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간고사가 얼마 남지 않은 5교시 수업시간이었다. 수업을 시작한 지 얼마 지나지 않아 윤지(가명)가 무릎 위에 가방을 올려놓고 핸드폰 하고 있는 모습을 발견했다. 윤지는 나에게 거울을 보고 있다고 둘러댔지만 나는 윤지의 핸드폰을 교탁 위에 두었다. 참고로 내가 근무하는 학교에서 학생들은 아침 자습시간 시작 전에 핸드폰을 제출한 뒤 종례 때 돌려받는다.
핸드폰을 뺏긴 윤지의 표정은 분노로 일그러져 있었고 눈에는 눈물이 맺혔다. 하지만 나는 아무 말도 하지 않고 계속 수업을 진행했다.
잠시 후 외마디 비명소리와 함께 파우치가 내 옆으로 날아왔다. 파우치는 칠판에 부딪혀 바닥으로 떨어졌다. 파우치 안에 있던 물건들은 칠판 아래에 흩어졌다. 나는 한 대 얻어맞은 것처럼 멍했다. 정지화면처럼 교실은 일순간 정적이 흘렀고 고개를 돌리지 않아도 학생들의 눈이 모조리 나를 향하고 있다는 사실을 알아챘다. 무슨 말을 해야 할지, 어떤 행동을 해야 할지 전혀 생각나지 않았다.
나는 교탁에 팔을 뻗어 몸을 지탱한 뒤 가만히 생각에 잠겼다. 얼마 뒤, 바닥에 떨어져 이리저리 굴러다니는 윤지의 물건을 하나씩 주워서 파우치 안에 넣었다.
다시 수업을 진행하려고 입을 열었을 때 윤지는 교실을 뛰쳐나갔다. 나 역시 윤지를 곧바로 따라 나갔다. 다행히 윤지는 교무실로 갔고 담임 선생님을 보자마자 울음을 터뜨렸다.
이 일이 있은 뒤 나는 한동안 죄책감과 분노로 괴로운 시간을 보냈다. 윤지에게는 교사가 아무런 말조차 하지 않고 계속 수업을 진행한 사실이 큰 상처였을까? 나는 자신을 ‘무시’해서 화가 났다는 윤지의 반응을 이해할 수 없었다.
나는 사건이 발생하던 당시로 돌아가 내가 무엇을 원했기에 계속 수업을 진행했는지 곰곰이 생각해보았다. 윤지의 성난 표정과 어떻게 행동해야 할지 몰라 교탁에 팔을 뻗고 가만히 있던 내 모습을 연달아 떠올렸다.
나는 윤지를 무시했던 걸까?
윤지는 내가 핸드폰을 가져간 뒤 자신에게 어떤 말이라도 해주길 원했다.
"핸드폰을 왜 하고 있었니? 무슨 급한 일이라도 있니?" 혹은 "수업 끝나고 선생님과 이야기하자."
윤지는 이런 말을 통해 자신이 존중받고 있음을, 자신의 감정을 선생님이 외면하고 있지 않다는 사실을 확인하고 싶었다.
그렇다면 나는 왜 윤지의 화난 모습을 보고도 그냥 수업을 진행했을까? 내가 무엇을 원했기에 그런 행동을 했을까? 눈을 감고 다시 그 장면을 떠올렸다. 당시 나는 무척 당황했다. 어떻게 대처해야 할지 몰랐다. 하지만 이것은 윤지의 감정을 ‘무시’한 이유가 될 수 없다.
사실 나는 두려웠다. 내가 윤지에게 무슨 말이라도 하면 윤지가 나에게 큰 소리로 대들거나 따질 것 같았다. 교실에 있는 다른 학생들 앞에서 윤지와 언쟁을 하기 싫었다. 그 상황이 벌어질까 봐 나는 지레 겁을 먹고 회피했다.
여기에 쓰지 않은 사실이 많다.
나는 윤지가 교무실에 들어가자 다시 교실로 올라와야 했다. 교무실에 앉아서 잠시 숨을 고르고 있었지만 교실이 걱정되었다. 교사가 없는 교실. 학생들만 있다.
반장이 나를 데리러 왔다. 나는 "곧 올라갈게."라고 말했다. 이런 상태에서 아무 일도 없었다는 듯이 수업을 진행할 수 있을까? 나는 진심으로 그렇게 하고 싶었다. 태연한 얼굴을 하고서 상처 따윈 받지 않았다는 표정으로 교실에 들어가는 일. 아니면 지도능력 만렙쯤 되는 베테랑 교사로 변신해서 "잠시 숨을 고르고 수업을 할까요?" 이렇게 말하는 일.
나에겐 둘 다 불가능했다.
결국, 교실에 올라갔다. 분필을 들고 교과서를 보는데 말이 나오지 않았다. 꺽꺽거리는 괴상한 소리가 내 안에서 요동치고 있었다. 나는 입술을 깨물었다. 그리고 등을 돌리고 칠판을 바라보았다. 학생들은 내 굽은 등을, 떨리는 어깨를, 흔들리는 다리를 보고 있었다. 나는 주저앉고 싶었다. 예상하지 못한 충격과 상처를 묵묵히 삼키고 눈물을 참아야 하는 '교사'란 존재를 어디론가 갖다 버리고 싶었다.
도대체 교사란 뭘까? 어떤 존재일까?
그 상태에서 6교시와 7교시 수업에 들어갔다. 청소시간에 우리 반에 갔더니 벌써 소문이 다 났는지 몇몇 애들이 물어봤다.
나는 모두가 퇴근한 텅 빈 교무실에 앉아서 경위서를 작성했다.
윤지는 자신도 잘못했지만, 선생님도 자신의 가방을 '뒤졌으니' 학생인권침해 교사라며 나를 몰아세웠다.
이 일을 맡은 부장은 정말 그랬냐며 나에게 확인하러 왔다. 주변 학생들은 잘 모르겠다며 진술을 거부했다.
그냥 모든 게 싫었다. 이런 상황 자체도 짜증이 났다. 도대체 나한테 왜 그러냐고 따지고 싶었지만 나는 무기력하게 앉아서 나를 두들겨대는 소리를 멍하니 들었다. 구질구질했다. 난 "뒤진 적이 없다."라고 말했지만 무슨 소용이 있으랴. 사실과 거짓을 구분하는 일은 이미 무의미했다. 나를 두고 수군거리는 소리도 듣기 싫었다. 나는 내 심장을 꺼내 들고 차라리 날 잡아먹으라고, 그러는 편이 백 배 낫겠다고 생각했다. 기댈 곳도, 기댈 수 있는 사람도 없었다. 왜냐고? 나는 '교사'이며, '어른'이고, 징징거리는 일은 직장에서 해서는 안 된다고 믿었으니까. 그런 일은 별 일 아니라는 소리를 들었으니까. 물러 터진 내 잘못 같았으니까.
나는 도대체 뭘 잘못했지?
어떤 말을 해야 했을까? 어떤 행동을 해야 난 그 지경에 이르지 않았을까?
내가 잘못한 일이 도대체 뭐냐고.
교권보호위원회도 열고 싶었고, 심리치료도 받고 싶었다.
담당교사에게 가서 물었다.
그가 말했다.
"내가 이 일을 처음 해봐서, 지금 처리하는 공문만 빨리 하고......."
결국 아무런 도움도 받지 못했다. 나는 해당 업무 교사와 부장의 기색을 살폈다. 그들은 바빴고, 내가 자신들의 업무량을 더 이상 늘리지 않았으면 좋겠다는 암묵적인 싸인에 동의해야 했다. 왜냐고, 난 착한 데다가 내 마음 따윈 아무렇게나 취급하는 그런 존재니까-
지금 생각해보면 원통하고 분하고 슬프고 바보 같다.
다행히 윤지네 반장이 내가 윤지 가방에서 핸드폰을 '꺼냈다'라고 진술했다. 반장이 나를 도운 이유는 모른다. 1학기 때, 반장은 내가 자신의 담임이 아님에도 불구하고 고민을 털어놓기 위해 종종 찾아왔다.
나는 밀린 공문에, 업무에, 수업 준비에 온갖 사건사고로 떠들썩한 학급 일에 신경 쓰느라 내 마음을 살피지 못했다. 또한, 윤지의 입장을 이해하려고 끝없이 나를 몰아세웠다.
학생은 나에게 사과했다. 나는 학생을 용서했다. 아니 용서할 수밖에 없었고, 이해해야만 했다. 그 녀석에게는 순간의 감정이었고, 내게 악의 따윈 없었으니까. 물론 이건 내 생각이고, 그 녀석의 얼굴을 보면 그런 생각이 들었다.
그러나 나 자신을 용서하지 못했다. 뿐만 아니라 이해하지도 못했다.
나를 겨냥해서 던진 파우치에 내가 맞기라도 했다면 상황은 더욱 우습게 돌아갔겠지. 다행히 난 맞지 않았다. 그렇다고 무섭고 두려운 감정이 사라지진 않았다. 30명에 가까운 학생들이 나를 모조리 쳐다보고 있었다. '교사'로서 내가 가진 권위는 나뒹구는 휴지 조각보다 못한 대상이 되었다. 따지고 보면 내게 교사로서 '권위'가 있었는지 의문이다. 요즘 세상에 그런 '권위'는 낡고 부정적인 단어다. 하지만 내가 생각하는 권위는 누군가의 존재 위에 군림하는 것이 아니며, 적어도 누군가로부터 '존중'을 받을 때 생기는 것이라 믿는다. 그런 존중을 받을 만한 태도를 내가 견지했던가? 그런 자세를 가지고 학생을 대했던가?
나는 그렇게 행동했다고 믿고 싶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내 존재는 산산이 부서졌다. '퍽'하는 소리와 함께.
윤지와 같은 학년이었던 학생들을 지금도 가끔 본다. 물론 우연히, 길을 가면서.
"쌤, 안녕하세요."
이렇게 인사하며 지나가는 아이들의 얼굴을 보면 자동적으로 그 순간이 떠오른다.
한 인간이 견딜 수 있는 고통의 한계는 누구나 다르다.
그 사건이 발생했을 때, 내가 겪은 아픔은 내 한계를 뛰어넘었지만 난 참았다.
이런 상황이 발생할 때마다 내가 참을 수 있는 고통의 한계치는 커진다. 학교에서 겪은 사건사고는 항상 그런 식이었다.
"네 한계가 어느 정도인지 한번 시험해보자." 이렇게 덤비면 나는 입을 꾹 닫은 채 묵묵히 견디고 버틴다.
절벽 끝에서 간신히 버티고 있는데 누군가 내 발목을 낚아챘다. 나는 털썩 쓰러졌다. 아래로 떨어지지 않으려고 손톱을 세워서 땅바닥을 마구 긁었고, 손톱은 피투성이가 되었다. 그렇게 절벽 끝에 대롱대롱 매달려서 이날 이때까지 살았다.
나는 언제쯤 떨어질까?
나는 언제쯤 바다의 바닥까지 가라앉을까?
궁금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