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9화. 왜 나는 나에게 가장 가혹한가?
"그때 내가 더 조심했다면 그런 일은 없었을 텐데." "왜 나는 바보같이 당하고만 있었을까?"
타인을 향한 분노가 어느 정도 잦아들 무렵, 우리 마음에는 더 날카로운 화살 하나가 남습니다. 바로 나 자신을 향한 비난입니다. 가해자로부터 독립하겠다고 선언했지만, 정작 내 안의 '나'는 여전히 과거의 나를 다그치며 상처를 후벼파고 있습니다. 오늘은 왜 우리가 피해자임에도 불구하고 스스로에게 가장 가혹한 심판관이 되는지, 그 '자기 비난'의 뿌리를 찾아보려 합니다.
우리가 자기 비난에 빠지는 가장 큰 이유는 역설적이게도 **'통제감'**을 회복하고 싶기 때문입니다.
나에게 닥친 비극이 순전히 타인의 악의나 운 나쁜 우연 때문이라고 인정하는 것은 너무나 무력한 일입니다. "나는 아무 잘못도 없는데 당했다"는 사실은 세상을 예측 불가능하고 위험한 곳으로 만듭니다.
이때 우리 뇌는 아주 고통스러운 방식으로 방어 기제를 작동시킵니다. "내 탓이다"라고 생각하는 순간, 비극의 원인이 나에게 있으니 내가 조심하면 앞으로는 이런 일을 막을 수 있다는 가짜 통제감을 얻게 되는 것이죠. 즉, 스스로를 가해자로 만듦으로써 무력한 피해자의 위치에서 벗어나려는 눈물겨운 노력입니다.
우리의 자존감을 갉아먹는 그 날카로운 목소리는 사실 당신의 진짜 목소리가 아닐 가능성이 높습니다. 어린 시절 우리를 훈육했던 엄격한 양육자, 우리를 비난했던 교사, 혹은 상처를 주었던 가해자의 목소리가 내면화된 것입니다.
그들은 당신에게 "네가 제대로 못 해서 그런 거야"라고 말했고, 당신은 생존을 위해 그 말을 믿어야만 했습니다. 시간이 흘러 그들은 곁에 없지만, 당신은 그들이 남긴 채찍을 들고 스스로를 벌주고 있습니다. 이것은 당신의 잘못이 아니라, 상처 입은 자아가 익힌 '잘못된 대처 방식'일 뿐입니다.
27년이라는 긴 세월을 감옥에서 보낸 넬슨 만델라는 출소하던 날의 심경을 이렇게 고백했습니다.
"내가 감옥 문을 나서서 자유를 향해 걸어갈 때, 만약 내 안의 분노와 증오를 그대로 놔두고 간다면 나는 여전히 감옥 안에 있는 것이나 다름없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만델라가 버려야 했던 '증오'의 대상에는 간수들뿐만 아니라, **'아무것도 못한 채 청춘을 감옥에서 보낸 무력한 자신'**에 대한 원망도 포함되어 있었을 것입니다. 그는 자신을 향한 비난을 멈추지 않았다면 결코 진정한 지도자가 될 수 없었음을 알았습니다. 나를 용서하는 것은 단순히 과거를 잊는 것이 아니라, 과거의 나를 현재의 고통에서 '석방'시켜주는 일입니다.
생각해 보세요. 만약 당신이 가장 사랑하는 친구가 당신과 똑같은 일을 당했다면, 당신은 그 친구에게 "네가 조심했어야지"라고 다그칠까요? 아니면 말없이 꽉 안아주며 "네 잘못이 아니야"라고 말해줄까요?
우리는 타인에게는 관대하면서 왜 자신에게는 그토록 잔인한가요? 당신은 그 사건의 원인 제공자가 아니라, 그 거친 폭풍우 속에서 끝까지 버텨낸 소중한 존재입니다. 자기 비난은 상처 입은 아이에게 다시 매질을 하는 것과 같습니다. 이제 그 채찍을 내려놓고, 가장 아팠을 당신 자신을 가장 먼저 보호해 주어야 합니다.
오늘의 마음 미션
내면의 비판자 목소리 적어보기: 평소 나 자신을 자책할 때 자주 하는 말들을 종이에 적어보세요.
(예: "넌 왜 그렇게 멍청하니?", "다 네 탓이야.")
목소리의 주인 찾아보기: 그 말들은 누구의 말투와 닮았나요? 가해자인가요, 혹은 당신을 다그쳤던 누군가인가요? 그 목소리와 나를 분리해 보세요.
자비의 한 마디 들려주기: 적어 내려간 비난의 문구 옆에, 사랑하는 친구에게 해줄 법한 위로의 말을 적어보세요.
(예: "네 탓이라고 생각해서 마음이라도 편해지고 싶었구나. 하지만 그건 정말 네 잘못이 아니었어. 고생 많았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