맛집이었는데 미세먼지로 잘 보이지 않아 아쉬움이 남았다. 하동까지 진출한 누런 공기는 빈틈없이 구재봉의 일몰을 가리고 있었다.
내려오면서 이 년 전 산불의 흔적을 보았다. 아직도 복원되지 않은 산은 그을린 나무와 베어진 나무로 스산했다. 산이 예전 모습으로 돌아오기 위해서는 최소한 20년이 걸린다고 한다. 올해도 산불이 났다던데 그곳은 또 얼마나 많이 탔을까. 뉴스로만 보던 산불로 인한 피해를 직접 눈으로 보고 학생들도 생각이 많아진 듯했다. 곳곳에 있는 쓰레기들을 보면서 한 마디씩 했다. 인간의 흔적을 없애는 것이 인간이 해야 할 일이라고 구재봉은 말해주고 있는 듯했다. 산은 인간을 보호해 줄 수 있지만 인간은 산을 보호해 줄 수 없다. 있는 그대로 놔두는 것이 우리가 할 수 있는 최선이지만 한계를 인정하기 싫어하는 인간들은 오늘도 산을 판다. 얼마나 더 더러워져야 산은 꽃을 피우지 않고 먹을 것을 주지 않을지를 시험하는 듯하다. 내 한계는 보지 못하고 자연의 한계만을 시험하며 살아가는 어리석음이 무서울 따름이다.
형제봉은 구재봉보다 오르기 더 힘들었다. 형제봉 구름다리까지 5시간 산행을 목표로 세웠고 학생들의 걷는 속도에 맞춰 세 그룹으로 나누어 걷기 시작했다. 고소산성에 도착해서 잠시 쉬고 있을 때 제일 마지막으로 현붕이 팀이 도착했다. 생각보다 빠르게 올라와서 놀랐지만 걸을 길이 많이 남아서 괜히 걱정이 됐다. 올라갈 수 있겠냐는 내 말에 현붕이가 살짝 짜증을 냈다. 당황했지만 학생의 상태를 점검해야 한다고 생각했다. 마지막 종착지인 구름다리에서 현붕이를 보는 순간 미안함이 밀려왔다. 걱정보다는 믿음을 가져야 하는 순간이 맞았는데 나는 이번에도 틀린 선택을 한 것 같다. 교사는 안전에 대한 두려움과 학생을 믿는 마음 사이에서 매일 고민한다. 좀 더 갈고닦아야 할 부분이다.
산능선을 따라 오르고 내리고를 반복하며 계속 걸었다. 나는 중간 팀에 속해서 걸었는데 설화와 산호가 제법 잘 걸어서 걱정 대신 농담을 주고받으며 산행을 할 수 있었다. 나는 산능선을 좋아한다. 멀리서 바라만 봐도 넓게 펼쳐진 산능선이 멋진데 그곳을 따라 걸으니 더 신이 났다. 구름다리까지 거의 도착했을 때 뒤를 돌아봤다. 우리가 걸었던 산능선이 펼쳐져 있었다. 우리의 발걸음도 쌓여 있을 것이다. 산이 생긴 모습 그대로를 따라 걸으며 느꼈던 시간이었다. 자유학교와 놀루와 그리고 지리산이 함께 어우러져 구름다리 위에서 우리는 기분 좋게 사진을 찍었다. 있는 그대로를 바라보는 사람들과 자연은 그 자체로 충분했다.
여행은 걸으며 웃고, 울고, 느끼며 완성되었다. 함께 걷는다는 건 혼자만의 세계 그 너머를 경험할 수 있는 시간이 아닐까. 오는 버스 속에서 너무 피곤해 화장실에 가지도 않고 잠을 잤다. 뒤에 있던 동료 교사 이상이 내 의자를 좀 더 뒤로 밀어 편히 잘 수 있게 해 주셨다. 같이 일한 지 오래되지 않아 아직 어색한 면이 있는 관계지만 같이 걸으며 조금은 친해졌나 보다. 학생들도 옆에 있었지만 크게 신경이 쓰이진 않았다. 아무래도 나는 교사로서의 어른스러움은 버려야겠다. 여행 한번 같이 다녀왔을 뿐인데 학생과 동료 교사 옆에서 편하게 잘 수 있다는 것이 신기하다. 내가 뻔뻔해진 건지 우리의 관계가 편안해진 건지 모르겠지만 뭐든 무슨 상관일까 싶다. 여행은 잘 다녀왔고 오늘은 주말이고 내일도 쉴 수 있다. 그것만으로도 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