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천그랜드투어 3편
조선은행의 묵직한 중후함을 뒤로하고 우리가 향한 곳은 대불호텔 전시장이었다.
우리나라 최초의 서양식 호텔이라는 타이틀만으로도 충분히 호기심을 자극했지만
문을 열고 들어선 내부의 모습은 기대 그 이상이었다.
어제 보았던 '인천여관 1965'가 서민들의 숨결이 닿은 소박하고 아늑한 공간이었다면
대불호텔은 개항기 인천을 찾았던 이방인들의 설렘과 낯선 서구 문명이 응축된 화려한 무대 같았다.
재현된 객실 안의 화려한 벽지와 샹들리에 그리고 당시의 식기들을 보며 우리는 잠시 말을 잃었다.
다이캐스트의 정교함에 익숙한 우리의 눈에 대불호텔의 고풍스러운 가구와 인테리어는
또 다른 형태의 '완벽한 디테일'로 다가왔다.
이곳에서 커피를 마시고 서양식 정찬을 즐겼을 100여 년 전 사람들의 풍경 위로
2021년 추석 연휴를 맞아 이곳을 누비는 우리 형제의 모습이 겹쳐졌다.
시대는 달라도 새로운 세상을 마주하는 여행자의 심장은 똑같이 뛰고 있었으리라.
개항장의 묵직한 역사와 대불호텔의 화려함에 취해 걷다 보니
어느덧 코끝을 간지럽히는 달큼한 춘장 냄새가 차이나타운에 들어섰음을 알렸다.
점심 메뉴는 고민할 필요도 없이 짜장면이었지만
우리는 곧장 식당으로 향하는 대신 짜장면박물관(옛 공화춘)의 문을 두드렸다.
이곳은 단순히 '음식'을 전시하는 곳이 아니었다.
인천항 부두 노동자들의 든든한 한 끼였던 시절부터 졸업식 날의 설렘이 담긴 특별한 외식 메뉴가 되기까지
짜장면 한 그릇에 담긴 한국 현대사의 굴곡을 맛깔나게 차려낸 공간이었다.
박물관 내부에는 짜장면을 만드는 주방의 풍경과 시대별 철가방의 변천사
그리고 짜장면 라면의 역사까지 흥미로운 디테일들이 가득했다.
모형으로 재현된 탱글한 면발과 검은 윤기가 흐르는 소스를 보고 있자니
조금 전까지 역사를 탐구하던 진지한 눈빛은 사라지고 어느새 입안엔 침이 가득 고였다. "아는 맛이 가장 무섭다"는 말처럼 짜장면의 유래와 변천사를 톺아본 시간은
점심 식사를 위한 최고의 '애피타이저'가 되었다.
전시를 마치고 박물관 문을 나서는 순간 우리 형제의 발걸음은 약속이라도 한 듯
근처 중식당을 향해 그 어느 때보다 가벼워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