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시립 사진미술관 관람기
서울시립 사진미술관이 2025년 5월 29일 문을 열었다. 국내 최초의 사진 매체 특화 공립미술관이다. 부천에서 창동, 결코 가까운 거리는 아니지만 그동안 개관을 기다렸던 미술관이라 토요일 주말 아침 이른 시간 집을 나섰다. 지하철 출구를 나오니 오래된 시장과 상점들이 맞이하였다. 오래된 시장을 조금 벗어나니 바로 미술관이 보였다. 사진미술관의 건축은 일반 공모를 통해 선정된 오스트리아의 야드릭 아키텍투어와 한국의 일구구공도시건축의 협업으로 완성되었다고 한다. 미술관 건축물이 마치 켜켜이 쌓여있는 사진 같아 보이기도 하고 암실 같아 보이기도 했다. 그 사이로 보이는 유리창과 입구가 마치 사진의 세계로 초대하는 것 같았다.
미술관에 들어서면 높이 10m의 로비가 맞이한다. 외관과 마찬가지로 실내 공간도 블랙과 회색 공간으로 사진이라는 매체를 폭넓게 담아낼 수 있도록 구성되었다. 아직 개관 초기라 채워지지 않은 북카페가 조금 아쉽긴 했지만, 비교적 단순한 구조의 건물과 통일된 실내 색감이 안정감을 가져다주었다. 어디에서부터 관람을 할지 고민하다가 포토북라이브러리가 있는 4층부터 올라갔다.
4층은 두 개의 교육실과 암실, 그리고 포토라이브러리가 있었다. 포토라이브러리는 사진 전문 도서관으로 한국 사진사를 중심으로 한 사진집과 사진문화사 전반의 흐름과 경향을 연구할 수 있는 사진집, 도록, 희귀 도서 등이 구비되어 있다. 흥미로웠던 점은 도서관이 작은 전시, 컬렉션을 품고 있다는 점이었다. 서가 사이사이 <자료 컬렉션 안내 Vol.1>라는 리플릿이 배치되어 있다. 이 리플릿은 사진미술관이 소장하고 있는 주요 도서 및 자료를 연구자와 함께 연구하고 정리해, 이용자들이 국내 사진문화의 변천과 흐름을 보다 쉽게 파악할 수 있도록 제작하였다. 현재는 ‘눈빛출판사 전집’, ‘동강국제사진도록’, ‘마포디자인출판지원센터 기증도서’, ‘류가헌 출판물, 뷰스페이퍼 전집’ 등 여섯 개의 컬렉션이 서가별로 소개되어 있다. 서가의 모양도 흥미로웠는데 서가 앞부분이 둥글게 뚫려있어 서가를 대표하는 자료를 소개하기도 하고 직접 꺼내 읽을 수도 있도록 했다. 크지 않는 공간이었지만, 알찬 큐레이션으로 전시를 관람하는 것 같이 한참 머물렀다.
개관전시로 두 개의 전시가 준비되어 있었다. 첫 번째 전시는 《광채光彩: 시작의 순간》으로 사진미술관 개관을 기념하여 10여 년간 수집한 소장품 중 한국 사진사에서 중요한 전환점을 만든 정해창, 엄석제, 이형록, 조현두, 박영숙의 작품을 조명하는 전시이다. 이 전시를 관람하면서 ‘어떤 사진이 예술 작품이 될까?’라는 질문을 하게 되었다. 누구나 쉽게 하루에도 몇십 장씩 사진을 찍는 시대에, 어떤 사진을 예술로 정의할 수 있을까. 전시의 제목처럼 한국 사진문화사에서 사진을 ‘예술작품’으로 자리 잡아 온 여정을 살펴보는 전시였다. 사진을 기술에서 예술로 전환한 순간들에 주목한다. 가장 인상적인 사진은 첫 번째 전시인 정해찬의 전시이다. 한국인 최초로 개인 사진전을 열러 사진을 예술 제도 속에 위치시킨 선구자라고 한다. 마치 근대 회화를 사진으로 만난 것같이 고풍스럽고 고요하다. 그리고 다섯 명의 작가 중 유일한 여성작가인 박영숙의 사진이 인상 깊었다. 현대적인 얼굴의 여성들이 화면을 채운다. 전시된 작품이 1960년대 사진을 중심으로 전시되었다고 하니 이후 작품의 변화도 궁금하다.
두 번째 전시는 개관 특별전 《스토리지 스토리》이다. 전시 제목인 ‘스토리지 스토리’는 미술관이 위치한 창동(倉洞)에서 출발했다. 곡식을 저장했던 ‘창(倉)’의 의미를 예술적 해석과 역사적 맥락이 교차하는 ‘저장소(storage)’를 너머 기억과 창작으로 ‘이야기(story)’의 공간으로의 확장성을 여섯 명의 사진작가의 시선을 통해 재구성한다. 이를 위해 사진 매체의 대표 속성을 재료, 기록, 정보로 정의하고 여섯 명의 작가와 함께 건립 과정에서 수집된 소장품과 자료, 지역의 맥락을 탐색하며 사진미술관의 형성 과정을 ‘살아있는 서사’로 다시 풀어내었다. 건립과정의 아카이브를 작가의 시선과 창작을 통해 새롭게 재창작했다는 점에서 흥미로웠던 전시이다. 여섯 명의 전시 중 가장 인상 깊었던 작품은 주용성의 작품이었다. 작가는 구술과 문헌을 토대로 사라진 장소의 흔적을 수집하고 사진을 재구성하며 사라진 장소의 기억과 시간을 복원한다. 사람과 장소, 기억을 잇는 사진 작업을 통해 창동이라는 도시를 새롭게 만날 수 있었다.
이제 첫걸음을 시작한 서울시립 사진미술관, 이제 정성스럽게 준비한 전시와 공간을 만나면 마음이 설레기도 하고 부러운 마음이 들기도 한다. 내가 일하는 도시, 사는 도시에도 이런 문화공간이 생겼으면 하는 마음에. 사진미술관이 생기면서 어떻게 사진의 다양한 얼굴을 만날 수 있을지 기대가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