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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글쓰는공여사 Apr 16. 2023

어쿠! 이번 여행의 최강 수다왕은 바로바로~

꼬꼬행 독서모임 멤버들과 제주 여행

꼬리에 꼬리를 무는 여행. 세 권의 책을 읽고 세 번의 독서모임을 하고 여행을 하는 꼬꼬행 독서모임. 


이번 주제는 '제주해녀'. 그래서 당연히 여행지는 '제주'다.


뭐, 내가 이렇게 협박까지 했다고, 대놓고 말은 못 하겠다.


"아... 끙. 나, 다음 여행지 제주 아니면, 힘들어서 못가!"


강진, 당진, 안동 3번의 여행을 하면서 넉다운이 됐다. 나의 협박 아닌 협박이 그래도 통했던지, 순진한 멤버들은 내가 사는 '제주'로 여행지를 잡아줬다(?).


이번 여행의 하이라이트는 가는 곳마다  만났던  다양한 '수다왕들'. 우열을 가리기 힘들 만큼 말솜씨가 좋다.


1. '해녀박물관' 해설사

'해녀박물관'에 전시된 해녀 이야기.

"끽해야 20분 정도 둘러보면 되지 않을까요?"


우린 얇디얇은 '해녀박물관' 팸플릿을 뒤적이며 감히 단언했다. 근데 그곳엔 마치 우리 멤버들이 오길 오래도록 기다렸다는 듯,  2시간 가까이 입담을 풀어놓을 해설사 분이 계셨다. 


"근데 제주 남자들은 여자들이 물질하고 자식 키우고, 밭농사 다하고 집안일도 할 때, 뭐 했어요? 여기 모형을 보니까 남자들은 한담이나 나누고 놀고 있는데요?"


난감한 질문만 꼬치꼬치 캐묻는 우린 궁금한 게 지나치게 많았고, 그의 해설은 지나치게 길었다. 


누가 끽해야 20분이라 했나? 우린 하마터면 비싸게 예약한 '해녀의 부엌' 점심도 놓칠뻔했다.


2. '풀무질' 동네서점  주인장

'풀무질' 앞에서 구입한 책을 들고.
책에 빠진 멤버 중 1인.

"시간 좀 남는데, 여기 가보면 어때요?"

구좌의 명물, 당근 주스에 당근 케이크를 먹으며 멤버 중 한 이 말했다.


동네서점 '풀무질'.


서점에 들어서자마자 꼬리를 흔들며 반기는 댕댕이 두 마리. 인문사회과학 서점답게 이름도 '광복이'와 '해방이'란다. 주인장은 '일상파괴자' 댕댕이들을 소개하며 얘기의 포문을 열어젖힌다.


서점 이름을 어디서 분명히 들어봤다 싶었더니, 성균관대 앞에서 무려 36년이나 서점을 하다 제주로 옮겨왔단다. 그래서 그런지 그의 말에도, 얼굴에도 뒤통수에도 등짝에도 책, 책, 책. 책이라 쓰여있었다.


그와의 수다는 무슨 '작가와의 만남' 그딴 걸 연상시킨다. 우린 오랜만에 물 만난 고기처럼, 서점을 찬찬히 둘러보고 책냄새에 코를 박는다. 


읽을 책 5권을 주인장에게 추천까지 받아, 호기 있게 여행경비로 결제를 한다. 니체가, 4.3이, 지속불가능한 자본주의가, 생태문명이 우리의 삶 속으로 걸어 들어올 준비를 한다. 


그와의 왕수다가 우리의 제주 여행을 더욱 특별하게 만들어준다. 우린 2023년을 사는 '희귀종', 그것도 7년 차 독서모임 사람들이니까.


3. '성읍민속마을' 어멍 해설사

내가 바로 제주 흙돼지여, 아니 흑돼지여.

어쿠, 이 분은 또 뭐여?


민속마을 입구에 들어서자마자 왕수다 어멍 해설사를 만났다. 숙련된 말솜씨로 우리의 혼을 쏙 빼놓는다.  얼굴에 '순진'이라고 써가지고 다니는 우리 멤버들은, 제주 바람에 미친년 치맛자락 뒤집어지듯 그녀의 말에 홀랑 빠져든다. 


제주 방언으로 우릴 부르는데, 말이 참... 찰지다.

"큰년!"

"작은년!"

"조큰년!"


처음엔 욕한 줄 알았다. 제주 방언이라 하니 그런 줄 믿었다. 아무리 생각해도 좀 욕 같지 않나? 아, 씨. 다른 말도 다 녹음했다 인터넷 뒤져보는 건데...


수다왕 어멍은 입장료는 없는데 크게 부담 갖지 말고 둘러보라며, 아주 부담스럽게(?) 우릴 '제주 특산물 판매처'로 이끈다. 


호객행위가 분명한데, 우리 순진한 멤버들은 그저 말갛게 웃는다. 흑돼지에게 사과를 먹이면서도 웃고- 다행히 똥은 아니다- 커다란 누에를 손바닥에 얹어주어도 웃고, 해녀처럼 등에 테왁을 짊어줘도 웃는다. 


...우린 제주 여행 중이니까.


근데 우리가 그곳을 빠져나왔을 때엔 모두 양손에 뭔가를 들고 있었다. 10,000원짜리 말린 고사리와 50,000원짜리 오미자원액과 말 기름으로 만든 마유까지. 에궁.


"근데, 남편! 내가 여행 가서 사가지고 왔던 오미자액 어딨는지 알아?"

한 달도 더 넘어 이제야 생각이 나서 묻는다.

남편왈, 

"그거 내가 내 방에 갖다 놓고 먹고 있는데?"

"맛은 어때?"

"글쎄, 슴슴하던데...?"

무슨 항아리에 담았다고 진하다 자랑자랑하더니...


아직도 엥엥엥엥 내 귀에 서라운드 사운드로 어멍의 제주 방언이 들리는 듯하다. 이렇게 여운이 길면, 이 어멍 해설사가 이번 여행의 최강 수다왕인가?


휴우.


4. 차귀도 앞 '데스틸' 사장님

차귀도 앞 산책길을 함께 걷고 내려오는데 멤버 중에 한 명이 말했다.


"커피 당기는데, 픽업해서 갑시다."

"저기, 커피맛 괜찮다 하더라고요."


제주 1년 차 새내기인 내가 카페 '데스틸'을 추천한다. '아마 저기가 한라산일걸요...'라는 안내 밖에 못하는 날 믿고, 그들은 카페 문을 힘차게 밀고 들어간다. 하여간 순진해, 순진하다고. 


근데 헉. 대박, 이 카페 사장님 뭐야? 


이 카페를 짓기 위해 '데스틸'이라는 미술사조에서 힌트를 얻고 네덜란드를 다녀오고, 직접 의자와 조명, 스피커까지 하나하나 디자인하고 세팅했다 한다. 


네덜란드에서 직수입한 커피머신 4,000만 원짜리에 눈이 휘둥그레지고, 상하수도 뚫느라 자비 9,000만 원 들였다는 얘기에.


... 우린 뒤로 뒤집어진다.


수다가 참, 품격 있고 개성 있고 고급스럽다. 그럼 이 분이 이번 여행의 최강 수다왕인가?


여하간 자기 공간을 이렇게 지조 있게 개성 있게, '원하는 대로' 만들어가는 카페 사장님에게.


Respect!!!


박수를 보낸다. 아마 우린 그럴만한 배짱도 끈기도... 그리고 아마 돈도 없을걸....?


우리 집 앞에도 상하수도 시설을 직접 자비 들여했다는 분이 또 계신다. 하여간 제주는 조심해야 해. 잘못했다간 몇 천만 원 내 돈 내가며, 상하수도 시설까지 직접 뚫어야 하니... 그렇지 않으면 내가 산 땅을 집을 포기해야 하는, 아주 아주 무서운 곳이니까.


5. 그래도 최강의 수다왕은? 바로바로~


우리다. 


제주에 왔는데, 밥 한 끼 안 먹이고 보낼 수 없다는 남편의 꽤 휴머니즘 발언에 홀딱 넘어가, 난 커피 한 잔 먹여보내는 소소한 이벤트에서 갑자기 바베큐에 불멍하고 고구마까지 꿔먹는 대형 이벤트로 급변경한다. 


멤버들은 우리 집에 들러 처음 만난 남편과 얼굴을 트고, 까뭉이의 선호를 등급별로 확인받는다. 


고기 꿔먹고 불멍하는데, 바람 미치게 부는 제주에 바람 한 점 없다.  복도 많다. 조금 더 더우면 모기가 극성이고, 바람 조금 더 불면 돌멩이 날아다니는데...


깜깜한 밤하늘에 별도 보이고, 우리는 남편이 손도끼로 1년 동안 정성껏 패 놓은 장작을 아끼지 않고 다 때면서 늦게까지 수다를 떤다. 

마당에서 불멍.

멤버들이 숙소로 떠나고, 남편이 뒷설거지를 하며 묻는다. 


"진짜 놀랍다. 무슨 얘기를 그렇게 오래 하냐?"

"몰라, 그냥 이런저런 얘기하다 보면 끝이 없어."

"그게 다 마음이 서로 잘 맞아 그러는 거야. 복이다 복!"


남편이 부러움 섞인 눈빛을 쏘고, 난 은근 뿌듯한 표정을 짓는다. 


4박 5일 일정이 끝나고 최강의 수다왕들이 모두 뭍으로 돌아갔다. 나도 여행을 끝내자마자 뭍으로 가는 비행기에 올랐다. 항암치료 중인 아버지의 병시중을 들기 위해.


"숨이 이실 때 나와야 한다."


70년 물질에 사고 한번 없었다는 해녀 할멍의 비결이었다. 


숨이 남아있을 때 더 이상 욕심내지 말고 위로 올라와야 한다는 것. 어쩌면 그게 우리 인생의 비밀이 아닐까? 


아무리 현실이 날 끝까지 밀어붙이더라도, 심리적 바운더리가 무너지기 전에 물 위로 올라와 휘익 휘익 '숨비소리'를 내뱉어야 한다는 것.


나, 잘 살고 있다는 신호, 그리고 앞으로도 치열하게 잘 살아낼 거라는 서로가 확인해주는 숨소리.


난 독서모임 멤버들이 나에게 선물한 4박 5일, 따뜻하고 행복한 여행 기운을 가슴에 꾹꾹 눌러 담고 씩씩하게 비행기에 오른다. 


나, 기운 없어 더 이상 못 따라간다 나가떨어질 때까지, 함께 어디든 여행 다닙시다. 휘익 휘익 서로가 내뱉는 숨비소리를 확인하면서, 누구도 대적하기 힘든 최강의 수다를 길게 떨면서.


최강의 수다왕, 꼬꼬행 독서모임 멤버들, 다.

우리는 제주 여행 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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