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생 2막의 시작
“엄마! 엄마!”
나는 엄마 차가 절을 빠져 나가는 것을 보며 갑자기 앞이 하얘졌어. 그리고 정신없이 뛰기 시작했지. 분명 서행하는 듯한데 뛰어도 뛰어도 차는 나보다 더 빨랐어. 엄마가 준 무거운 먹거리 보따리가 차를 따라가는데 성가셨어. 점점 숨은 가빠오고 마음은 급해졌지. 나는 보따리를 길가에 내팽개쳤어. 그래도 바람을 타고 가는 내 목소리보다 엄마 차는 더 빨라 닿지 않더라. 눈물 콧물이 다 나왔어. 못 잡으면 어쩌는지 하는 생각만 들었던 것 같아. 결국 생각대로 엄마 차는 내 시야에서 사라졌지. 왜 말도 안 하고 가냐고 따지고 싶은데 내 말을 들을 사람이 없었어.
나는 제정신이 아니었어. 다시 절 쪽으로 뛰었어. 버렸던 보따리도 다시 들고 종무소로 가서 맡겨둔 핸드폰을 잠시 사용하겠다고 했지. 폰을 켜자마자 아빠에게 전화를 걸었어. 안 받으실 줄은 알았지만 진짜 안 받으시더라고. 이번에는 엄마한테 전화를 걸었어. 그리고 받는 신호음이 들리자마자 나는 왜 말도 안 하고 갔냐며 냅다 울면서 말했지. 분명히 엄마는 헤어지기 전 좀 있다 갈 테니 먼저 들어가라고 말했는데도 말이야. 원망하는 말을 내뱉으면서도 엄마가 전화를 받아서 얼마나 고마웠는지 몰라. 할 말도 없으면서 나는 굳이 굳이 다시 엄마 차를 세워 얼굴을 보고 싶었어.
교사를 그만두겠다는 나를 말리러 부모님이 절에 오셨어. 이미 사표를 낸 걸 모르시는 터라 어떻게 말씀드려야 할지 난감했지만 언젠가는 부딪쳐야 할 시간이니 천천히 이야기해 보자 싶었지. 같이 오셨지만 두 분 마음은 다른 듯했어. 아빠는 딸을 보호하려고 엄마는 뭐든 괜찮다고 말하려고 오신 거더라고. 어렵게 들어간 직장을 그만두고 다시 험한 세상에 나오려는 나를 두고 아빤 달래기도 하고 협박도 하셨어. 그리고 이야기 끝에 사표를 말하니 힘이 빠지는지 더는 말씀이 없으셨지. 1년만 두고 봐 달라는 내 마지막 말에도 아빤 미동이 없었어.
뒤돌아서는 부모님의 얼굴은 너무 지쳐 보였어. 부모는 뭐고 자식은 뭘까. 천천히 차로 돌아가는 모습을 보며 그 생각을 했어. 3시간 운전이 걱정됐지만 나는 걱정할 수 있는 자격도 없는 듯했지. 먼저 들어가라는 엄마의 말에 잠시 종무소에 들어갔다 나왔는데 그사이에 차가 절 마당을 빠져나가려 하더라고. 그때부터 엄마 차를 따라갔다가 다시 돌아와 전화를 걸고 끊을 때까지 잠시 제정신이 아니었던 것 같아. 전화를 할 수 없었다면 둘 곳 없는 마음을 잡는데 시간이 더 걸렸을 거야. 목소리라도 들을 수 있어서 다행이었어.
그 뒤로도 멈추지 않는 차를 따라가던 그때를 떠올리기만 하면 눈물이 났어. 헤어진다는 건 이런 거구나 싶었거든. 내가 어쩔 수 없는 차 속도가 마치 세월의 흐름 같았어. 잡을 수 없는 건 움켜쥘수록 괴롭다고 분명히 부처님이 말씀해 주셨는데도 어리석은 나는 갖고 싶어 애를 쓰고 있었지. 직장을 그만둔 것에 대한 미련은 하나도 없었어. 내 결정에 실망한 부모님의 마음도 이해는 됐어. 나는 단지 이 일로 엄마 아빠의 몸이 조금이라도 상하는 게 싫었던 것 같아. 나로 인해 피로해하는 모습은 움켜쥔 내 손아귀에 힘을 더 주게 했어. 나는 아직 힘 빼는 법을 모르는구나 싶더라.
한겨울인데도 봄날 같은 날씨가 이어졌어. 나는 여전히 엄마 차가 빠져나간 길목을 보며 울먹이고 있었지. 3개월 동안 템플스테이를 하고 있었는데 마치 오늘 처음 보는 길 같더라고. 지나가는 보살님이 따뜻해서 참 좋다는 말을 해주시는 걸 듣고서야 고개를 들었어. 정신 차리고 주변을 한번 돌아보란 뜻으로 들렸거든. 구름 한 점 없는 하늘에 따뜻한 공기가 내 귓가를 살랑거리고 있었어. 내가 느끼는 슬픔과 너무 달라 괴리감이 들었지. 그때 알았어. 내가 망상을 붙들고 슬퍼하고 있다는 걸 말이야. 나는 아무와도 헤어지지 않았고 겨우내 기다리고 기다렸던 따뜻한 햇볕이 내리쬐고 있는 날이었어. 비록 부모님의 걱정은 여전하겠지만 그건 다시 열심히 사는 모습으로 풀어드리면 될 일이었고. 그제야 우습고도 허탈한 내 모습이 멋쩍어 혼자서 주고 있던 힘을 몸에서 풀었어.
절에 있으면서 새로 시작할 삶을 설계하느라 한 해 흘릴 눈물은 다 흘린 듯해. 정작 현실은 절에서 고요하게 지내면서 말이야. 움직이지 않고도 생각만으로 천당과 지옥을 오고 갈 수 있음을 알겠어. 그래서 사람들이 지금 현실을 직시하는 게 중요하다고 말하는 건가 봐. 평화로워 보이는 산 아랫마을에도 사람이 살겠지. 어쩌면 그 사람도 산을 올려보며 내가 있는 이곳을 궁금해할지도 모르겠네. 우리 서로 사는 곳에 궁금해하지 말고 각자 주어진 현실에 집중하며 살자. 나는 집에 잘 도착했다는 엄마의 목소리를 들은 후 마지막 남은 걱정까지 다 털어버렸어. 아직 절에서 지낼 시간이 남았으니 사표의 파급효과는 미리 생각 말고 지금부터라도 오직 오늘만 생각하며 지낼 거야. 그게 내가 앞으로 살아갈 길이란 걸 잊지 말자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