난 한때 식사장애가 있었다. 거의 먹지 않거나, 한꺼번에 먹은 뒤 모조리 토했다. 우울증 때문에 생긴 것이다. 까스활명수를 박스째 사놓고 마셨다. 몸무게를 줄이고 싶은 마음은 전혀 없었다. 내 마음대로 할 수 있는 일이 아무것도 없던 시절, 먹고 토하는 일만은 나의 통제 안에 둘 수 있었다. 손가락을 목구멍에 넣어서 음식물을 토하면, 위가 뒤틀리면서 짧은 경련이 일어났다. 온몸을 부르르 떨며 입가에 묻은 오물을 대충 닦았다. 내 위는 점점 망가졌지만 기분은 좋았다.
나는 자기 파괴적인 행동을 즐긴다. 정상적이지 않다. 대표적인 예가, 고통스러운 기억을 끊임없이 소환해서 나를 괴롭힌다. 내가 느꼈던 무력감과 분노, 슬픔 따위를 여러 번 곱씹는다. 복수를 하기 위해서가 아니라 오로지 나를 아프게 하려고. '망각'이란 단어는 내게 익숙하지 않다.
고통은 친숙한 존재다. 평온한 상태의 '나'를 쉽게 받아들이지 못한다. 아무리 벗어나려고 해도 빠져나오지 못했던 10년 전 그 사건은 내 삶에 심각한 트라우마를 남겼다. 잘해보려고 노력할수록 일은 이상하게 꼬여서 악화되었다. 밤늦게 전화해서 자신의 말만 하고, 내가 말하는 도중에 그냥 전화를 끊어버린 학부모. 고발하겠다는 격한 목소리. 청소시간엔 늘 도망가거나 쓰레기통을 발로 걷어차 교실을 엉망으로 만든 녀석들. 보란 듯이 교과서를 펴지 않고, 교실에서 영웅놀이를 하던 녀석들.
나는 종례 후 모두 떠난 빈 교실에 서서 얼마나 울었던가. 나는 여전히 그들 중 한 명이 나를 찾아올 것 같은 불안감을 가지고 있다. 나는 내가 만난 모든 학생들에게서 무사히 잊히고 싶고, 그들이 제 삶을 열심히 살아 나를 잊어주길 바란다. 누구와도 악연을 만들고 싶지 않다.
나를 알아봐 주는 존재가 단 한 명이라도 있다면
몇 년 전 맡은 담임 반도 엉망이었다. 10년 전 그 반보다는 나았던 이유는 담임에 대한 반감을 가진 학생들이 그나마 적었고, 그동안의 경험이 쌓여서 나 역시 학생들의 마음을 읽어주려고 노력했기 때문이다. 게다가 내가 힘들다는 걸 알아채고 나를 무진장 도와주던 학생이 3명이나 있었다.
이 세 녀석들은 희한하게도 똘똘 뭉쳐 다녔다. 공부를 잘하지도 않았고, 소위 잘 나가는 무리에 속하지도 않았으며, 딱히 이렇다 할 눈에 띄는 점이 없는 조용한 인물이었다. 그들은 누구보다도 반의 조화와 평온을 위해 힘썼다. 내가 놓치는 부분을 몰래 일러주거나, 내게 슬그머니 다가와 "쌤, 뭐 도와줄까요?" 이렇게 물었다. 사고를 치고 이런저런 문제를 일으키는 녀석들 때문에 내가 허걱 댈 때마다 "오늘도 힘드네요." 이런 애처로움이 담긴 말을 툭 던졌다. 때론 우스갯소리처럼 "선생님은 역시 힘든 직업이군요."라는 말도 했다. 나는 그럴 때마다 그들의 눈을 바라보며 씁쓸한 웃음을 짓곤 했지만 마음 한편은 안심이 되었다. 나를 이해해주는 존재가 있다는 사실 때문에 외롭지 않았다.
솔직히 말하자면, 나는 내가 만난 모든 학생들을 잊고 싶다. 좋든 싫든 현재 일만으로도 복잡한 내 머릿속에 아무도 남아 있지 않길 바란다. 다만, 이 세 녀석들은 나도 어쩔 수 없다. 문득 떠오른다. 지난달에 한 녀석을 우연히 만났다. 키가 훌쩍 커버려서 어색했지만 그 선한 눈빛과 싱글거리는 입매는 여전했다.
그 녀석들은 내게 특별한 사실을 알려주었다. 교사 역시 학생들로부터 어떤 것을 배울 수 있다고. 그들은 결코 미성숙하거나 마냥 어린 존재가 아니다. 다른 사람의 아픔을 돌볼 수 있는 여유와 그것을 실천할 수 있는 용기도 가지고 있다.
그들이 선한 행동을 할 수 있도록 이끈 존재가 무엇인지 나는 모른다. 내 상황이 그들의 마음을 움직였을 수도 있고, 그들의 본성 자체가 부드럽고 따뜻했을지도 모른다. 나는 그들 덕분에 그 시기를 무사히 보냈다. 10년 전과 똑같은 실수를 저지르지 않았다.
언젠가 그들을 만날 수 있다면, 이 말을 꼭 해주고 싶다.
"넌 알까? 그때 너희들이 선생님을 구했다는 사실을."
어떤 존재는 헤어져도 내 마음속에 오랫동안 남는다.
학교는 정말 이상한 곳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