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불가사리 Jan 03. 2022

"어쩌다
그렇게 됐는지는 모르겠지만"

- 삶의 질을 좌우하는 잠자리 개편 

올해 시작된 아이의 유치원 거부를 의논하러 간 상담 센터에서 나는 잠시 해명의 시간을 가졌다. 여섯 살 아이와 아빠가 함께 자고, 엄마인 나는 혼자 잔다는 말에 상담 선생님은 '어쩌다' 그렇게 됐는지를 물었고, 총 세 번의 ‘어쩌다’에 당황한 나는 그게 그러니까... 


아이의 작은 뒤척임에도 벌떡벌떡 깨는 데다가 남편은 코를 심하게 골아서 제가 밤새 제대로 잘 수가 없어요. 다행히 아이는 아빠 코 고는 소리에도 잘 자고, 아빠도 아이의 뒤척임에 민감하지 않아서 지금이 꿀 조합이에요. 집에 방이 3개니까 각자 하나씩 차지하면 좋겠지만 아이가 혼자 자는 걸 무서워하거든요. 


상담 선생님은 힘드셨겠어요. 그건 그렇죠. 아... 어머님, 그래도 아이에게는 엄마와 아빠의 이미지가 중요해요. 한 방에서 나오는 이미지. 아... 나는 이야기가 너무 길어질 것 같아서 부모의 관계가 좋아야 아이가 안정감을 가진다 정도로 이해하며 네, 그래야죠, 얼른 마무리했다. 하지만 아이가 잠자리 독립을 해도 우리 부부가 일상적으로 아침에 한 방에서 나오는 일은 없을 것이다. 




우리도 신혼 때는 꼭 붙어서 잤다. 영화에서 보면 남녀가 한 침대에서 하얀 이불속에 파묻힌 채 곱게 자다가 아침 햇살에 마주 보고 뽀얗게 웃는데, 그러니 멜로드라마지. 현실은 스릴러에 가깝다. 나와 함께 자는 사람의 코 고는 소리는 어마무시하다. 드르르렁 시동을 걸며 마음껏 질주하다 갑자기 컥! 브레이크를 밟는다. 정.적. 고.요. 번쩍 잠에서 깬 나는 어둠 속 그의 얼굴에 점점 다가간다. 설마... 긴장하는 순간, 푸~~~~ 나도 덩달아 숨을 내뱉으며 안심. 언젠가 남편에게 연애 때는 드르렁렁 적당했는데, 왜 변했냐고 묻자 그는 가만히 말했다. 당신의 청력이 변했거나 마음이 변했거나. 임신했을 때는 진짜 청력이 예민해졌다. 몸도 불편한데, 옆에서 생사를 오가니 그가 일어나는 새벽 5시만 기다렸다. 출근하는 소리를 들으며 그제야 깊은 잠에 빠져들었다. 그러면서도 우리는 한 침대를 고집했다. 이불을 다리 사이에 끼우고 자는 나 때문에 그도 불편했는데 말이다. 생각해보면 정말 이상하다. 대체 누가, 언제부터 정한 룰인 걸까? 엄마와 아빠도, 할머니랑 할아버지도 그랬으니까. 싸워도 한 이불을 덮고 자야 한다는 고리타분한 옛날 말씀이 몸에 베여 있었던 걸까. 


그런데 아이가 태어났고, 잠자리 개편은 의외로 쉽게 일어났다. 수시로 깨고, 울고, 먹고 하니까 출근하는 사람이라도 편히 자라고 배우자를 다른 방에 배치하고 두 해가 흘렀다. 신생아 시기의 외롭고 어두운 방. 모유수유 자세 잡는 데만 한참, 아기 트림시키는데도 한참, 눕혀 재우려다 보면 응가, 잔해를 치우고 나도 침대에 누울라치면 다음 수유 시간 알람이 띠릴릴리. 통잠을 자기 시작한 무렵에는 아토피 때문에 밤새 긁는 아이 손을 붙잡고 꾸벅꾸벅하다 보면 해가 떴다. 그런 밤을 거치며 정작 내 몸은 통잠의 개념을 잊었고, 아이가 손의 위치만 바꿔도 눈을 번쩍 뜨는 사람이 됐다. 낮에도 신경이 곤두섰고, 누가 내 몸을 스치는 것에도 민감하게 반응했다. 한동안 낮잠으로 시간을 낭비하는 나를 탓하며 우울해했는데, 돌이켜보니 밤잠을 제대로 자지 못했으니 몸이 살려고 그랬나 싶다. 


그러니까 아이가 아빠와 잠을 자게 된 계기는 내가 너무나 날카로워져서였다. 한 시간째 아이를 재우다 화를 내며 문을 박차고 나와 나는 이제 못해, 고함을 치던 날. 엄마와 자겠다고 우는 아이에게 엄마는 어두워지면 운동을 해야 한다며 밖으로 뛰쳐나갔다. 열흘쯤 지나니까 아이는 엄마 밤 운동 잘하라며 아빠 겨드랑이 속으로 쏘옥 들어갔다. 잠 좀 편하게 자고 싶다는 강력한 욕구의 해소. 그런데 문제가 생겼다. 혼자 자면서도 여전히 잠을 깨는 거였다. 뭐가 문제인가, 이런저런 이야기 끝에 내가 가장 잠의 질이 떨어진 시절을 보낸 곳이 집에서 가장 큰, 안방이니까 공간을 바꿔보기로 했다. 젤 작은 방으로 침대를 옮겼다. 그러고 보니 결혼 전에 혼자 살던 좁고 아늑했던 내 방과 비슷했다. 협탁과 침대만으로 꽉 차고 누워서 책 보다가 졸리면 스르륵 잠들 수 있는 방. 그 밤, 나는 드디어 한 번도 깨지 않는 잠에 성공했다.  


해놓고 보니 별 것 아닌 공간의 이동과 혼자만의 밤은 내 일상의 질을 말할 수 없이 높여줬다. 이 시스템이 완전 정착한 지 일 년이 지났다. 추위를 많이 타는 나와 달리 더위를 많이 타는 아이와 나보다 추위를 덜 타는 배우자는 겨울에도 얇은 이불을 덮고 잘 수 있다. 보일러 온도도 각자 알맞게 조절한다. 평일에 아이와 놀 시간이 없는 배우자는 밤 시간을 이용해 아이와 친해질 수 있어 만족했다. 단점도 있다. 아이가 자면서 자꾸 밀어붙이니까 몸이 새우 모양으로 구부러져 허리가 아프다는 거다. 아이 침대를 마련해서 한방에서 자더라도 잠자리를 분리하자는 의견이 나왔다. 아이는 아빠와 꼭 붙어 자겠다고 반대했다. 잠을 위한 가족의 대책 회의는 아직 끝나지 않았고, 몹시 진지하다. 




여기까지가 상담센터에서는 너무 길어서 얼버무린 ‘어쩌다가’에 대한 답이다. 우리 아이에게 엄마 아빠가 한방에서 나오는 이미지는 없을 것이다. 대신 어떻게, 누구와, 어디서 잠자는 게 가장 편한지, 각자의 취향을 이상할 만큼 열정적으로 묻고 답하며 다투기도 하는 엄마 아빠를 떠올릴지도 모르겠다. 





매거진의 이전글 임시방편 이교대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