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연히 한 시골 양조장 막걸리를 맛 본 나는 집에서 직접 가양주를 만들 시도를 한다.
그걸 옆에서 지켜본 아내의 시선으로 글을 써본다.
그녀석은 막걸리를 좋아한다.
어느 날 퇴근하고 오더니 느닷없이 막걸리를 직접 빚어보겠단다. 사실 처음에는 콧방귀도 안나왔다.
"또 무슨 새로운 취미가 생긴거야??" 하고 흘려 들었는데, 그녀석의 눈빛은 그 어느때보다 진지했다.
그녀석은 인터넷을 뒤지고, 도서관이랑 서점에서 막걸리 관련 책들을 읽더니, 급기야 주말엔 경기도 이천에 있는 도자기를 굽는 곳까지 다녀왔다.
"막걸리는 장독에 담아야 제맛” 이라며!
며칠 밤낮을 장독 타령을 하더니, 결국 새하얀 신혼집 주방 분위기와는 전혀 어울리지 않는, 큼지막하고 묵직한 황토색 장독 하나를 떡하니 사왔다. 마루 한 가운데 놓인 장독을 보며 나는 한숨만 나왔다. 저걸 어디다 둬야 할지, 당장 고민부터 시작됐다. 그녀석은 아랑곳 않고 보물단지라도 얻은 양 소중히 다루는 모습이 어찌나 한심하고 기가 막히던지.
그 장독을 그냥 쓰는게 아니라 씻고 말리는 과정을 거치는데 생각보다 힘이 들었다. 햇볕 좋은 날이라며 멀쩡한 거실 한가운데에 장독을 내놓고 이틀 내내 소독을 한다며 물을 붓고 말리기를 반복했다. 먼지 한 톨이라도 들어갈까 노심초사하며 깨끗한 천으로 닦아내는 뒷모습을 나는 그저 어이없이 바라만 보았다. 이게 저렇게까지 할 일인가 싶으면서도, 한편으로는 저 열정이 다른 곳에 쓰였으면 얼마나 좋을까 하는 헛된 상상도 해봤다. 장독 준비는 거기서 끝이 아니었다. 안을 소독해야 한다며 소주를 붓고 장독 안을 천으로 깨끗이 닦았다. 온 집안에 소주 냄새가 가득했다.
장독 준비가 끝나자, 이번엔 누룩과 쌀에 대한 강박적인 집착이 시작됐다.
"좋은 누룩이 막걸리 맛을 좌우한다"며 인터넷 커뮤니티를 밤새 뒤지더니, 결국, 전통방식으로 만든다는 누룩을 어렵게 공수해 왔는데, 인쇄가 잘된 깨끗한 비닐포장에 누룩은 담겨 있었고 아무리 봐도 공장에서 만든 느낌이 나는 누룩이었지만, 우려했던 것과 달리 ‘Made in China”는 아닌 것 같았다. 큼지막한 누룩덩어리를 보자마자 그녀석은 아이처럼 좋아했다.
쌀도 마찬가지였다.
"막걸리는 찹쌀로 빚어야 부드럽고 맛있다"며 최고급 찹쌀을 고집했다. 마트 쌀코너에서 점원 아저씨와 한참을 막걸리 쌀에 대해 논하는 그녀석을 보며, 나는 그저 멀리 떨어져 다른 물건을 고르는 척 하고 있었다. 우리집 밥상에 오르는 쌀보다 더 귀하게 대접받는 막걸리 쌀이라니! 저런데 돈을 쓸 바에는 옷이나 하나 더 사라고 하고 싶었다.
드디어 막걸리 빚는 대망의 날이 밝았다. 이사를 가는 것도 아닌데 손 없는 날을 고르고 있는 그녀석을 보며 막걸리 회사도 손 없는 날만 만드는지 물어보라고 하고 싶었지만 이미 반쯤 광기어린 눈을 보고 그냥 참았다. 막걸리 빚기 전날 누룩을 잘게 부수어야 한다며 절구에 넣고 빻고 있었다. 티비를 보면서 쿵쿵 절구를 내려치다 결국엔 아랫집에서 연락이 와서 절구질은 멈추었다. 아래집에다가 누룩을 부수고 있다고는 차마 말을 할 수가 없어 가구를 조립하고 있다고 거짓말을 했다. 내가 왜 거짓말을 해야 하는지 모르겠다.
그녀석은 새벽부터 일어나 찹쌀을 깨끗하게 씻었다. 뽀얀 쌀알을 손으로 조물조물 만지며 불순물을 걸러내는 모습이 마치 무슨 의식이라도 치르는듯 경건해 보였다. 물에 불린 찹쌀은 통통하고 하얗게 되었다. 저녁에는 고두밥을 찐다며 찜통을 꺼내 들었는데, 부엌은 금세 뜨거운 김으로 가득 찼다. 찜통에서 김이 모락모락 피어 오르고, 밥냄새가 온 집안에 퍼지자 나도 모르게 배가 고파졌다. 잘 익은 고두밥을 넓은 쟁반에 펼쳐 식히는 그녀석의 뒷모습은 그 어느때보다 진지해 보였다. 밥알 하나하나가 서로 붙지 않도록 정성껏 펼쳐 식히는 모습을 보며, 쓸데없는 것에 꼼꼼한 모습에 의아했다. 물론, 그 꼼꼼함이 제발 다른 곳에도 좀 발휘되기를 바랐지만. 그날 이후 여태껏 본 적은 없는 것 같다.
고두밥이 적당히 식자, 그녀석은 누룩과 물을 가져왔다. 누룩을 고두밥에 솔솔 뿌리고, 깨끗한 물을 부어가며 손으로 버무리기 시작했다. 끈적거리는 밥알과 누룩이 뒤섞이는 감촉이 묘한지, 그녀석은 연신 "오호, 부드러워!" 하며 감탄사를 내뱉았다. 나는 옆에서 혹시라도 이물질이 들어갈까, 아니면 그녀석의 이상한 취미에 괜히 내가 오염될까 싶어 최대한 거리를 두고 지켜봤다. 마침내 모든 재료가 잘 섞이자, 그녀석은 소중히 다루던 그 장독에 누룩을 버무린 고두밥을 넣고 물을 담았다.
이제 문제는 장독을 어디에 두느냐 였다. 그녀석은 막걸리는 발효 온도가 정말 중요하다며 집 안에서 "가장 따뜻하고 온도가 일정하게 유지되는 곳”을 찾아야 한다고 했다. 집안을 이리저리 돌아다니며 온도를 재더니, 결국 내 의견 따위는 안중에도 없이 안방 한구석에 장독을 놓겠다고 선언했다. 나는 기가 막혔다. "야, 우리 안방인데... 우리 침실에 저 큼지막한 장독을 놓겠다는 거야?"
아무리 반대해도 소용없었다. 그녀석은
"이 겨울에 막걸리가 잘 익으려면 어쩔 수 없어! 너 때문에 안방은 항상 따뜻하니까"
라며 이미 장독을 안방으로 옮기고 있었다. 내 새하얀 침대 옆에 떡하니 자리잡은 황토색 장독이라니! 퇴근하고 지친 몸으로 들어온 안방에서 시큼한 발효냄새를 맡아야 한다니, 생각만해도 한숨이 절로 나왔다. 하지만 그녀석은 아랑곳 않고 장독뚜껑을 닫고는 흐뭇하게 바라보고 있었고 얼굴에는 뿌듯함이 가득했다. 벌써부터 달큰한 술향기가 나는 것 같다고 혼자 중얼거리는 모습이 영락없는 알콜 중독자 같았다.
그날이후, 우리집은 양조장이 되었다. 특히 안방은 그녀석의 '발효실'이 되어버렸다. 그녀석은 매일 아침저녁으로 장독 뚜껑을 열어 막걸리 상태를 확인했다. 처음 며칠은 잠잠하던 장독속에서, 어느 순간부터 뽀글뽀글 기포가 올라오기 시작했다. 그녀석은
"야! 들려? 막걸리가 숨쉬는 소리야! 빗소리 같지 않아?"
하며 나를 불렀다. 시큰둥하게 귀를 기울여보니 정말 미세하게 뽀글거리는 소리가 들리긴 했다. 시큼한 향이 안방 가득 퍼졌고, 그녀석은 그 향을 맡으며 연신
"음~ 잘 익어가고 있어!" 하고 만족해했다.
깨끗한 주걱으로 부드럽게 저어주며 막걸리에게 말을 거는 그녀석의 모습은 회사에서 종종 보던 오타쿠 들과는 또 다른 모습이었다.
"아가, 맛있게 익어다오."
라며 장독을 안고 쓰다듬다가 급기야는 온도를 더 높여야겠다며 장독에 이불을 둘러주었다. 그 이불은 손님용 이불로 사서 아직 한 번도 안 쓴 새 이불인데 말이다. 그녀석이 막걸리에 쏟는 정성은 마치 전생에 이산가족이라도 됐던 것처럼 지극했다. 밤에는 뽀글거리는 소리때문에 잠까지 설칠 지경이었지만, 그녀석은 그 마저도 '낭만적' 이라고 했다.
일주일쯤 지났을까. 발효는 더욱 활발해졌다. 장독뚜껑을 열면 톡 쏘는듯한 시큼한 향과 함께 달콤한 향이 진하게 풍겨왔다. 그녀석은 매일 막걸리의 변화를 관찰하여 일기도 썼다. "오늘은 기포가 더 많이 올라왔어", "향이 더 진해졌어", "색깔이 더 뽀얘졌어" 등등. 그녀석에게 막걸리 빚기는 단순한 취미가 아니라, 살아있는 생명체를 키우는 과정과 같았다. 어느날은 참지 못하고 맛을 보겠다며 작은 국자로 막걸리 원액을 떠서 맛봤다.
"크으~ 아직은 시큼하지만, 단맛이 올라오는게 느껴져!" 하며 감탄사를 연발했다. 나는 옆에서 그저 혀를 차며 지켜만 봤다. 저렇게 좋아하는 걸 보니 내가 말릴 수도 없고.
드디어 대망의 술을 거르는 날이 찾아왔다. 그녀석은 미리 준비해둔 삼베천과 큰 그릇을 꺼냈다. 장독 속 막걸리 원액을 삼베천에 붓고, 두 손으로 꾹꾹 눌러짜기 시작했다. 처음에는 꾸덕한 상태였던 막걸리원액에서 뽀얀 막걸리액이 졸졸졸 흘러내렸다. 그녀석의 얼굴에는 땀방울이 송골송골 맺혔지만, 눈은 반짝였다.
"야, 봐봐! 이 뽀얀 빛깔좀 봐! 이게 그 유명한 피테라에센스야!"
그게 그렇게 좋은 거였으면 조선시대 주모들은 다 피부가 좋았었겠네 라고 하고 싶었지만 참았다.
뽀얗고 고운 빛깔의 막걸리가 그릇에 가득 채워지는 것을 보니, 그래도 색깔은 보기 좋았다. 그동안 그녀석이 쏟아 부은 정성과 노력이 그 막걸리에 고스란히 담겨 있으니 솔직히, 꽤 괜찮아 보였다. 그런데 그게 다였다.
그 녀석이 직접 빚은 첫번째 작품을 맛 보여준다며 뽀얀 막걸리를 한 잔을 나에게 주었다, 은은한 탄산과 함께 달콤하면서도 시큼한 향이 코끝을 간지럽혔다. 그녀석은 잔을 들고 의기양양하게
"자, 내가 빚은 첫 막걸리야!" 하고 외쳤다.
예쁜 색에 나도 기대감을 안고 한 모금 마셨다.
그런데, 혀끝에 닿는 순간, 나는 인상을 찌푸렸다. 이건 막걸리가 아니었다. 코를 찌르는 시큼함에 눈이 절로 찌푸려졌다. 순간, 그녀석의 얼굴을 보니 당황한 기색이 역력했다.
"어...? 왜 이렇게 시지?" 그녀석은 몇 번을 다시 맛보더니 결국 고개를 떨궜다. 이건 술이 아니라 식초였다. 완벽하게 식초가 되어버린 막걸리 였던 장독을 앞에 두고 그녀석은 망연자실했다.
나는 참고있던 화가 폭발했다.
"야! 이게 뭐야! 이게 막걸리야, 식초야?! 안방까지 장독을 들여놓고 한달내내 냄새 풍기면서 뭐 한거야! 시간낭비, 돈 낭비! 이거 사먹는게 훨씬 싸겠다! 그냥 사서 마셔!"
내 목소리는 평소보다 훨씬 커져 있었다. 그녀석은 아무 말도 못하고 풀이 죽은 채 장독만 노려봤다. 나도 모르게 이 모든 수고와 정성이 식초로 돌아왔다는 사실에 어처구니가 없었고, 무엇보다 온 집안에 퍼진 시큼한 식초냄새를 도저히 견딜 수 없었다.
그렇게 첫번째 막걸리 빚기는 대실패로 끝났다. 나는 그녀석에게 당분간 막걸리 빚는 얘기는 꺼내지도 말라고 으름장을 놓았다. 그녀석은 며칠동안 시무룩해 있었지만, 의지의 한국인 답게 다시 자료를 뒤지기 시작했다. 이번에는 무엇이 문제였는지 분석하고, 발효온도와 시간, 누룩의 양 등을 다시 계산했다. 그러다가 첫번째 실패의 원인을 고두밥 양이 너무 적었기 때문이라고 판단하더니, 이를 해결하겠다며 또 새로운 아이템을 검색하기 시작했다.
며칠 후, 그녀석은 예상치 못한 물건을 들고 왔다.
"이제 이걸로 문제없어!"
그녀석의 손에는 업소용 대형 밥솥이 들려 있었다. 우리집 부엌에 놓기에는 터무니없이 큰, 마치 식당에서나 쓸법한 밥솥이었다. 나는 어이가 없어서 말이 나오지 않았다.
"아니, 야! 저걸 어디다 놓으려고?! 우리집에 식당 차릴거야?"
그녀석은 득의양양하게
"이제 고두밥양은 걱정 없어! 대량으로 만들 수 있으니 발효도 더 잘 될거야!"라고 말했다. 나는 더 이상 아무말도 하지 않았다. 이미 타짜의 아귀 눈빛이 되어 있던 녀석에게 멈출 생각은 없어 보였고 대신 나는 딜을 했다. 다행히 그 딜이 먹혀서 안방 장독은 베란다로 옮겨 놓았다.
대형 밥솥이 들어온 주방은 그야말로 난장판이 되었다.
그리고 얼마 후, 그 녀석은 다시 두번째 막걸리 빚기에 돌입했다. 그런데 이번에는 첫번째보다 덜 신중해 보였다. 계량도 정확하게 안하고 눈대중으로 하고 손 없는 날을 고르지도 않았고 찹쌀보다 저렴한 맵쌀을 사용했다. 식초사건 이후로 재정이 악화된 덕분이었다. 대신 쌀을 오랜 시간 불리고 그 불린 쌀을 대형 밥솥으로 엄청난 양의 고두밥을 찌는데, 그 양이 어마어마 했다. 밥통에서 꺼낸 고두밥을 식히기 위해 이번에는 마루전체에 깨끗한 비닐을 깔고 그 위에 고두밥을 다 펼쳐놓았다. 거실마루가 온통 뽀얀 고두밥으로 뒤덮인 장관을 보며 나는 실소를 터뜨렸다.
"야, 여기가 밥솥이야 마루야? 이제 거실도 못 지나다니겠네!"
그녀석은 땀을 뻘뻘 흘리면서도
"고두밥은 충분히 식혀야 해! 넓게 펼쳐야 빨리 식고 제대로 발효돼!"
라며 나의 이야기를 들은 척도 하지 않았다. 밥냄새가 진동하는 거실을 지나다니기엔 여간 불편한 것이 아니었지만, 장독을 안방에 놓지 않는다고 한 딜이 있어서 일단 참았다. 그렇게 고두밥이 마루를 지배한채 몇 시간을 보내고, 그녀석은 그 엄청난 양의 고두밥에 누룩을 섞었다. 나는 옆에서 아무 말 없이 지켜보기만 했다. 발효 온도가 중요하다며 베란다의 온도를 수시로 체크하며 장독을 베란다와 마루를 옮겨가며 정성을 들였다. 그리고 이번에는 뽀글거리는 소리에 호들갑을 떨지는 않았다 .
그리고 마침내 두번째 거르는 날! 그녀석은 잔뜩 긴장한 얼굴로 막걸리를 걸렀다. 뽀얀 막걸리가 흘러내리는 것을 보며 나도 모르게 숨을 죽였다. 첫번째 실패의 기억이 생생했기에 이번에도 식초가 될까봐 솔직히 걱정됐다. 그녀석은 이번에는 나를 먼저 주지 않고 조심스럽게 한 모금을 먼저 맛봤다. 표정이 굳어지는가 싶더니, 이내 활짝 웃었다.
"오! 맛있어! 성공이야!"
나는 의심의 눈초리를 지우지 않고 한 모금을 맛봤다. 시큼하면서도 달콤하고, 목넘김이 부드러운게 마실만 했다. 은은한 탄산감까지 느껴지는게 시중 막걸리와는 다른 묵직한 향이 느껴졌다.
"진짜네... 이번에는 식초가 아니네!"
그녀석은 어깨를 으쓱하며
"어때? 내가 빚은 막걸리!" 하고 우쭐대기 시작했다.
그래, 칭찬해주자. 그 동안 내 구박 들으면서 그 고생하면서 만든 막걸리인데.
첫번째 실패는 뼈아팠겠지만, 그녀석의 열정 덕분에 특별한 추억과, 예상치 못하게 맛있는 막걸리를 선물 받았다.
그렇게 흐뭇하게 막걸리를 마시던 중, 문득 머릿속으로 계산이 시작됐다. 장독가격, 최고급 찹쌀, 전통 누룩값, 거기에 대형 밥솥까지... 그리고 이 모든 과정에 들어간 그녀석의 시간과 나의 인내심, 그리고 안방과 마루를 내어준 공간 비용까지. 나는 잠시 생각에 잠겼다가 그녀석에게 말했다.
"그런데, 이거 다해서 얼마 들었어?"
그녀석은 말을 흐렸다.
"음... 글쎄? 재료 값은 얼마 안 들었을걸?"
나는 조용히 계산했던 금액을 읊었다.
"장독 XXX원, 누룩 XXX원, 찹쌀 XXX원, 대형 밥솥 XXX원... 다 합치면 족히 XX만원은 넘게 들었네?" 나는 거기에 더해 "게다가 한달 동안 안방냄새, 마루 차지한 고두밥, 내 정신적 고통까지 합치면... 어휴."
그녀석의 얼굴은 점점 굳어갔다. 생각보다 훨씬 큰 금액에 당황한 눈치였다. 나는 마지막결정타를 날렸다.
"그냥 사서 마시는게 훨씬 싸겠다."
그녀석은 반박할 말을 찾지 못하고 그저 씁쓸하게 웃어 보일 뿐이었다. 그래, 비록 금전적인 효율성은 바닥을 쳤지만, 이렇게 직접 빚은 막걸리가 주는 만족감은 돈으로 환산할 수 없는 것이리라. 그래도 다음부터는 예산을 좀 더 고려해 주길 바라는 마음은 어쩔 수 없었다. 그 이후 몇 번 막걸리를 더 담그다가 아이가 태어난 이후 막걸리를 담그지 않고 있다. 가끔은 그때 막걸리 맛이 생각이 난다. 이제 안방의 막걸리 냄새는 더이상 나지 않고, 주방 한 편을 차지했던 대형밥솥은 이미 누군가에게 팔려 나갔지만 한때 마루를 점령했던 고두밥의 기억과 사람대신 장독을 감싼 이불에 그 날들의 흔적은 여전히 남아있다. 그리고 그 장독은 빈 채로 아직 베란다에 자리를 차지하고 있다. 이제 아이와 함께 가벼운 요리를 하고 이것저것 함께 만드는걸 보며 조만간 다시 고두밥을 하고 아이와 함께 장독안에 고두밥을 넣는 그림이 그려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