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끔은 진짜 어른

by 키키 리리

2019년 겨울이었다. 한 학생이 교무실에 오더니 이런저런 이야기 끝에 내게 말했다.

"선생님은 천진난만한 어린아이 같은데요, 가끔은 진짜 어른처럼 보여요."


가슴이 파르르 떨렸다. 왜 일까?


당시 나는 심한 우울증 때문에 가까스로 삶을 지탱하고 있었다. 물론 약을 먹고, 나름의 노력으로 직장생활을 무사히 보내고 있긴 했다. 그 애는 나와 같이 3년의 시간을 보냈다. 천진난만하다고 말한 이유는 어느 정도 알 것 같다. 나는 수업 시간에 학생들과 재미있게 지내려고 무던히도 애를 썼다. 웃기도 많이 웃었다. 이상하게도 학생들이 즐거워하면 힘이 났다. 어차피 무섭게 지도해도 먹히지 않을 얼굴이라 나름의 생존 전략이다.


그런데 진짜 어른처럼 보인다고 말한 이유는 도무지 알 수 없었다.




진짜 내 얼굴은 무엇일까?


나는 내가 어른인가? 이런 생각을 종종 한다. 물리적 시간을 견주어 봤을 때, 어른이긴 했다. 하지만 '어른'으로 갖춰야 할 나름의 덕목을 떠올려보면 잘 모르겠다. 온갖 철학자가 설파한 이상적 인간의 모습과는 거리가 멀다.


불안이 덮칠 때, 최악의 상황을 생각한다. 문제가 발생하면 도망가고 싶다. 불안을 해결할 방법을 찾지 못하면 신경안정제와 수면제의 조합으로 겨우 잠에 든다. 공감성 수치가 너무 높아서, 슬픈 상황이나 어려운 처지에 있는 사람을 보면 마음이 굉장히 아프다. 며칠 동안 힘들다. 사람들을 만나면 나 자신의 이야기는 잘하지 않는다. 거의 듣는 쪽이다. 고개를 끄덕이고 공감을 잘해준다. 이렇게 적고 보니, 저 학생의 말이 맞는 것 같기도 하다. 인간은 하나의 얼굴로만 살 수 없다고 생각한다. 상황에 맞게 적절한 얼굴을 하고서 지내지.


이제까지 교실에서 보였던 내 얼굴은 나 자신이 아니라고 생각했다. 직장인으로 살아남기 위해서 일부러 꾸민 얼굴이라고 믿었다. 하지만 가짜 얼굴로 십 년 넘게 버틸 수는 없다. 어쩌면 천진난만한 모습도 내 일부가 아닐는지. 내가 부인했지만, 한사코 아니라고 믿지만. 우울을 걷어낸 자리에 저런 모습의 나도 숨어 있을지도.


얼마 뒤, 저 학생이 내게 편지를 주었다. 그리고 진짜 어른 같다고 말한 이유를 알게 되었다.

작년 모둠 영상 만들 때, 기억나세요? 아무도 저랑 모둠 하기 싫어할 때 선생님이 같이 해주셨잖아요.
매일 선생님 시간만 기다릴 정도로 좋았어요. 아무 곳에나 들어가서 하라는 건 제게 정말 어려운 일인데, 같이 팀 해주셔서 정말 감사합니다.


진짜 어른이 되는 건 쉽기도 하고 어렵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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