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곳저곳요곳 10화

인천그랜드투어 2편

by 곰돌아부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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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천그랜드투어>의 일정 중 가장 짜릿했던 순간이

월미도에서 동생과 거친 바람을 가르며 탄 바이킹이었다면

가장 깊은 여운을 남긴 곳은 바로 이곳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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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도를 따라 걷다 문득 마주친 풍경 속에 예고도 없이 문화재가 불쑥 나타났다.

번화한 도시의 소음이 차단된 채, 마치 시간이 멈춘 듯 꼭꼭 숨어있는 장소.

이곳은 세간의 주목보다는 자신만의 빛깔을 지닌 작품들을 소중히 품고 있는

독특하고도 은밀한 아지트 같았다.


전시장 안으로 들어서자 공기의 흐름마저 바뀌었다.

관람객의 발소리조차 조심스러운 그 고요함 속에서 나는 비로소 작품과 일대일로 마주 섰고

유명 미술관의 북적임과는 차원이 다른 안도감이 밀려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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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군가에게는 그저 스쳐 지나갈 이름 없는 공간일지 모르지만

나에게는 '나만 알고 싶은' 보석함을 연 기분이었다.복잡했던 머릿속이 비워지고 오로지 캔버스의 결이나 조각의 선에만 집중할 수 있었던 시간.

조용한 분위기 속에서 위로받고 싶을 때, 혹은 일상의 소란으로부터 도망치고 싶을 때

언제든 다시 찾아오고 싶다는 생각이 간절해졌다.

문을 열고 나올 때의 내 마음은 들어갈 때보다 한결 가볍고 편안해져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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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생의 강력한 추천으로 발걸음을 옮긴 곳은

이름부터 묘한 향수를 불러일으키는 '인천여관1965'였다.

1960년대 누군가의 고단한 하룻밤을 지켜주었을 여관 건물이

이제는 예술의 옷을 입고 나를 기다리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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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관 특유의 좁고 구불구불한 복도를 지나 문을 열 때마다

예상치 못한 작품들이 불쑥 고개를 내밀었다.

문을 나설 때의 내 마음은 들어갈 때보다 훨씬 가볍고 편안해져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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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행의 둘째 날 아침, 달콤한 늦잠의 유혹이 발목을 잡았지만 우리는 기분 좋게 그 유혹을 떨쳐냈다.

<인천그랜드투어>의 이틀째 페이지를 장식할 첫 번째 목적지는

바로 인천개항장 근대건축전시관이었기 때문이다.


어제의 여정이 인천의 뿌리와 현대적 감각을 훑는 과정이었다면

오늘 아침은 인천이 가장 뜨겁게 세계를 마주했던 그 시절,

'개항기'의 한복판으로 걸어 들어가는 기분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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옛 일본제1은행 인천지점 건물을 활용한 이 전시관은 그 자체로 하나의 거대한 유물이었다.

묵직한 석조 건물 안으로 들어서자

개항 당시의 화려했던 건축물들이 정교한 모형과 기록으로 우리를 맞이했다.


아침의 차분한 공기 속에서 마주한 근대 건축의 흔적들은

잠이 덜 깬 정신을 맑게 깨워주기에 충분했다.

박물관 문을 열고 다시 거리로 나섰을 때 눈앞의 개항장 거리는

방금 전시관에서 본 흑백 사진 위에 색깔을 덧입힌 듯 생생하게 다가오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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근대건축전시관을 나와 몇 걸음 옮기지 않아

이번 투어의 또 다른 주인공인 옛 조선은행 인천지점이 그 위용을 드러냈다.

붉은 벽돌과는 또 다른 차가우면서도 단단한 석조 건물의 질감이

둘째 날 아침의 공기와 무척 잘 어울렸다.


어제 보았던 '양은'이 서민들의 애환이 담긴 노란 빛깔이었다면

이곳 조선은행의 흔적들은 개항기 인천을 휘감았던 거대한 자본과 욕망의 그림자를 품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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건물 내부로 들어서는 순간, 높은 천장과 중후한 분위기가 우리를 압도했다.

한때 이곳은 누군가의 재산이 오가고, 새로운 화폐가 세상을 돌아다니기 시작했던 심장부였다.


다이캐스트와 모형을 좋아하는 우리에게

이 거대한 '실물 건축물'은 그 자체로 거대한 예술품이었다.

정교하게 다듬어진 기둥과 창틀의 장식들을 보며

우리는 100여 년 전 이 공간을 바쁘게 오갔을 사람들의 모습을 그려보았다.


전시된 옛 화폐들과 금융 자료들을 살피며 우리는 이 도시가 단순히 '가까운 동네'를 넘어

얼마나 역동적인 역사의 소용돌이 속에 있었는지 새삼 실감했다.

아는 만큼 보이고, 보는 만큼 사랑하게 된다는 말.

<인천그랜드투어>는 그 평범한 진리를 매 순간 증명해내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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