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천그랜드투어 2편
<인천그랜드투어>의 일정 중 가장 짜릿했던 순간이
월미도에서 동생과 거친 바람을 가르며 탄 바이킹이었다면
가장 깊은 여운을 남긴 곳은 바로 이곳이었다.
지도를 따라 걷다 문득 마주친 풍경 속에 예고도 없이 문화재가 불쑥 나타났다.
번화한 도시의 소음이 차단된 채, 마치 시간이 멈춘 듯 꼭꼭 숨어있는 장소.
이곳은 세간의 주목보다는 자신만의 빛깔을 지닌 작품들을 소중히 품고 있는
독특하고도 은밀한 아지트 같았다.
전시장 안으로 들어서자 공기의 흐름마저 바뀌었다.
관람객의 발소리조차 조심스러운 그 고요함 속에서 나는 비로소 작품과 일대일로 마주 섰고
유명 미술관의 북적임과는 차원이 다른 안도감이 밀려왔다.
누군가에게는 그저 스쳐 지나갈 이름 없는 공간일지 모르지만
나에게는 '나만 알고 싶은' 보석함을 연 기분이었다.복잡했던 머릿속이 비워지고 오로지 캔버스의 결이나 조각의 선에만 집중할 수 있었던 시간.
조용한 분위기 속에서 위로받고 싶을 때, 혹은 일상의 소란으로부터 도망치고 싶을 때
언제든 다시 찾아오고 싶다는 생각이 간절해졌다.
문을 열고 나올 때의 내 마음은 들어갈 때보다 한결 가볍고 편안해져 있었다.
동생의 강력한 추천으로 발걸음을 옮긴 곳은
이름부터 묘한 향수를 불러일으키는 '인천여관1965'였다.
1960년대 누군가의 고단한 하룻밤을 지켜주었을 여관 건물이
이제는 예술의 옷을 입고 나를 기다리고 있었다.
여관 특유의 좁고 구불구불한 복도를 지나 문을 열 때마다
예상치 못한 작품들이 불쑥 고개를 내밀었다.
문을 나설 때의 내 마음은 들어갈 때보다 훨씬 가볍고 편안해져 있었다.
여행의 둘째 날 아침, 달콤한 늦잠의 유혹이 발목을 잡았지만 우리는 기분 좋게 그 유혹을 떨쳐냈다.
<인천그랜드투어>의 이틀째 페이지를 장식할 첫 번째 목적지는
바로 인천개항장 근대건축전시관이었기 때문이다.
어제의 여정이 인천의 뿌리와 현대적 감각을 훑는 과정이었다면
오늘 아침은 인천이 가장 뜨겁게 세계를 마주했던 그 시절,
'개항기'의 한복판으로 걸어 들어가는 기분이었다.
옛 일본제1은행 인천지점 건물을 활용한 이 전시관은 그 자체로 하나의 거대한 유물이었다.
묵직한 석조 건물 안으로 들어서자
개항 당시의 화려했던 건축물들이 정교한 모형과 기록으로 우리를 맞이했다.
아침의 차분한 공기 속에서 마주한 근대 건축의 흔적들은
잠이 덜 깬 정신을 맑게 깨워주기에 충분했다.
박물관 문을 열고 다시 거리로 나섰을 때 눈앞의 개항장 거리는
방금 전시관에서 본 흑백 사진 위에 색깔을 덧입힌 듯 생생하게 다가오기 시작했다.
근대건축전시관을 나와 몇 걸음 옮기지 않아
이번 투어의 또 다른 주인공인 옛 조선은행 인천지점이 그 위용을 드러냈다.
붉은 벽돌과는 또 다른 차가우면서도 단단한 석조 건물의 질감이
둘째 날 아침의 공기와 무척 잘 어울렸다.
어제 보았던 '양은'이 서민들의 애환이 담긴 노란 빛깔이었다면
이곳 조선은행의 흔적들은 개항기 인천을 휘감았던 거대한 자본과 욕망의 그림자를 품고 있었다.
건물 내부로 들어서는 순간, 높은 천장과 중후한 분위기가 우리를 압도했다.
한때 이곳은 누군가의 재산이 오가고, 새로운 화폐가 세상을 돌아다니기 시작했던 심장부였다.
다이캐스트와 모형을 좋아하는 우리에게
이 거대한 '실물 건축물'은 그 자체로 거대한 예술품이었다.
정교하게 다듬어진 기둥과 창틀의 장식들을 보며
우리는 100여 년 전 이 공간을 바쁘게 오갔을 사람들의 모습을 그려보았다.
전시된 옛 화폐들과 금융 자료들을 살피며 우리는 이 도시가 단순히 '가까운 동네'를 넘어
얼마나 역동적인 역사의 소용돌이 속에 있었는지 새삼 실감했다.
아는 만큼 보이고, 보는 만큼 사랑하게 된다는 말.
<인천그랜드투어>는 그 평범한 진리를 매 순간 증명해내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