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국 런던] 공항에서 줄 안 서도 된다고요?

제발 비행기 기장 목 조를 일은 안 일어나길

by 글쓰는공여사

런던 떠날 날이 다가오니 아직 가보지 못한 곳에 미련이 남았다. 길치에 몸치, 첫 유럽여행, 첫 도시에 그만큼 봤으면 잘했다 위안 삼으면 되는데 경험하지 못한 것만 들춰내며 아쉬워한다.

“코톨드 갤러리도, 햄리스 장난감 백화점도 재밌었을 거야...... 더샤드 전망대는 야경이 멋있다던데...... 메가 버스 예약해 놓고 옥스퍼드 대학도 못 가봤네.”


여행 중에 만난 배낭족에게, 런던 6박 7일 동안 근교를 한 번도 못 나갔다 얘기했더니, 심란한 내 마음에 불을 확 싸지른다.

“그럼, 그동안 뭐했어요?”

“......”

뭐했는지 그렇게 단도직입적으로 물으니 말문이 막힌다. 길 잃고 헤매고, 아침엔 늦잠 자고, 숙소에서 가장 늦게 어슬렁거리고 나오느라 그랬다! 어쩔래? 마음이 심란할 땐, 이성이라는 놈은 항상 멀리 출타 중이다.


런던 떠나는 걸 못내 아쉬워하는 나를 딸내미가 위로한다.

“엄마는~~~ 못 보고 남겨놓고 가는 게 있어야, 또 올 거 아니야~~~ 너무 섭섭해하지 말고, 아빠랑 다시 와.”


아마 내 인생에 영국을 다시는 와보지 못할 거라는 불안이 있었나 보다. 런던뿐 아니라, 바르셀로나, 로마, 파리 등을 여행하고 그 도시를 떠날 때에도 매번 미련이 남았다. 나중에 두고두고 되씹을 추억을 잔뜩 담아가는데도...... 인간의 욕심은 끝이 없다.


_7151108.jpg 공항 가는 길에 이동 중인 버스에서 찍은 런던 풍경

5개 나라, 8개 도시를 여행하는 일정이라, 이동하는 날이 몸도 마음도 가장 힘들다. 비행기는 제 때 탈 수 있을까, 숙소는 제대로 찾아갈까 걱정부터 한다. 비행기 놓치거나, 숙소 못 찾아가면 그때 해도 되는 고민을 미리 다 한다. 무거운 캐리어 끌고 딸내미 챙기면서, 낯선 거리를, 지하철 계단을, 어두운 골목길을 걸어 다녀야 하니 안전에도 마음이 쓰인다. 처음 가는 길이고, 잘 알지 못하니 불안하고 걱정되는 건 당연하다 생각하면서도, 내 목소리와 행동에는 긴장과 서두름과 불안이 고스란히 묻어 나온다.


처음에는 숙소 이동하는 날 덥다고 반바지를 입었는데, 캐리어 끄느라 다리가 여기저기 긁히고 멍들고 상처투성이가 되고 보니, 이동하는 날에는 아무리 더워도 무조건 긴 청바지를 꺼내 입는다. 사소한 경험도 우리를 조금은 현명하게 만든다.


영국 런던을 떠나 스페인 바르셀로나로 이동하는 날이다. 먼저 개트윅 공항에서 저가항공 이지젯 비행기를 타고, 바르셀로나 엘 프랫 공항에 도착해야 한다. 개트윅 공항은 생각보다 규모가 컸다. 이지젯 항공사 데스크에는 벌써 줄이 꼬불꼬불 길게 늘어서 있다. 이지젯 항공사는 수하물 분실로 악명이 높지만, 유럽여행 배낭족들의 가벼운 주머니는 ‘저가’라는 장점을 결코 무시하진 못한다.


엉덩이를 붙일 곳도 없이 서 있자니 다리가 배배 꼬이고, 아침부터 부산 떨며 움직였던 피곤함이 몰려온다. 딸내미는 요리조리 최대한 편한 자세를 시도해보더니, 유칼리나무 끌어안고 자는 코알라처럼, 바닥에 앉아 캐리어를 두 손으로 끌어안고 눈을 감는다. 아무데서나 잘 잔다. 그만큼 십 대의 적응력은 뛰어나고, 유럽여행 중인 딸내미는 피곤하다.


절차가 익숙해질 만큼 비행기를 많이 타본 것은 아니지만, 매번 비행기 탑승 수속은 낯설고 비행기 타는 시간은 고역이다. 일찍 도착해서, 줄 서서 티켓 확인받고, 수하물 부치고, 몸수색까지 번거로운 탑승절차를 마치고 비행기에 올라타도, 좁은 좌석에 몸을 구겨 넣고 구름 위에 떠있어야 하고, 거기에 비행기라도 흔들리면 게임 끝이다.

_7161206.jpg 바르셀로나로 향하는 비행기에서

심장은 뛰고 숨은 안 쉬어지고 호흡은 가쁘다. 눈을 질끈 감으면 어지럽기까지 하다. 급하면 옆에 앉은 사람이 남편이든 딸내미든 낯선 외국인이든 손을 더듬어 꼬옥 잡는다. 낯선 외국인들은 나의 더듬는 손길에 처음에는 성추행범이라도 만난 듯 흠칫 놀란다. 그러다 이내 손 주인의 하얗게 질린 얼굴을 확인하고, 안쓰러운 마음에 손을 뿌리치지도 못하고, 내가 손을 스스로 놓을 때까지 꼼짝 못 하고 잡혀있다. 그 시간은 무작위로 내 옆 자리에 앉게 된 그들에게 주어진 어쩔 수 없는 숙명의 시간이다.


죽어본 적이 없으니 죽을까 무서운 것은 당연한데, 유독 비행기에서는 다른 사람보다 공포가 더 크다. 그나마 그럴 때 나를 안심시키는 것은 승무원의 한결같은 미소다. ‘비행기를 수도 없이 타본 승무원이 저렇게 해맑게 미소 짓는 걸 보니, 이 정도 흔들리는 것은 아무 일도 아닌 거야. 그렇지 않고서야 저렇게 평온하게 웃고 있을 리 없잖아.’


말도 안 되는 합리화인 줄 나도 안다. 오늘이 미소 짓고 있는 그 승무원의 첫 비행일 수도 있고, 승무원의 미소는 수많은 교육과 연습의 결과일 수도 있다. 그래도 그들의 미소가 그 순간 위안이 되는 건 어쩔 수 없다. 죽을까 무섭고 두려운 뇌의 ‘반사 체계’가 이성과 합리적인 생각을 관장하는 ‘숙고 체계’를 가볍게 제압하고 이긴다.


한 시간 넘게 줄을 서있다, 겨우 우리 차례가 되었다. 40대 초반의 항공사 여직원은 손을 까닥거려 수신호로 우리를 데스크로 불러들였다. 그녀는 바람결에 휘날리는 듯한 풀 먹인 멋진 스카프를 목에 두르지도 않았고, 친절한 미소를 머금고 ‘안녕하십니까? 무엇을 도와드릴까요?’ 멘트를 날리지도 않았다. 가까이 마주한 직원의 화장기 없는 까칠한 두 뺨에는, 유자껍질처럼 열린 모공과 깨알처럼 박힌 주근깨가 선명하게 보였다.


우리를 불러놓고도, 우리가 캐리어를 끌고 그녀 앞에 서는 그 짧은 순간에도, 옆자리 직원과 큰 소리로 수다를 이어나갔다. 수다 끝에 터진 웃음을 수습하느라, 우리를 쳐다봤을 때도 반쯤 덜 다물어진 입으로 물었다.

“어디 가요?"

“바르셀로나!"

바르셀로나라는 단어에는 악센트가 어디에 있더라? 0.1초 정도 고민하다 어디에도 악센트를 주지 못하고 어설프게 단어를 내뱉었다. 항공사 직원은 내 티켓을 잠깐 내려다보더니 이런 황당한 말을 한다.

“줄 설 필요가 없었는데......”


뭐라고? 줄 설 필요가 없었다고? 한 시간 동안 삐질삐질 쓰러질 듯 줄 서게 해 놓고, 이제 와서 줄 안 서도 된다고? 인터넷으로 예약하고 좌석을 받은 티켓은 줄 설 필요가 없고, 수하물만 보내고 탑승하면 된다는 것이다.

그래! 내가 몰라서 그랬다! 줄 안 서도 되는 티켓이 따로 있는 줄 몰라서 그랬다 치자! 그래도 줄 안 서도 되는 승객들에게 수다 떠는 시간에 한 번쯤은 안내 멘트 날려줄 수도 있잖아? 한 시간 힘들게 줄 서있다 그런 얘기를 들으니, 이성이고 합리고 다 날아가고 짜증만 남는다.


내가 저가 항공사에 거는 기대가 너무 컸나? 물 한 잔도 돈 내고 마셔야 하는 항공사에 그런 친절을 기대한 것은 무리였을까? 그래도 비행기 티켓 싸다고 공항까지 안 가고, 공항 가까운 너른 들판에 비상착륙이라도 해봐라. 그때는 내가 기필코 조종실을 부수고 들어가 Flight 8577 기장 목을 조르고 말 테다.

아무래도 내가 비행기 타야 해서 또 많이 긴장하고 피곤한가 보다.


나의 분함이 가시기도 전에, 다행스럽게 비행기 8577기는 스페인 바르셀로나 엘 프랫 공항에 부드럽게 안착했다.




keyword
매거진의 이전글트랜이탈리아에 보낸 눈물의 메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