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천그랜드투어 4편
월미도의 활기를 뒤로하고 찾아간 한국이민사박물관에서
나는 뜻밖에도 영화 <미나리>를 떠올렸다.
1902년 인천항을 떠나 하와이로 향했던 첫 이민자들의 막막함과 용기가
영화 속 아칸소의 외진 벌판에서 병아리 감별을 하며 희망을 일구던
제이콥 가족의 모습과 묘하게 겹쳐졌기 때문이다.
박물관에 전시된 낡은 여권과 빛바랜 사진들은 영화 속 '바퀴 달린 집'만큼이나 위태롭고도 단단해 보였다.
낯선 땅에서 살아남기 위해 서로를 보듬어야 했던 사람들의 이야기가 전시장 벽면마다 가득했다.
운명처럼 그날 밤, TV에서는 추석 특집으로 영화 <미나리>를 방영해주었다.
낮에 박물관에서 선조들의 고단했던 이민사를 '팩트'로 접하고 난 뒤
다시 본 영화는 이전과는 전혀 다르게 다가왔다.
영화관에서 처음 봤을 때는 그저 한 가족의 분투기로만 보였던 장면들이
이제는 수만 명의 이민자가 겪었을 거대한 역사의 한 조각으로 읽혔다."미나리는 어디서든 잘 자란다"는 할머니 순자의 대사가
박물관에서 본 이민 1세대들의 삶과 겹쳐지며 뭉클한 전율을 주었다.
박물관 전시가 '텍스트'였다면 그날 밤의 영화는 그 텍스트에 온기를 불어넣는 '해설서'였다.
이번 투어는 단순히 장소를 이동하는 여행을 넘어 나의 시야가
과거와 현재, 사실과 예술을 넘나들며 확장되는 진정한 '그랜드(Grand)' 투어가 되어가고 있었다.
하지만 이 모든 인문학적 탐색의 끝
투어의 대미를 장식한 부동의 1위는 역시 월미도 바이킹과 디스코팡팡이었다.
수직으로 낙하하며 지르는 비명 속에 이틀간 쌓인 사유의 무게를 잠시 덜어내고
디스코팡팡의 요란한 박자에 몸을 맡기며 우리는 비로소 여행의 해방감을 만끽했다.
진지한 역사 탐색과 유치찬란한 즐거움이 공존했던 이틀.
2021년의 추석은 그렇게 인천이라는 거대한 박물관이자 놀이공원 속에서 찬란하게 기록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