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라고 써놓고 두바이쫀득와플을 먹었다. 발렌타인데이라고 헬스장에서 초코 묶음을 주길래 그것도 먹었다.
코스트코에서 사 온 무가당 요거트를 네 스푼 크게 떠서 그 안에 냉동블루베리를 1톤 정도 넣고, 바나나 한 줄기, 견과류 2톤, 그레놀라 세 주먹, 시리얼 두 주먹을 넣어서 김장하듯이 무쳤다. 그걸 또 다 먹었다. 요거트만으로는 단백질이 채워질 것 같지 않아서 냉동실에 굴러다니던 닭가슴살을 꺼내 야채와 함께 볶았다. 떡볶이 소스가 좋을 것 같아서 고추장과 된장, 올리고당을 듬뿍 넣어 매콤 짭짤 달달한 닭가슴살 볶음을 만들어냈다. 밥과 함께 다 먹었다.
아, 나 살찌겠다. 생각해 보니까 어제 출출해서 새벽 1시에 후라이드 치킨을 시켜 먹었다. 같이 온 양념들까지 야무지게 찍어 먹었어. 무 정말 맛있었고. 사이드로 새우튀김을 시켰는데 그게 참 별미였다. 잠깐 내가 왜 이러지. 나 살찌면 안 되는데. 내가 왜 이렇게 먹고 있는 거야. 일주일 전에 비해 몸무게가 1.5킬로가 불었다. 아악! 최악!
일주일 전 내 인생 최저 몸무게를 갱신했다. 40.7kg
나팔관 조영술과 용종 제거 수술, 각종 스트레스, 미래에 대한 불안 등등으로 입맛이 없길래 안 먹었더니 이런 결과를 낳았다. 나는 신나 졌다. 아주 아주 옛날부터 내 목표 몸무게는 39kg였단 말이지. 곧 도달 가능하겠어.
절대 이룰 수 없는 영역이라 생각했는데 목적지가 어느새 코 앞에 다가왔다니 나는 다이어트에 박차를 가해야겠다고 생각했다. 오케이. 오늘부터 진짜 먹지 마. 입맛이 없는 게 중요해. 입맛 없애기 프로젝트 시작하자.
입맛을 없애기 위해 공포 영화를 튼다. 아니면 아주 못생긴 사람이 못생긴 짓을 하는 프로그램을 본다. 징그러운 사진을 찾아보고 미스테리한 일화 모음집을 읽는다. 인류애를 잃게 만드는 에피소드에 북마크를 하고, 미래에 대한 비관을 쏟아내는 사람들의 말을 곱씹는다. 지구평평설을 믿는 사람들, 안아키, 뭐만 하면 밑도 끝도 없는 정치 얘기를 끌고 오는 사람, 아무렇지 않게 성희롱 댓글을 쓰는 사람, 내 아들 모델 시키겠다고 말하는 엄마와 그 엄마를 극도로 조롱하는 사람, 아무도 자리 양보를 안 해준 임산부 출근썰, 외도하는 남편, 못된 시어머니 등등등
효과는 탁월했다. 입맛이 없다. 삶은 계란과 브로콜리 몇 개를 겨우 먹고 숟가락을 내려놨고. 다음 날 몸무게를 재보니 40.4kg였다. 0.3이 빠진 거다. 0.3kg와 함께 인생 사는 맛도 같이 빠진 것 같았다. 나는 오늘도 두문불출이다. 문을 열고 나가면 괜히 이상한 사람을 만나 피곤한 상황을 겪을 것만 같다. 왜 이 세상엔 못되고 나쁘고 이상한 사람들이 많은 거야? 왜 다른 사람을 괴롭히는 거야? 아 입맛 없어. 띠링. [내일 몇 시 어디서 볼까] 그때 친구의 카톡 알림이 내 폰 화면을 밝게 만들었다.
안 만나고 싶은데... 아니 덕화가 싫다는 건 아니고. 집 밖으로 나가기가 싫은 거다. 나는 내가 마련한 안락한 공간에서 그 누구의 공격도 받지 않으며 평화롭게 살고 있다. 나를 괴롭게 하는 건 핸드폰 안에서 자신의 불행과 분노를 전시하는 사람들 뿐. 근데 이건 뭐 다이어트에 도움이 되니까.
어쩌지 고민하고 있는데 덕화가 선뜻 우리 집으로 와준다고 했다. 여기 진짜 먼데... 그래도 오겠단다. 오... 최고의 친구! 덕화는 우리 집에 발을 들인 순간부터 집을 어쩜 이렇게 꾸몄냐면서 칭찬 일색이었다. 인스타에서 '우와 이거 귀엽다'고 생각했던 모든 것들이 다 이 집에 있다면서. 집 정말 좋다~ 집 최고다~ 했다. 나는 조금씩 기분이 좋아졌다. 먹을 사람은 두 명이지만 10인분의 파스타를 해놓고 우리는 수다를 떨었다. 오랜만에 사람을 만나는 거니 행복하고 발전적인 이야기를 하고 싶었는데 나는 글렀다. 지난 며칠간 푹 빠져있던 부정의 세계가 어느새 내게 옮아왔는지 나도 모르게 우중충한 얘기만 꺼내놓게 되었다.
나한테 무슨 일이 있었는지 알아? 누가 나를 이렇게 괴롭혔는지 알아? 내가 얼마나 힘들었는지 알아? 이런 일도 있었다? 나는 성선설을 믿었던 사람이야. 근데 이젠 아닌 것 같아. 사람들이 무서워. 사람들이 어려워. 사람들을 모르겠어. 이제 아무도 안 사랑하고 싶어. 나는 나만 사랑하고 싶어. 오랜만에 만난 덕화 앞에서 나는 지구평평설을 믿는 사람보다, 안아키보다, 임산부한테 자리 양보 안 해준 사람보다 더 못난 사람이었다.
이미 용서하고 깔끔하게 잊었다고 생각했던 사람들을 나는 여전히 떠올리고 있다. 그때의 일을 끊임없이 복기하고, 다시 그때 그 상황으로 돌아가 다른 선택을 하는 상상을 한다. 나는 아무도 용서하지 못했고 아무것도 잊지 못한 것이다. 나는 반성하게 됐다. 나는 핑계를 대고 있었다. 핸드폰 속 뒤틀린 세상이 내 입맛을 잃게 한다고. 일부로 그런 것들을 찾아 읽으면서 내 문제를 회피하고 싶었던 거다. 내 입맛을 잃게 한 건 다름 아닌 나 자신이었다.
못났어, 진짜. 내가 아는 바대로라면 덕화와의 대화는 분명히 애매한 찝찝함을 남기고 끝나게 될 터였다. 스레드에서 그러던데. 못생긴 대화는 항상 못생기게 끝나더라고. 역시나 내 불행배틀 시작에 이어 덕화도 자신의 불행을 하나둘씩 얹었다. 어쩌지. 어쩌지?
근데 뭔가 이상했다. 걱정과는 다른 방향으로 대화가 나아가는 거다. '내가 걔 그럴 줄 알았다'라거나 '내가 말했지? 어? 조심하라고?'라거나 '많이 힘들었겠네'같은 말들. '너가 이상한 게 아니야. 나라도 그랬을 것 같아'라는 말도 들었다. '넌 할 수 있는 거 끝까지 다 한 것 같은데?' 말이 제일 좋았다.
불행을 이야기하면 불행으로 끝나던데. 덕화와의 대화는 달랐다. 불행을 얘기해도 행복으로 끝나네. 덕화여서 그런 건지. 원래 친구를 만나면 이런 건지. 친구를 안 만난 지가 너무 오래돼서 말이야... 알 수가 없네. 하지만 나는 덕화 덕이라고 생각하기로 했다. 어느새 10인분 파스타를 다 먹었다. 덕화는 1인분만 먹었으니까 내가 9인분 어치를 해낸 것이다.
덕화가 떠나고 냉동시켜 놨던 올리브빵에 딸기크림치즈를 얹어 먹기도 했다. 그렇게 시작된 거다. 나의 입 터짐이. 아 안 되는데 다이어트해야 하는데. 나 살찌기 싫은데.라고 말하면서 나는 지금 삼각커피우유를 베이글과 함께 마시고 있다. 조금 있다가는 나주한우곰탕에 밥을 말아먹을 것이다. 계란프라이도 하나 곁들이는 게 좋겠지.
입맛이 없어져야 다이어트를 할 수 있는데. 덕화를 만나고 입맛이 너무나 돈다. 41.9kg가 됐다. 내일 눈 떠보면 42kg 대가 되어있을 것 같다. 다시 핸드폰을 켜서 불행세상의 이야기를 읽어도 입맛은 줄어들 생각 없이 점점 살아나기만 한다. 아, 얘네는 이렇게 살고 있네. 나는 아닌데. 이 사람들은 왜 이렇게 화가 많이 난 거야? 음... 모르겠고, 출출해. 이렇게 되는 거다.
다 덕화 탓이다. 덕화 때문에 난 살찌고 있다. 덕화가 떠나기 전 주고 간 편지에 이런 구절이 적혀있었다. [너와 더 어렸을 적부터 친구로 지냈다면 어땠을까 상상해 봤어. 아마 좀 더 나은 내가 되어있지 않을까 싶어] 진짜? 진짜로? 나 이 나이 먹고도 아직도 상념에 빠지고, 인간관계가 제일 어렵고, 마음대로 판단해서 마음대로 결론 내리고, 회피하고, 징징거리는 데도?
우리가 서로를 좀 더 일찍 만났더라면 나는 다른 건 모르겠고, 이거 하나만큼은 알 것 같다. 나는... 됐을 거다. 꿀. ...꿀꿀... 아 꿀이에요. 꿀꿀. ... 돼지말이다. 나는 돼지가 됐을 거야. 근데 불안하지 않고 회피하지 않고 걱정 없는 돼지. 덕화 덕분에 조금 더 단단한 내가 되어 있었겠지. 몸도^^ 마음도. 고맙다. 40대의 나는 덕분에 지금보다 조금 더 단단한 내가 되어있을 것 같아. 너가 계속 내 친구 해줄 거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