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생으로 사는 일

by 키키 리리

뭘 써야 할지 한참을 망설였다. 스승의 날이라 몇 년 전 제자에게 연락이 왔다. 톡과 문자로 각각 연락을 한 두 명의 제자에게 어떤 답장을 보내야 할지 고민했다. 반갑기도 하고 부담스럽기도 한 마음. 내가 그들에게 어떤 선생이었는지 잘 모르겠지만 잊지 않고 연락해줘서, 감사하다고 표현해줘서 고마웠다. 고민에 고민을 거듭하다가 결국 "고마워, 건강 잘 챙기고 행복하게 잘 지내길 바란다."라는 무난하기 짝이 없는 말로 답장을 보냈다. '있을 때 잘해주고, 헤어지면 안녕'이라는 신조답게 내가 그들에게 한 시절 선생 노릇을 무사히 했다면 다행이라고 믿는다.




각자 다르게 힘든 삶


코로나 때문에 원격 수업을 하는 날이 무척 많다. 열흘 만에 학교에 온 학생들 중 몇몇은 1교시가 끝날 무렵에야 교실에 도착했다. 늦잠을 잔 탓이다. 원격 수업할 때도 줌에 늦게 들어오거나 천장만 비추기 일쑤라서 내가 목이 터져라 이름을 부르는 녀석들이다. 나는 수업을 하다가, 담임 선생님이 복도에서 학생을 지도하는 모습을 목격했다. 늦잠을 잔 학생의 마음도, 전화를 받지 않아 걱정한 담임 선생님의 마음도 이해가 된다.


다음 시간, 교실에 들어갔더니 그 녀석이 해맑게 웃는다.


"선생님, 오늘 예뻐요."


"난 항상 예뻐."


"아, 네~."


조금 전까지 벙벙한 표정으로 담임 선생님께 잔뜩 훈계를 듣던 녀석은 온데간데없다. 스위치를 켜고 끄듯 감정을 완전히 뒤바꾼 녀석의 비법이 뭔가 싶다가도 '별생각 없이 살면 저럴까? 저 나이 때의 특징일까? 어딘가 아린 구석은 있을 텐데.'라는 생각이 끝없이 이어졌다.


교사는 많은 사람을 만난다. 남의 자식을 가르친다는 일이 쉽지 않다는 사실을 매 순간 체감한다. 백 명이 훌쩍 넘는 학생들과 어찌 아무런 문제 없이 잘 지낼 수 있을까? 배움으로부터 끊임없이 달아나려는 녀석과 녀석의 그림자라도 붙잡으려고 필사적으로 애를 쓰는 나 사이에서 갈등이 생긴다. 그러다가 감정이 상하고 마음을 다친다. 몇 년 전, 교실에서 나에게 파우치를 집어던진 학생 때문에 얼굴이 시뻘게지도록 울음을 참다가(뭐, 울긴 했다) 아무 일도 없었다는 듯이 다음 수업을 했다. 마음을 다쳤고, 어디든 해소하지도 못한 채 교실에 들어갔다. 내가 만날 다음 학생들은 아무런 죄가 없으니 어떻게는 마음을 잡아 그들을 대했다. 분노와 허탈함, 서글픔, 좌절과 절망, 혼란과 억울함. 또 무엇이 있을까? 선생으로 살다 보면 이런 감정을 시시각각 느끼지만 외부로 표출하지 않은 채 어떻게든 내면에서 다듬고 다듬어 '사랑'으로 탈바꿈시킨다. 선생이기 때문이다. 그 무거운 글자 때문에 내 감정을 뭉그러뜨린 채 그들 앞에 선다. 엄청난 내상을 입지만 못 본 척하고 지날 때가 훨씬 많다.


상담을 받을 때, 꽤 많은 교사가 정신건강의학과에 다니거나 상담을 받는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하나같이 힘들다고 하소연한다는 사실 또한 상담사를 통해 들었다. 직접 해보지 않으면 모른다. 세상의 모든 직업은 그 나름의 고충이 있고 힘듦이 있다. 각자 다르게 힘들다.


어찌 되었든 힘들고 지친 동료가 있으면 나는 이렇게 이야기할 작정이다. "당신이 없어도 학교는 굴러가요. 당신의 직업이 당신의 행복과 건강을 책임져주지 않아요. 당신을 먼저 챙겨요. 그래야 다른 이를 돌아볼 여유가 생겨요."




나를 아끼며 살고 싶다


다시 핸드폰을 열어 제자가 보낸 톡을 확인했다. 올해 고3이다. 왕따를 당해서 힘들 때, 내가 자신의 말을 들어주고 또 들어주어서 정말 감사했단다. 그 시절에 내가 없었으면 버티기 힘들었을 거란다. 책 <<긴긴밤>>에 등장하는 흰바위 코뿔소 노든이 떠올랐다. 그는 코끼리 고아원을 나와 초원으로 향했고, 가족을 이루고 또 가족을 모조리 잃고, 동물원에 갇혀 친구마저 잃은 채 세상을 미워하며 지낸다. 하지만 그의 선택 덕분에 아기 펭귄은 세상에 태어날 수 있었다. 노든은 자신의 선택을 후회하지 않았다. 남들 보기엔 거창하고 폼나는 뭔가를 이루지 못하더라도, 나의 선택이 당장 나에게 도움이 되지 않더라도 내가 마침 그 자리에 있고, 그저 맡은 역할을 충실히 했다는 사실만으로도 다른 이의 삶을 구하고 수렁에서 건질 수 있다것. 내가 선생이 아니었다면 절대 경험하지 못했을 일이다.


여전히 선생으로 사는 일은 버겁고, 나는 틈만 나면 도망칠 생각을 한다. 책 한 권 내고 싶다는 소망은 유효하고, 머릿속으로는 어떤 책을 써야 팔릴까? 이런 고민도 자주 한다. 다른 선생님들을 보니 청소년 교양서적이나 교육분야의 책을 척척(물론 엄청난 고민과 공부의 결과물이지만) 출간하시던데 나는 도저히 그런 분야의 책을 쓸 능력도, 할 말도 없다.


나는 한시라도 바삐 달아나고 싶은 곳에서 최선을 다하며 산다. 이 찬란한 모순 앞에서 내가 만나는 모든 이들의 행복과 평화를 빈다. 별을 노래하는 마음으로 모든 죽어가는 것을 사랑하기로 한 윤동주 시인의 다짐처럼. 모든 죽어가는 것은 결국 살아있는 존재이니, 내가 만나는 사람들을 사랑하기로 마음먹는다. 고통과 상처를 '사랑'으로 탈바꿈하는 고된 정신적 노동을 인생의 과정으로 여긴다. 그렇게 선생으로 살다 보면 나는 조금 더 나은 인간으로 변하지 않을까.


나는 누군가의 스승이 되겠다고 결심한 적도, 나를 '스승'으로 대해달라고 요구한 적도 없다. 스승의 날이라고 딱히 특별하진 않다, 적어도 내게는. 그저 내가 선생 노릇이나 제대로 하고 있는지 돌아볼 뿐이다. 때론 아무런 가진 것도 없이, 그저 먼저 태어나 조금 더 살고 더 많이 공부했다는 이유로 학생들 앞에 서 있을 때, 내가 가진 비루함과 못남과 속된 모습을 교묘히 감추고 그럴싸한 말로 학생들 앞에서 떠들고 있을 때, 내가 지금 여기서 무얼 하고 있을까? 이런 생각을 한다. 게다가 한 분야에서 십 년 이상 버티면 전문가 소리는 들을법한데 교사는 아닌 듯하다. 매년 바뀌는 학생과 적응할 만하면 변하는 교육과정, 학교를 옮길 때마다 바뀌는 교과서, 새로운 업무와 시시각각 변하는 학교 환경 속에서 위태로운 줄타기를 할 때면 학교가 견딜 수 없다. 허걱 대는 내 모습이 버겁고 안쓰럽고 안타깝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앞으로 꾸준히 학교를 다닐 것이다. 먹고 배운 일이 이것밖에 없어서, 할 수 있는 일이 이것밖에 없어서, 생계를 유지하기 위해서. 이런 이유는 결코 비루하지 않다. 아주 중요하다. 나라고 다른 직장인과 특별히 다를 리 없다.


그러기 위해서는 나는 나를 아끼고, 남은 시간은 나를 위해 오롯이 살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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