꼬꼬행 독서모임 멤버들과 함께 한 경주 여행
독서모임 멤버 세 명과 경주로 여행을 갔다.
책도 미리 세권 읽고, 미진한 느낌에 '사찰의 비밀'이라는 책도 더 읽었다. 와우!
그런데,
"헐, 망했다!"
경주국립박물관 해설사 투어를 5분 들어보고 든 생각이었다. 아주머니 해설사는 북적대는 소음 속에서 마스크까지 쓰고 웅얼거리시다 뱉은 말을 도로 다 입에 집어넣으신다.
이를 어째. 난 연대기에 신라가 건국도 되기 전에 흥미를 잃어버린다.
그런데 어디선가 귓구멍에 박아 넣듯 소음을 뚫고 조근조근 해설이 들려온다. 고개를 돌려보니, 벙거지 모자를 쓴 중년의 남자분이 초등 남자아이 둘을 데리고 해설 중이다.
순장 때 함께 묻힌 시신은 죽인 다음에 묻은 거다,
금관은 실은 머리에 쓰는 왕관이 아니라 얼굴을 덮는 얼굴 덮개라는 둥.
얘기 풀어내는 품새가 아이들 아버지는 절대 아니다. 우리나라 초등 아버지 중에 그렇게 할 수 있는 사람은 단언컨대 없다. 우리 멤버들은 하나둘 초등학생 뒤에 슬그머니 따라붙는다.
현명한 선택이다.
간간히 퀴즈도 내고, 궁금증도 자아내게 후렴구도 친다. 역사와 문화와 유물을 엮어내는 능력이 좋다. 애들은 하품도 하지 않고 코딱지를 파지도 않는다. 이렇게 재미없는 박물관에 애들을 무려 1시간을 잡아두다니...
고수다.
박물관 밖으로 나와 붙임성 좋은 우리는 말을 건넸다.
"아우, 너무 재밌고 유익했어요. 혹시 전문 해설사세요?"
"네. 경주에 공부하러 왔다 눌러앉은 지 벌써 14년 됐어요."
사연을 듣고, 명함을 받고 고맙다 여러 번 인사하고 뒤돌아섰다.
다음날 일정은 불국사다. 차를 주차해 두고 불국사로 올라간다. 근데 의외로 사람이 없다.
뭐지? 석가탄신일이 다가오고, 날이 미치게 좋은 주말인데.
"와우. 너무 이 길 좋다."
"나무 냄새, 너무 좋지 않아요?"
"왜 이리 사람이 없어? 너무 좋은데."
우린 느긋한 대화를 나누며 불국사로 향한다.
근데, 불국사에서 또 벙거지 해설사를 만났다. 이번엔 초등학생을 포함한 가족 투어다.
"어, 안녕하세요?"
반갑게 인사하며 또 그 뒤를 따라붙는다.
우린 한 마디라도 유용한 지식과 정보를 주워듣느라 바짝 그 뒤를 쫓는다. 눈앞에 찬란한 신라의 유산이 보이는데, 우리는 해설사 말을 놓칠까 봐 신경이 더 쓰인다. 멋진 포토존에서 사진도 찍고, 어떻게 해야 좀 더 풍요로운 여행을 할 수 있는지 팁도 듣는다.
그러다 인사를 하고 헤어져 내려왔다.
헐? 주차장이 만원이다.
여긴 왜 이렇게 붐벼? 알고 보니 우리가 올라갔던 길은 지름길이 아닌 불국사 뒷길이었던 것.
잠깐 길거리에 앉아 쉬는데, 멤버 중 누군가가 말했다.
"아, 커피 두고 왔다."
"아하, 아깝다. 그거 보고 와야 했는데. 대웅전 불상 뒤편에 불화랑 500 나한."
그제야 우리는 놓친 게 하나둘 생각났다.
시간은 걸렸지만, 휘적휘적 뒷길을 걸으며 나무 냄새를 맡고 올라오는 것.
어설프지만, 읽고 온 책의 내용을 기억하며, 아하! 이게 그거였구나 소소하게 깨닫는 것.
효율적이진 않지만, 커피 쪽쪽 빨며 노랑 빨강 연등 이쁘다 천천히 눈에 담아보는 것.
그게 더 소중할 수도 있겠다 싶었다.
10년 전 피렌체 우피치 미술관 해설사가 생각났다. 와우! 감탄이 날만큼 멋진 해설이었다. 무려 1시간 반을 고개를 끄덕이며 감탄하고 나왔는데... 좀 지나고 나니 기억나는 게 하나도 없었다.
그건 해설사의 지식이었지, 힘들게 책 읽고 얘기하고 정리하고 암기하고 머릿속에 넣고 와, 들여다보며 확인했던 내 지식이 아니었던 것.
It's unbelievable how much you don't know about the game you've been playing all your life.-미키 맨틀 (우리는 자신이 평생 해온 경기에 대해 놀랄 만큼 무지하다.)
살아볼수록 모르는 인생.
뭘 알았다 해도 나중에 보면 그게 아닌 게 숱한 시간들.
그렇지만
머릿속의 지식이 뿜뿜 뿜어져 나오는 전문가는 아니어도,
어설퍼도,
부족해도,
그냥 지금처럼 느릿하게
조금만 애를 써가며 내 속도로 살아가야겠다.
왜냐면 그게 나니까.
내가 바로 내 삶의 어설픈 전문가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