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생은 타이밍

by 고니크

"타이밍이 안 맞았어" 나는 이런 말 자주했다.

"타이밍을 노려야 돼" 이런 말도 몇 번 했다.

"타이밍이 좋았지" 내가 하긴 어렵지만 남들은 내게 쉽게 하는 말이다.


아무래도 사람들은 타이밍을 운이나 운명의 동의어로 쓰고 있는가 보다. 크고 작은 사건들을 겪으며 어른이 되었지만 내가 겪은 것들은 모두 그럴 법했고, 가끔 이해가지 않는 순간들도 결국은 순리대로 흘러갔다. 그러니까 나는 한번도 운명의 장난을 겪어본 적이 없는 입장으로서, 예를 들어 미련 남은 전 남친을 우연히 낯선 공간에서 마주쳐 다시 사랑에 빠지게 된다거나, 꿈에서 본 번호로 복권에 당첨된다거나, 길을 잃었는데 마침 약속 장소가 변경돼서 내가 가는 길이 맞는 길이 되었다거나 하는 일 말이다. 난 항상 남친과 헤어지면 그것으로 얼굴 보는 일은 끝이었으니 '발라 발라 꼬미꼬 라 발라 발라 보니따 발라 발라 무에뻬 라 치카 발라 보니따' 같은 노래를 신나서 부를 일은 생기지 않았고, 아무리 더러운 똥꿈을 꾸어도 로또 사는 데엔 돈만 날렸다. 길을 잃으면 당연히 지각을 했지, 운명이 유머스럽게 나의 편을 들어줘본 적이 없다는 말이다.


여튼 한번도 운명의 장난을 겪어본 적이 없는 입장으로서 타이밍이 도대체 뭔가에 대한 고민을 안 할 수가 없다. 왜 나에겐 그 타이밍이라는 것이 오지 않는 것인가. 크레이지 아케이드할 때 생각해봐도 그래. 지금 물풍선을 쏘고 얼른 달아나라는데, 지금이 타이밍이라는데 나는 줄곧 내가 쏜 물풍선에 갇혀서 숨막혀 죽었다. 주식? 주식은 더 말도 못 하지. 다들 지금이 들어갈 타이밍이고 나올 타이밍이라는데, 나만 혼자 '조금만 더'하다가 아무것도 건지지 못했다고. 내가 막내작가 생활을 할 때에는 노동법이 전혀 적용되지 않아 주100시간을 일하던 날도 있었는데, 내가 그 프로그램을 나오자 마자 다들 근로계약서를 쓰기 시작했으며 그러면서 페이도 올라갔고, 막내들은 주에 정해진 시간만 업무하고 야근을 하면 야근 수당까지 받았다. 직장내 괴롭힘 신고라는 것도 생겼대. 나때는 말이야. 그저 야생이었는데.


그 좋은 타이밍을 항상 놓치기만 하면서 하늘을 원망했던 적도 더러 있지만 결국 나는 이렇게 생각하기로 했다. 나는 운명이 비켜가는 사람이다. 그러니까 곧 그 말은 내 삶은 내가 알아서 개척해 나가야 한다는 뜻이었다. 요행을 기대하지 않는 마음을 아주 일찍부터 먹었다. 만나고 싶은 사람을 만나고 싶어서 그 주변을 뱅뱅 도는 일은 하지 않는다. 내가 아무리 뱅뱅 돌아도 그 사람은 나한테 1도 관심 없다. 만나고 싶으면 만나자고 말한다. 들어가고 싶은 일자리에 지인이 나를 추천해주길 기다리지 않는다. 그 시간에 나는 한 자라도 더 쓴다. 자기소개서라든가 대본이라든가. 버스와 지하철이 제 시간에 딱딱 도착할 리가 없다. 나는 배차 간격만큼의 시간을 여유로 두고 출발한다. 근데 그렇다고 지각을 안 하는 건 아니다. 젠장. 그러니까 정말, 노력을 해도, 타이밍은 나를 일절 도와주지 않는다니까. 더 일찍 나올 걸. 나는 무조건 더 큰 노력을 해야 한다.


좋아하는 사람이 나를 좋아하게 만들기 위해 나는 큰 노력을 한다. 속으로는 '아, 더 일찍 만났으면 좋았을 텐데 내가 조금 더 어릴 때'라고 생각하며 조급하다. 타이밍이 안 맞아서 그냥 흘려보낼까 봐. 나에겐 너무 익숙한 일이라. 자기소개서 특기란에 적어도 뭐 손색이 없는 그런 일이라.


그놈의 타이밍에 많은 사람들을 흘려보내고 이제 몇 안 남았다. 나를 좋아하나? 나와 함께 일하고 싶나? 나와 거래를 하고 싶나? 나와 친구가 되고 싶나? 아니면 나의 편이 되어주고 싶나? 나는 그들을 보며 계속 머리만 긁적인다. 나는 궁금해. 지금이 타이밍인가? 내가 너무 이른 건가, 아님 이미 놓쳤나. 그리고 한탄한다. 놓쳤네. 놓쳤어. 그래, 이렇게 좋은 사람이면 그리고 이렇게 좋은 기회면 벌써 내가 가지고 있겠지. 놓칠까 말까 아리까리한 이때 말고 내가 지금이라는 걸 알 수 있었을 때 그때 내게 도착했었겠지.


살까 말까, 지금 사야 하는 건가 아님 더 생각해보고 사야 하나 고민하다가 에라 모르겠다며 당근마켓에서 반지를 샀다가 사기를 당했다. 역시나! 결정의 타이밍이 너무 일렀던 거다. 당근에서 사기 당했다고, 심지어 반지를 사려다가! 허영심에 이런 일을 겪었다는 말을 했더니 그걸 들은 사람은 웃었다. 나를 재연님이라고 부르는 사람. 나를 재연님이라고 부를 때마다 난 속으로 '내 이름이 선생이었으면 재밌었겠다'고 생각한다. 이 사람을 일찍 만났으면 어땠을까. 다른 얼굴도 내가 볼 수 있었을까. 아니면 조금 늦게 만나는 게 더 좋았으려나. 내가 좀 성숙되면 말이야. 당근에서 반지 사기 당하는 이런 순간 말고. 허영심에 지지 않는 어른이 되었을 때 만난다면 그땐 조금 달랐을까. 나는 타이밍에 대해서 계속 고민한다. 지금이야? 아니야? 누가 말 좀 해줘.


나는 안달복달인데 날 보는 상대의 눈은 고요하다. 지금 만났으니 지금이 타이밍일 거라고 믿어 의심치 않는 것 같다. 그런 확신은 도대체 어디서 오는 거지. 그 확신이 틀렸을 때 상처 받을 마음을 어떻게 지키려고. 타이밍을 아는 사람은 강철같은 마음을 가지고 있는 건가. 상처 받을 일이 없을 테니까 상처에 대해서는 모르고 살아도 되는 그런 건가.


타이밍을 운명의 동의어라고 생각했었지만 이젠 아닌 것 같다. 타이밍은 자기 확신의 동의어인가 봐. 물풍선을 쏠 때도, 주식을 할 때도, 일을 구하고 사람을 만날 때도 지금이 타이밍이라고 생각할 수 있는 자기 확신. 남들한텐 그게 있나 봐.

타이밍을 귀신 같이 아는 사람과 타이밍을 전혀 모르는 사람이 세상을 같이 사는 건 아무래도 조금 불공평한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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