철학 : 수업을 망쳤다

공동체 회의

by 마나
겸손이 미덕이다.
모난 돌이 정 맞는다.
좋은 게 좋은 거다.
다들 그렇게 산다.
그래, 사는 게 별거냐.
젠장.

이전에 근무했던 학교에서는 매주 월요일 1교시 수업 전, 교직원 모두가 모여 회의를 시작했다. 나는 회의에 빠지지 않고 참석했지만 이야기를 하는 경우는 거의 없었다. 모난 돌이 정 맞는다 하지 않던가. 괜히 눈에 띄기 싫었다. 거의 대부분의 사람들이 나와 같았다. 회의 시간은 점점 더 조용해졌고 무의미해졌다. 그때부터였을 것이다. 나에게 회의 시간은 눈에 안 띄는 곳을 차지하고 다소 불편하지만 스릴 있게 잠을 자는 시간이었다. 아무도 나를 깨우지 않았고 나는 아무런 죄책감도 느끼지 않았다.


회의에 대해 회의적이었다. 무슨 회의를 하자고 하면 잠부터 왔다. 그냥 결정을 내려 통보를 해주지 굳이 불필요한 단계를 거칠 필요가 있을까 싶었다. 다행히 좋은 게 좋은 거라 생각하고 살아서 그런지 일방적인 통보에 크게 기분이 나쁘지도 않았다. 다들 그렇게 사니 별 문제없다고 여겼다. 불필요하지만 관례상 해야 하는 절차 같았다. 나도 묻혀서 따라갔다. 자유학교에 처음 왔을 때에도 여전했다. 의견을 내지 않고 따라만 갔던 습관이 몸에 배여 나는 열심히 고개를 끄덕이며 모든 의견에 동의하는 의견 없는 참석자였다. 숨을 곳이 없어 잠을 자지 못하는 것이 내내 불편했다.


자유학교의 교무 회의 참여자는 달랑 4명. 숨을 곳이 없어 반강제적으로 회의에 참석이 아닌 참여를 하기 시작했다. 졸음을 참아야 했던 불편한 시간이 쌓여 벌써 6년째가 되었다. 이제 더 이상 회의 시간에 잠을 자지 않고 얌전이 미덕이 아니라는 것도 안다. 나는 회의의 4분의 1을 책임져야 한다. 내가 얌전하면 얌전할수록 나머지 3분이 나의 짐까지 짊어져야 한다는 것을 알기 때문이다. 자유학교는 학교 규칙이 따로 없다. 정해진 길이 없어 어디로 가야 할지 매일 선택하고 점검하는 생활을 한다. 의견을 낸다는 것은 여전히 쉽지 않은 일이지만 최선을 다해 표현하고 있다. 주어진 자유 앞에 무서움과 책임감을 느낀다. 그래서 누가 시키지 않아도 4명은 모두 회의 시간에 참여한다. 명색이 '자유'라는 글자를 학교 이름으로 선택한 학교인데 자유가 무엇인지는 제대로 알고 일을 하고 싶어 회의를 통해 우리는 배우고 또 배운다.

목요일에는 예아트가 진행한 철학 시간에 학생들과 함께 공동체 회의를 제대로 하는 법에 대해 배웠다. 핵심 질문은 '어떻게 하면 서로를 존중하는 소통의 문화를 만들 수 있을까?'였다. 회의의 기본은 대화에서 출발한다고 생각하여 우리는 대화를 망치는 7가지 방법, 회의를 망치는 7가지 방법에 대해 이야기를 나눴다. 망치는 경험의 횟수는 누구보다 많았기 때문에 교사, 학생 가릴 것 없이 신나게 의견을 냈다. 회의 시간에 한 번도 의견을 내본 적이 없다던 화성이 자신의 의견이 채택되어 칠판에 적히는 것을 보고 신이 나서 웃었다. 그것을 보는 우리들도 덩달아 함께 웃었다. 화성이의 웃음 속에서 지난날 나의 졸음이 추억처럼 떠올랐다.


망치는 방법을 뒤집어 보니 존중하는 소통의 문화를 만드는 법이 나왔다. 생각보다 우리가 소통하는 법을 더 많이 알고 있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철학 수업 내내 나는 행복했다. 내가 있는 이곳이 대화를 제대로 하려고 노력하는 장소라는 것이 느껴졌기 때문이다. 회의 시간에 마음 놓고 회의론자가 될 수 있는 곳. 비난이 목적이 아니라 소통을 위해 반론을 제기할 수 있는 곳. 그런 곳을 만들기 위해 우리는 첫 발을 내디뎠다고 생각한다. 교무 회의가 제대로 진행이 되면 내 의견이 채택이 안 되어도 괜찮았다. 학생들과 함께하는 공동체 회의에서도 그런 분위기가 되면 좋겠다. 교사와 학생 모두 똑같은 발언권과 투표권을 가지고 우리만의 길을 잘 찾길 바란다.


금요일 오전은 영어 시간이었다. 나는 나름 준비한 수업 자료들을 학생, 동료 교사들과 함께 나누며 수업을 진행했다. 처음에는 괜찮았는데 점점 내가 준비했던 학습지가 학생들에게 많이 어려웠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수업이 제대로 진행이 되지 않으면 수업 시간에 내가 말하는 분량이 늘어난다. 계속 설명하고 있는 나를 인식하면서 오늘 수업이 망했다는 것을 감지했다. 당황스러웠다. 그리고 수업이 끝난 후 내가 스스로 자책해야 할 시간이 눈에 그려져 이미 힘들었다. 어떻게 수업을 마무리할지를 고민하다 어제 배운 대로 학생들과 솔직하게 소통하는 길을 가지기로 했다.


사람들에게 오늘 수업을 망친 것 같다고 얘기했다. 모두 나의 말에 크게 웃었다. 나도 함께 웃으며 지금 많이 당황스러우니 도움을 달라고 했다. 내가 가진 영어 수업의 목표는 배운 것을 사용하는 시간을 늘리는 것이라 말했다. 지난주 말하기 시간에 배운 표현을 이번 주 영작 시간에 써먹으며 같은 표현을 반복해서 써보는 경험을 갖게 하고 싶었다. 익숙해진 표현이 입에 붙으면 영어에 대한 자신감이 생기지 않을까 싶어서였다. 오늘 수업이 실패하긴 했지만 의도는 그랬다고 말을 했다. 그리고 오늘 수업에서 불편했던 점에 대해 이야기를 해달라고 했다.


나의 당황스러움이 진심이라 여겼는지 학생들과 동료 교사들도 솔직해지기 시작했다. 학습지 난이도 자체가 어렵고 양도 많았다는 의견이 나왔다. 혼자보다는 모둠으로 하면 도움을 받을 수 있어 덜 부담스러웠을 것 같다는 말도 했다. 내가 선택한 음악보다 좀 더 신나는 음악을 사용했으면 좋겠다고도 했다. 당황하는 나를 위로해 주는 마음, 좀 더 솔직하게 말하려고 노력하는 마음, 이런 말을 해도 되나 싶어 눈치 보다가 툭 내뱉는 마음이 그대로 느껴졌다. 나의 당황스러움은 영어 시간에 갑자기 시작한 작은 공동체 회의를 통해 길을 찾기 시작했다. 수업을 끝내며 고맙다고 말했다. 수업을 망친 교사가 미안함보다 고마움을 더 크게 느낄 수 있는 학교보다 더 행복한 곳이 있을까.

철학 시간에 키워드를 주고 그림을 그려 조원들이 맞추는 게임을 했었다. 그림을 보는 순간 모두 "자유학교!!"라고 외쳤는데 답이 아니었다. 계속 답을 찾았지만 아무리 봐도 자유학교 건물과 운동장 같아 답을 찾지 못하고 헤맸다. 정답이 "좋은 학교"란 말에 다들 그림을 그렸던 보름이를 쳐다보았다. 보름이에게 자유학교가 좋은 학교라는 고백을 듣는 듯했다. 사람들의 반응에 머쓱한지 씨익 웃는 모습에서 감사함과 기쁨을 느꼈다. 좋은 학교란 보름이가 그린 그림처럼, 어떤 상황에서도 서로를 보며 웃을 수 있는 곳이 아닐까. 실패를 해도 괜찮고 답을 못 맞혀도 괜찮은 곳이 자유학교다. 학생도 교사도 모두가 행복할 수 있는 건 모두가 서로에게 고마워하기 때문이라 생각한다. 서로가 서로에게 귀할 수 있어서 다행이다. 주말을 앞두고 몰려드는 피로함이 뿌듯하기도 하다. 다음 영어 수업은 좀 더 잘 준비를 해봐야겠다. 다음 주 주말은 오늘과 다르게 뿌듯했으면 좋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