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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불가사리 Jan 01. 2022

임시방편 이교대

- 시야를 좁게. 낮게. 지금 당장, 하루만 잘 살기

지난여름 시작된 농가진과 습진으로 아이는 한동안 유치원을 가지 못했다. 항생제를 보름 넘게 먹이고, 염증 심한 다리에는 연고와 스테로이드 로션을 바른 뒤 젖은 붕대로 둘둘 감아 그 위에 팔 토시를 끼워놓았다. 하루 세 번 바르고 감고 할 때마다 아이는 만지고 버둥거리고 탭댄스를 췄고, 나는 호통치고 협박하고 한숨을 내쉬었다. 알레르기 검사를 했는데, 보통 알레르기 있는 아이가 60이라면 아이는 2500 정도라고 했다. 피부가 굉장히 예민하게 반응한다는 것이다. 집 먼지, 진드기에 특히 민감하니 집에 있는 카펫, 담요, 패브릭은 몽땅 버리고, 이불은 매주 뜨거운 물로 삶고, 청소기는 아이 없을 때 돌리고, 물걸레질을 수시로 하라고 했다. 눈 떠서 해 지기 전까지 함께 있으며 삼시세끼 밥에 수시로 간식에 주구장창 놀아주는 것도 벅찬데, 집안일에 더 신경 써야 한다니 숨이 헉 막혔다. 어디 하소연할 데는 없고 회사에 있을 배우자에게 톡으로 쏟아냈다. 그리고 이번 주도 유치원은 못 간다는 말도. 등원하지 않은지 곧, 한 달이다.




유치원에 가지 않는다는 건 나의 퇴근이 없음을 의미한다. 1초도 혼자 있을 수 없음은 호흡곤란, 소화불량, 상시 짜증 대기 상태가 지속된다는 건데, 어떤 일도 어떤 사람도 퇴근이 없거나 혼자만의 시간이 없을 때 따라오는 필연적 증상이다. 아이와 함께 하는 틈새에 내 시간을 탐해보려고도 했다. 책을 들여다보거나 글을 끄적이는 시도들은 아이가 책을 구기거나 내 팔을 잡아끌고 노트북 자판을 아무렇게나 두들기는 것으로 대기 중인 짜증을 폭발시켰다. 


너 왜 이렇게 이기적이야? 엄마도 할 거 좀 하자, 이기적이 뭐야?, 자기만 생각하는 거지 지금 너처럼!, 자기만? 잠자는 거? 종착지는 삼천포다.


얼마 전까지만 해도 코로나 육아가 최고 난이도 육아라고 떠들고 다녔는데, 역시 장담은 하지 말아야 한다. 최고봉은 코로나 시대이자 한여름에 땀나면 안 되는, 신경이 예민해진, 피부 질환 있는 아이를 돌보는 것일지도 모르겠다. 그것 역시 섣불리 단정 지을 수는 없겠지만 내가 미치지 않기 위해 어떤 해결책이 필요한 것만은 확실했다. 우리 부부는 서로를 달래고 다투고 다투다 드디어 해결책을 찾았다. 배우자는 이교대를 제안했다. 퇴근한 그와 저녁을 먹고, 숟가락을 놓음과 동시에 나는 튀어나간다. 교대 시간 오후 7시 30분. 나는 집 밖에서 혼자만의 일을 하고, 배우자는 집에서 설거지, 집 정리, 아이 씻기고 약 먹이고 바르고 재우기를 맡는다.


첫날은 아이 약 복용량과 시간을 헷갈릴까 봐, 해야 할 일의 순서를 잊을까 봐 냉장고 문에 덕지덕지 메모를 붙이고. 배우자에게 잔소리하고, 어쩌고 저쩌고 해대느라 나는 정해진 시간에 집을 떠나질 못했다. 다음날은 결심했다. 그냥 나가자. 나 아니면 안 된다는 몹쓸 자만심 혹은 노예근성을 버리자. 아이의 아빠도 실수하면서 방법을 찾아가겠지. 내가 그래 온 것처럼. 울고불고 매달리는 아이도 -4일째부터는 웃으며 안녕했다- 엉망진창인 집안과 산더미 설거지도 쳐다보지 말자. 뒤도 돌아보지 말자.




교대와 동시에 집과 연결된 모든 걱정과 불안의 전원 스위치는 off, 집 밖으로 나오자마자 30분 걷기로 모드 전환 끝. 이어서 굉장히 밀도 높은 시간을 보낸다. 책을 읽고, 줌으로 짧은 회의를 하고, 이렇게 글도 쓰며 여러 버전의 온전한 내가 시간을 쪼개어 나눠가진다. 어쩔 수 없는 상황으로 만들어진 서너 시간은 의외로 집중도가 높았다. 감성이나 피로가 아닌 에너지를 얻는, 어둠이 내린 시간의 재발견. 아이가 등원하고 생기는 낮 시간보다 효율적이었다. 낮에는 설거지, 빨래 더미가 눈에 보이고 돌아올 아이의 간식 준비 등을 의지만으로 외면하기 쉽지 않았고, 나도 밥을 먹어야 하니까 차리고, 먹으면 또 설거지가 생겼다. 반면 저녁 시간은 챙겨야 할 내 몫의 밥도, 집안일이나 육아도 오늘 중에는 없을 예정이기에 다른 일에 발목 잡히지 않았다.


12시 무렵 돌아오면 아이의 숨소리만 들리는 집은 너그럽고 고요한 밤이다. 아이를 재우다 한숨 자고 일어난 배우자와 10분 정도 아이의 상태, 귀여움을 2배속으로 공유한다. 많은 도움이 필요한 한 생명과 살아가기 위해, 나를 잃지 않기 위해, 고군분투하는 중에 가장 뒷전은 우리 두 사람이 서로의 관심사와 감정을 나눌 시간이다. 이건 또 어떻게 해결해야 할까? 우리는 일단, 둘의 관계고 뭐고 간에 각자 살고 보자는 쪽으로 의견을 모았다.




이교대는 열흘째 계속되고 있다. 충분히 만족스럽지만 당장 내일부터는 불가능할 수도 있음을 잊지 않는 게 6년 육아인의 노하우라면 노하우다. 그 시간에 무슨 일이 일어날지 모르며 나 또는 배우자는 더 많은 시간이 필요할 수도 있다. 하지만 지금이 가장 힘든 시기야.라고 말하기가 무섭게 돌발 상황과 변수로 더 힘든 시기를 선사하는 영유아기 육아인의 삶을 살기 위해서는 시야를 좁게. 낮게. 지금 당장, 하루만 잘 살아갈 방법을 찾아서 어서 행동으로 옮기는 게 중요하다. 계획대로 되지 않는 게 계획의 기본 값이라는 걸 인정하고, 당장 조금 더 나은 방향으로. 오늘 하루만 날인 것처럼.


어제 다음날을 생각하지 않고 자정을 넘긴 탓에 졸음이 밀려온다. 그럼에도 한 치 앞도 몰라 어찌할 바를 모르는 육아인이 있다면 이 순간만 때우는 임시방편의 삶을 슬그머니 들이밀어 본다.




(※ 겨울, 아이는 유치원에 다니고 있고 하루 이교대는 끝이 났다. 겨울방학인 지금은 평일과 주말 이교대로 또 다른 임시방편의 삶을 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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