트랜이탈리아에 보낸 눈물의 메일

작두 타는 무당에게 물어보고 싶은 말

by 글쓰는공여사

루트를 한 달 만에 겨우 확정 짓고, 교통편 예약에 돌입했다. 방심한 클릭 한 번으로 손해라도 보면 어쩌나 불안한 마음에, 간은 콩알만큼 쪼그라들고, 마우스를 잡은 손에는 경련이 인다. 런던에서 스페인 바르셀로나는 저가항공 이지젯 EasyZet으로, 로마까지는 부에 링 Vuelling으로 예약을 했다. 서툰 예약을 끝내고 확인 메일을 받으면, ‘참 잘 했어요.’ 도장 받은 아이처럼 뿌듯한 마음에 잠을 푹 잤다.


다음은 도시와 도시를 이동하는 열차편 예약이다. 유럽 전역을 자유롭게 여행하는 유레일패스로 할까, 도시마다 따로 구간권을 끊을까 고민이었다. 여행 경비를 조금이라도 아껴야지 하는 부담감이 컸다. 1유로까지 엑셀 프로그램으로 계산하고 결정하는 젊은이들의 글을 읽으면 기가 팍 죽었다. 아는 것도 없고, 검색도 더디고, 넉넉한 여행자금이 있는 것도 아니고, 잘못된 선택에 책임질 결단도 부족했다.


새벽까지 생소한 역 이름을 지도에서 하나씩 찾아 익히고, 나라와 도시를 이동할 교통 편과 스위스 패스, 융프라우패스와 할인 티켓까지 챙기고 있자니, 내가 미쳤다고 유럽여행을 간다고 고개를 끄덕였던고, 내 발 등을 찍고 싶었다.

잠깐 까무룩 잠이 들었다, 이불 삼아 덮고 잔 지도를 헤치고, 아침마다 딸내미 밥 챙겨준다고 방문을 열고 나왔다. 눈은 벌겋게 충혈되고, 머리는 부스스 산발한 채. 그런 엄마를 보고 딸내미는 많이 불안했을 게다. ‘엄마가 미안해. 너무 복잡해서 뭐가 뭔지 모르겠어. 우리 여행 접으면 안 될까?’라고 말할까 봐. 나와 눈도 안 마주치고, 차려준 아침을 후다닥 먹어치우고, 딸내미는 집을 뛰쳐나갔다. ‘오늘도 무사히.’를 외치며.


고민이 깊어졌다. 혹시 현명하고 경험 많은 누군가가 단번에 내 고민을 해결해 줄지도 모른다는 어리석은 기대를 품고, 인터넷에 글을 올리니 답글이 달렸다.


“모두 계산해보고 이익이 되는 쪽으로 하세요.”


맞는 얘기다. 모두 계산이 안 되고, 이익 되는 쪽이 어느 쪽인지 모르니까 문제지. 만사가 귀찮아졌다. 머릿속에 억지로 집어넣은 낯선 지명도, 숫자도 다 꼴도 보기 싫다. 이러다 방울 딸랑거리며 작두 타는 무당에게 물어보러 갈까 두렵다.


‘무슨 일로 왔어?’

‘유럽여행 가는데, 유레일패스로 갈까요? 구간권으로 갈까요?’

‘......’


무당 기막히게 할 질문이다.

그냥 구간권으로 하자. 세상에 태어나 딸내미와 유럽여행을 처음 가니, 이런 모든 과정이 새로움이고 배움의 과정인데, 여행 사전에는 없는 ‘최선’과 ‘최상’만을 찾아다녔으니, 여행 준비는 고단하기만 했다.


이탈리아 철도청, 트랜이탈리아에서는 탑승 티켓을 저렴한 가격에 몇 개월 전에 한정 수량을 판매한다. 우리는 이탈리아 베네치아에서 스위스 도모도솔라 가는 슈퍼 이코노미 티켓이 필요하다. 하지만 얼리버드가 맛있는 벌레를 먹으려면, 느려터진 인터넷 속도와 절대 한 번에 성공 못한다는 전설의 결제 과정을 통과해야 한다.


심호흡을 크게 하고 악명 높은 트랜이탈리아에 접속했다. 오늘의 미션은 반짝거리며 떠 있는, 7월 31일 자 16유로 슈퍼 이코노미 티켓 2장을 먹는 거다. 이탈리아 이민 서류를 꾸미는 것도 아닌데, 뭘 입력하라는 것도 많다. 벌레 먹고 싶은 얼리버드는 에러 나면 어쩌나 조마조마하면서도 하라는 대로 다 한다.


예상했던 대로 마지막 결제에 발목이 잡힌다. 익스플로러에서 안 되나 싶어 크롬 깔고 모든 과정을 반복했는데도 오류가 난다. 무려 세 시간을 오는 전화 다 무시하고, 화장실 가는 것도 미루며 입력을 거듭한다. 정신이 혼미하다. 누가 나 좀 말려줘요. 집에는 밤새 쳇바퀴 굴리느라 피곤해서 자기 가시 덮고 자는 고슴도치밖에 없다.


결제가 진행되는 것처럼 화면이 넘어가더니 ‘에러 101’이 뜬다. 그게 뭔지 설명도 없다. 이쯤 되면 욕 나온다. 욕하는 것도 배워야 잘 할 수 있는 엄연한 기술이지만, 평소에 딱히 욕하는 것을 즐겨 하는 사람들이 주위에 없으니, 배울 기회도 적다. 욕은 얼음처럼 차가운 마음으로, 외워서 머리로 해야 최대 싸늘한 효과를 거둔다 하는데...... 차가운 마음은커녕, 뜨거워진 머리 뚜껑 열리고, 자판과 마우스에 그동안 쌓인 먼지가 탁탁 털린다. 우리나라 욕으로는 분이 안 풀린다. 검색창에 ‘이탈리아 욕’을 입력하고 엔터키를 누른다. 내가 제정신이 아닌 게 분명하다.


께 깟쬬 ~ 화날 때, 짜증 날 때, 울화가 치밀 때 널리 쓰이는 이탈리아 욕.


바로 내가 원하는 그거다. 강한 발음까지 마음에 든다.


“께 깟쬬! 께 깟쬬! 께 깟쬬!”

이성을 잃고 새로 배운 이탈리아 욕을 집중, 반복해서 연습한다. 급성 중독이나 전염병 따위로 말미암아 의식 장애를 일으켜 지각, 기억, 주의, 사고 따위의 지적 능력을 일시적으로 잃어버린 상태, 즉 정신 착란을 일으킨다.

내가 모르고 있던 또 다른 자아가 여행 준비하며 모습을 드러낸다. 오십이 코앞인데, 상황을 있는 그대로 냉정하게 바라보기는커녕 컴퓨터 화면에 대고 이탈리아 욕을 내뱉는 내 모습이라니. 뒤끝작렬에 유치의 끝판왕이다.


혼자 게거품 물고 쓰러지기 직전, 다행히 딸내미가 학교에서 돌아왔다. 현관문 열자마자 배고프다고 징징대는 딸내미를 가방 벗을 틈도 주지 않고, 끌어다 모니터 앞에 앉힌다.


“딸냄! 네가 엄마 대신 그놈 뜨랜이딸리아에 꼭 복수해 줘야 돼. 알았지?”

열세 살 교복 입은 딸내미를 강력한 파이터로 내세우며, 흥분을 감추지 못한다. 이젠 다 죽었어, 뜨랜이딸리아. 어느새 내 입속에서 ‘트랜이탈리아’는 ‘뜨랜이딸리아’가 되어있다.


배고파 먹을 것만 눈에 어른거리는 불쌍한 딸내미는 반쯤 넋이 나간 엄마의 퍼런 서슬에 주눅 들어, 어쩔 수 없이 복수의 칼을 뽑아든다. 컴퓨터 OS를 다시 깔아야 하네 어쩌네 계획만 거창하게 세우더니, 정작 뽑은 칼은 한 번도 휘둘러보지도 않고, 수학학원 갈 시간 되었다며 쪼르르 퇴장하고 만다. 뜨랜이딸리아에 복수할 때까지는 학원도 학교도 안 보내고 싶다! 미치기 일보 직전이다. 빨리 예매해야 하는데, 이러다 슈퍼 이코노미 다 없어지는데..... 32유로, 오만 원도 안 되는 돈에 내 오장 육부가 다 녹아난다. 인간의 집착은 이리 무섭다.


드디어 늦은 밤, 우리 집 최강 파이터, 비밀병기 컴도사 남편을 뜨랜이딸리아 복수극에 출전시킨다. 옷을 갈아입는 남편 뒤를 졸졸 쫓아다니며, 하루 종일 나를 괴롭힌 뜨랜이딸리아의 만행을 샅샅이 고해바친다.


“남편이 꼭 해결해줘야 해. 나, 컴퓨터 부수기 일보 직전이야.”

“알았어. 내 컴퓨터에서 해보자. 로그인, 그다음엔 출발지, 목적지, 슈퍼 이코노미, 이거? 이거? 맞지?”

“응. 맞아. 바로 그거, 그거.”



단계를 순서대로 밟아가는 남편과 신호를 주고받으며, 예매 과정을 떨리는 심정으로 지켜보았다. 남편이 카드 정보를 넣고 결제 승인을 기다리는 그 짧은 순간, 입술은 빠짝빠짝 마르고 숨도 안 쉬어졌다. 침묵의 몇 초 후, 줄무늬선이 띠리링 띠리링 뜨며 결제 완료 문장이 뜬다. 이게 뭔가? 하루 종일 난리 블루스를 쳐도 안 되었는데...... 딸내미와 감격에 겨워 얼싸안고 소리를 질렀다. 이렇게 부둥켜안고 좋아하기는 내가 중 3 때, 주택복권 500원 당첨된 이후로 처음이다. 온 식구가 삶은 달걀 찍어 먹던 소금 그릇 다 엎어가며 좋아했었다. 드디어 우리도 슈퍼 이코노미로 여행하는 진정한 얼리버드 여행자가 된 거다.




스토리가 딱 여기서 해피엔딩으로 끝나야 했는데, 하루가 길어도 너무 길다. 잠시 후 받아본 확인 메일에는 7월 31일이 아닌 8월 1일 날짜가 선명하게 찍혀있었다. 그럴 리가 없는데, 내가 옆에서 확인하고 또 확인했는데...... 내 하루를 예약 전쟁으로 모두 날리고, 내 손에는 ‘절대 환불 불가’ 잘못 예매한 티켓만 남게 되다니...... 내가 얼마나 한심한지, 왜 이리 바보 같은지, 비참한 패잔병 기분이 들었다.


이성적인 남편은 차분히 오류를 찾아나갔다. 뜨랜이딸리아는 원하는 날짜의 열차편뿐만 아니라, 조그만 별표 아래에 다음날 열차편까지 보여주었고, 우리는 그 다음날 열차 티켓을 클릭했던 것이다. 지난 일에 연연해하지 않는 남편은 제대로 된 날짜의 티켓을 다시 예매해주며, 잘못된 티켓은 잊어버리라 한다. 맞는 말이긴 한데......


옆에서 시시각각 변하는 엄마의 표정을 지켜보던 딸내미가 슬그머니 자기 방에 들어갔다 나오더니, 넋 놓고 앉아있는 내 손에 뭔가를 꼬옥 쥐여준다.


“엄마! 이것 갖고, 잘못된 티켓은 잊어버려.”


신사임당 얼굴이 박힌 오만 원 지폐 한 장이다. 초등학교 3학년 때부터 6년째 용돈 기입장을 쓰고 있는 구두쇠 딸내미다. 그런 아이가 자기 한 달 용돈을 넘는 거금 오만 원을 엄마 손에 쥐여준 거다. 불안했구나. 32유로 때문에 비행기 예약 모두 취소하고 ‘딸냄~ 미안해.’라고 엄마가 말할까 봐. 그런 딸내미의 마음을, 눈물 그렁그렁 한 표정에서 읽었어야 했는데...... 엄마 자격 한참 모자란 나는 그러지 못했다. 손해 본 뜨랜이딸리아 32유로 티켓만 머릿속을 굴러다녔다.


기필코 환불받고야 말겠다는 각오로, 산도 허물고 바다도 메울 기세로 컴퓨터 앞에 달려들었다. 새벽까지 ‘슈퍼 이코노미 환불’ 글을 샅샅이 검색해서 읽고, 뜨랜이딸리아에 10% 이성과 90% 감성으로 버무린 눈물의 메일을 써서 보냈다. 1차 메일 공격을 완수하고, 내일 감행할 2차 전화 공격을 구상하며 잠이 들었다. 전화는 몇 시에 하지? 시차는 몇 시간이더라? 이탈리아 말은 ‘께 깟쬬!’ 욕밖에 모르는데......


며칠 동안 32유로를 환불받고야 말겠다는 미친 생각만 하다가 찬물을 뒤집어쓴 듯, 정신이 번쩍 드는 글을 발견했다.


“...... 절대 변경 환불 불가라는 슈퍼이코노미를 잘못 예약하고, 환불해달라고 메일을 트랜이탈리아에 수십 통 보내고, 밤낮으로 전화하고 귀찮게 해서, 환불을 받아내는 게 뭔 대단한 일을 했다고 글을 올리는지, 그것은 전체 한국 사람에 대한 이미지에 먹칠하는 것과 다름없습니다. 떼거지로 몰려들어 한국 사람들이 내 돈 내놔라 하는 것과 다름없습니다. 긴 여행 떠나는 입장에서, 환불받지 못한 얼마간의 유로가 아낄 수 있다면 좋을 돈이겠지만, 자신의 실수를 담담히 인정하고 가는 게 맞다고 생각합니다.”


절대 손해는 보지 않겠다고 바득바득 그런 메일을 써서 보낸 내가 창피하고 부끄러웠다. 마음 씀씀이가 밴댕이 소갈딱지다. 여행 떠나기도 전에 발견한 내 자아는, 줏대 없이 흔들리는 팔랑귀에, 콩알만 한 간에, 밴댕이 소갈딱지에 뒤끝작렬에 유치 끝판왕이다. 이런 자아로는 런던은커녕 인천국제공항까지 기어갈 자존감도 남아있지 않을 성싶다.


한 달이 지나 환불해주겠다는 답장이 왔다. 손해는 안 보고 환불 목표를 달성했는데도 허탈했다. 침 흘리는 꼬맹이들 제치고, 막무가내 떼써서 나 혼자 막대사탕 차지한 어른 같았다.


“가장 중요한 것은 가장 중요한 것을 기억하는 것이다.”-스즈키로쉬


나에게 중요한 것은 여행을 준비하는 소중한 나의 시간 속의 경험이었을까? 결과로 얻게 된 막대사탕이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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