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바심
도로에 차들이 꽉 차 있었어. 신호만 바뀌길 바라며 잠시 숨 고르기를 하는 듯했지. 얼마 전까지 나도 저 속에 있었는데…. 익숙한 출근길은 집 안에 있는 나와의 거리만큼 낯설더라고. 가만히 앉아 있을 게 아니라 뭐라도 해야 할 것 같은 생각이 들었어. 괜히 시계를 쳐다봤지. 오전 9시. 주방으로 가 고구마 하나를 집어 들었어. 그리고 묵직한 것을 입안 가득 넣고 목구멍으로 무사히 넘어갈 때까지 쉬지 않고 오물거렸던 것 같아. 급할 게 없어 급해진 마음은 다행히 고구마를 넘기는 동안 힘이 빠졌어. 급한 불은 껐다 싶더라.
가만히 있는 게 제일 힘든 거였어. 스스로 결정한 퇴직이었지만 다들 바쁘게 움직이는데 홀로 멈춰 있으려니 순간 흔들리더라고. 어쩌다 주중에 쉬는 날이 생기면 주말에 쉬는 것보다 더 신이 나곤 했는데 퇴직 후 느끼는 감정은 좀 달랐어. 조바심이 났지. 다른 건 차치하더라도 매일 가야 할 곳이 없는 건 매달 들어오던 월급이 끊긴다는 뜻이잖아. 돈에 연연하지 않고 내 갈 길을 가기 위해 학교를 나왔는데 지금 나는 가벼워지는 통장을 생각하며 여느 때보다 돈에 집중한 상태야. 우습기도 한데 어쩌겠어. 새로운 삶이 안정될 때까진 다소 우스꽝스러운 모습이 지속되지 않을까 싶어.
끊임없이 경쟁하고 순위를 매기는 사회가 싫었어. 다행히 나는 교직 생활 중 절반 이상을 협동을 강조하는 대안학교에서 근무하며 보냈지. 생기가 없던 학생의 볼에 붉은 끼를 발견하는 경험은 경쟁보다는 협력이 훨씬 더 큰 힘을 가지고 있다는 걸 깨닫게 하는 순간이기도 했어. 새로 근무하게 된 일반계 고등학교에 처음 들어섰을 때 내 눈에 들어온 것은 학교 담벼락에 자랑스럽게 붙어 있는 작년 입시 결과 현수막이었어. 순간, 다시 과거로 돌아온 듯한 느낌이 들었지. 먹지도 않은 고구마가 목에 꽉 막혀 있는 듯 답답했어. 그래, 일개 교사일 뿐인 내가 어떻게 저 거대한 경쟁의 굴레를 바꾸겠어. 내 생각이 다 맞는 것도 아니고 말이야. 대안학교에서 지냈던 7년이란 시간이 주마등처럼 스쳐 지나갔어. 그리고 천천히 밀려오는 좌절감을 받아들였던 것 같아.
다행히 대안학교에서 근무한 짬밥은 내 삶을 바꿀 용기 정도는 됐어. 아무리 생각해도 그 현수막은 나와 맞질 않더라고. 다행히 아귀가 맞지 않는 곳에서 몸을 축내며 살아내야 할 어떤 이유도 내겐 없었어. 그래서 한 달에 100만 원 정도만 벌면 살 수 있겠다는 결론을 낸 후 바로 사표를 썼지. 사표가 수리된 날, 끝났다는 현실감과 앞날에 대한 떨림이 뒤섞여 마음이 차분해지질 않더라. 나는 집 근처 복국집에 들어가 무작정 제일 비싼 메뉴를 시켰어. 그리고 지금 나의 허세가 복어가 몸을 부풀려 크게 보이려 하는 행위와 닮았구나 생각하며 밥을 먹었지. 맛있게 잘 먹었다고 주인에게 말한 게 홀로 진행한 퇴임식의 끝이었어.
사표에는 현실을 받아들이되, 따라가진 않겠다는 의미를 담았어. 지난 7년 간 대안학교에서 했던 교육이 뜬 구름 잡는 것만은 아니라는 걸 수료했던 학생들의 눈빛에서 확인했으니까 말이야. 다시 그 눈빛을 볼 수 있을까. 그런 행운이 다시 올까. 나는 매 순간 학생과 함께 흔들리는 교사였어. 처음에는 약한 내 모습에 자괴감이 들었었는데 시간이 지나며 학생과 같이 뒹굴며 성장하는 교사도 한 명쯤 있어야 하지 않을까 싶더라고. 조금씩 교실에 있는 모든 사람을 세상을 같이 배우는 동료로 여기기 시작했어. 덕분에 학생에게 내 모자란 모습을 보이는 건 어렵지 않았지. 학교에서 많이 웃고 울었어. 교사를 그만두며 잘 놀다 간다고 말할 수 있어 다행이야.
인생이 재미있는 건 늘 반전이 숨어 있기 때문이라 생각해. 야심 차게 학교를 나오긴 했는데 초짜 퇴직자인지라 내게 생긴 빈 시간이 불안해 조바심이 생기네. 3월은 개학하고 제일 바빴던 기억이 있어 더 그런가 봐. 며칠 동안 한 달에 100만 원은 벌어야 하는데 싶어 돈!, 돈! 돈! 거리다가 애꿎은 몸에 감기만 들었어. 질질 흐르는 콧물을 닦으며 현실과 이상의 차이를 더 실감했지. 넘어진 김에 쉬어가랬다고 이왕 아플 거 조바심까지 내려놓자고 마음먹고선 오늘 아침도 출근길 차들을 보며 혼자서 난리야. 내가 꿈꾸던 멋진 모습은 아니지만 그래도 받아들이며 지내야지 어쩌겠어. 허허벌판에 내가 서 있어. 흔들리는 건 내 전공이니 어느 정도의 조바심은 인정해 주자고.
다가오는 봄에 맞춰 몸도 마음도 살아날 거라 믿어. 홀로 집에 있는 떨림 속에는 불안함과는 별개로 설렘도 들어 있으니까. 교사로 근무하며 수많은 말을 했었어. 이제부터는 스스로를 스승으로 삶고 제자의 마음으로 살아보려 해. 말수를 줄였더라면 지금 내가 지켜야 할 게 적어 편했을 텐데 아쉽게도 뱉어만 놓은 말들이 수두룩하네. 늦었지만 지금이라도 하나씩 정리를 해봐야겠어. 남 눈치 대신 내 눈치 보며 살기로 한 삶에 이보다 더 좋은 기준은 없을 거 같으니 말이야. 복국도 먹었으니 교사였던 나의 지난날에 힘을 실어 주기 위해, 그리고 뒤가 아니라 앞으로 나아가기 위해 일단 시작하고 보자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